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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un 06. 2021

안녕? 나는 하늘을 나는 송어야

단양

단양

긴 머리를 싹둑 잘라 초코송이 머리를 한 나무들이 단양 중심가에 주욱 서있다. 단양군의 시그니처는 내가 보기엔 마늘도 쏘가리도 아닌 초코송이 나무이다. 초코송이 나무 때문인지 인구 3만 명도 안 되는 아주 조그만 마을은 미지근한 밀크티 같은 잔잔하면서 포근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소백산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고 남한강 물줄기가 관통한다. 산 너머에 산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얼마 전 읽은 칼럼에서 국토에서 차지하는 삼림 면적이 가장 많은 국가 세계 4위라고 하더니 우리는 산이 많은 나라에 살고 있다고 확 체감이 된다. 우리 산림은 참으로 자산이다.

카페산


라오스에 온 것 같기도 해.


라오스도 산 꼭대기에 이런 카페 하나 차리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이런데 카페를 차릴 생각을 했을까. 단양 중심가(중심가라고도 하기 뭐한 게 이곳이 전부라 한다)에서 차로 15분 정도 올라오면 금세 이런 전망이 내려다보인다. 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은 굽이굽이 낭떠러지 같아서 정말 무섭다. 초보운전이라면 추락할 것 같다. 이 마저도 이영자가 빵 먹고 간 뒤 유명해져서 단양군에서 도로를 깔아줘서 그렇지 원래는 도로도 없고 올라오는데 한 시간, 내려오는데 한 시간 걸렸다고 한다. 패러글라이딩 강사 아저씨가 알려줬다. 아직 도로가 깔리지 않은 곳은 돌이 무성해서 울룩불룩한 길을 지나야 한다. 아, 이래서 라오스 같았나 봐.


라오스는 시내 한복판에도 도로가 깔려있는 곳이 적고 이런 흙길이다. 특히,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을 미니밴을 타고 많이 가는데 이렇게 산을 굽이굽이 넘어간다. 위험한 길을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아찔하다. 추락하여 한국인 관광객이 사망한 뉴스도 있다. 다행히 요즘엔 새 길이 깔려 좋아졌다고 듣긴 했다.

단양은 패러글라이딩의 성지이다. 쓰고 보니 너무 진부한 문장 같다. 패러글라이딩 업체가 정말 많다. 시내에서 돌아다니면 머리에 낙하산이 날아다닌다. 나는 하고 싶은 맘, 별생각 없는 맘 반으로 가서 하는 곳을 발견하고, 하게 되면 하자는 생각이었다. 카페에 갔더니 카페 옆에 업체가 있었고 복잡한 것 없이 그냥 돈 내고 빌려주는 옷 입고 신발도 신고 대기시간 없이 바로하면 됐다. 주말이라고 하여 9만 원을 내고 아줌마가 주는 까만 수트를 입었다.

아저씨가 모든 걸 다 입혀주고 해준다.
뛰기전에 사진도 찍고


꺄. 하늘을 난다. 같이 발을 구르면 어느새 붕-하고 몸이 뜬다. 더 더 높이 올라간다. 기분이 이상하다. 한번 둥글게 멀리 슝 날다가 카페 쪽으로 붕-하고 다시 가까이 다가온다. 카페 야외석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다 나를 바라본다. 연인이나 가족단위의 색색깔의 남녀노소가 있다. 가족도 아닌데 나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나도 반가워 열심히 손을 흔든다. 즐겁다.


모두들 안녕, 나는 속살이 빨간 은빛 송어야. 하늘을 날고 있지.

점심을 가득 먹고 패러글라이딩을 했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어느새 풍경도 질리고 빨리 내려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휭- 불어 붕 뜨며 몸이 돌아가면 순간적으로 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막 무섭다고 소리 지를 정도는 아니야.


어느새 10분이 지나 땅으로 내려왔다. 위에서 봤던 강 건너 부지. 끝나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하며 유심히 봤던 장소이다. 내려왔더니 속이 안 좋아 식은땀이 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우면 벗어서 허리에 묶어유.” 내리는 걸 도와준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혼이 나간채로 양 팔을 빼고 묶기 시작하자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렇게 하면 금방 풀려유. 조금 더 추켜보세요.” 하며 내가 바지 지퍼를 조금 올리자 허리를 더 세게 묶어 줬다.

“트럭 에어컨 틀어놔 시원하니 타서 계세요. 여기 애기 한 명만 더 오면 출발할게요.”


트럭 뒷자리에 탔다. 아직 많이 시원하진 않았다. 운동화에서 발을 빼니 갑갑함이 풀리면서 시원해졌다. 덥고 지쳤다. 속이 울렁거려 몸을 편하게 기대앉았다. 운전석 백밀러로 내가 비쳐 보였다. 한참을 기다렸다. 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길래 출발하는 줄 알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애기가 못 내려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조금 뒤에 5-6살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탔다. 까맣고 다부진 애기는 약간 긴장한 듯 내 옆자리에 탔다. 팔다리가 젓가락 같아. 귀여워서 속으로 아이고~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몸이 안 좋아 그냥 창밖만 내다봤다. 이 아이에게 나는 아직도 언니일까? 20대 때는 유치원 초등학생들이 언니라 불렀는데. 이젠 자기 엄마 또래 비슷하니 아줌마인 건가. 나는 애기가 귀여워도 잘 내색을 못한다. 애기들과는 어색하다. 어쩔 줄 모른다.




송어회를 처음 먹어봤다. 갖은 채소에 다진 마늘, 다진 고추, 콩가루, 초고추장을 섞어 송어회를 듬뿍 넣어 섞어 비빔으로 먹는다. 정말 맛있다. 연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맛은 다르다. 식감은 쫀득하지는 않고 부드러운 편이다. 고소하고 무겁지 않다. 생선 살이 생선마다 다른 건 매번 신기해. 송어가 너무 귀여운 마음이 든다. 속이 빠알개. 나중에 찾아보니 연어과 바다 물고기라고 한다. 세종실록에도 등장하고 동해에서 맛볼 수 있는 맛이 정말 좋은 고기라고.


단양 구경시장에서 줄 서서 먹는 마늘만두와 마늘닭강정도 맛있다. 마늘 만두는 김치, 떡갈비, 새우 맛이 있었는데 김치는 하루에 200팩만 판다고 매진되어 있어 정말 아쉬웠다. 아쉬운 대로 떡갈비 맛을 한 팩 사서 먹었는데 피가 정말 정말 쫀득하고 맛이 있었다. 닭강정은 마늘향이 났다. 유명하다해서 여행 갈 때 사 먹는 속초 닭강정보다 훨씬 맛있다. 치킨의 질도 좋고 식었을 때도 딱딱하지가 않다. 뽕나무에서 자란다는 버섯도 살 수 있다. 한 바구니에 만 원 밖에 안 한다.


만두에 줄을 서는데 뒤에 넷이 놀러 온 경상도 남자들이 섰다. 이거 쫌 봐래이, 종류 별로 하나씩 사서 무짜. 이건 안주지 밥은 안된다 아이가. 밥은 뭐 물래? 내가 다 해주께. 하는 화려한 억양이 귀에 들렸다. 자기 여자 친구가 자기랑 헤어지자마자 소개팅을 했다며, 그걸 또 왜 자기한테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그럼으로써 우리 사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만들었다고, 그냥 큰 진심 없이 가볍게 만나고 때 되서 헤어진 그런 사이로 만들었다고. 자기는 그 사랑을 진심이라고 느끼고 그 사람의 마음을 믿었는데 자기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아서 속상해서 눈물이 많이 났다고.



돌아오는 길의 태양과 하늘의 색깔 변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해가 지는 무렵 서쪽으로 달리면 좋다. 해가 점점 붉어진다. 형광 주황색이 하늘 전체에 퍼진다.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꼈다. 새로 산 회색 선글라스. 샤넬이 된 것 같다. 안녕 나는 샤넬이야.


8시가 되자 주황색은 거의 사라져 주황색을 약간 띠는 잿빛이 맨 아래에 두껍게 깔리고 그 위는 옅은 하늘색에서 점점 둔탁하게 푸르러진다. 거대하게 펼쳐진 즉흥적인 불투명한 푸른색 그라데이션은 부분 부분 미묘하게 다 다르다. 멀리 푸르른 하늘에 거대한 산의 실루엣이 검게 보인다. 그 위에는 은빛 별 하나만 총총 떠있다. 동화 속에서 마지막에 땡~ 하고 클로즈업되어 탄력 있게 빛나다가 작아지는 별 같다.

그의 영혼은 자유와 공간과 광활함을 갈망했다. 그의 머리위로 고요하게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하늘의 둥근 지붕이 드넓고 아득하게 펼쳐졌다.
만물이 정지된 듯한 고요하고 싱그러운 밤이 대지를 감쌌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깜깜해지기 전 어스름한 분위기는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색깔이 주는 희열이 마음에 넘친다. 즉흥적인 자연의 예술이다. 20여분 지나자 불투명한 쥐색으로 하늘이 가득 찬다.


오늘도.. 잘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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