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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Aug 20. 2021

뜨거운 태양 아래 미쓰김 라일락

원주

크림색 비둘기가 다시 나타났다. 지난번 출근길에 유심히 봤던 비둘기인데, 오늘 출근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또 만났다. 속으로는 정말 놀라고 반가웠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작고 하얗다. 부분 부분 불에 그을린 듯 때가 탔는데 은은한 황금색으로 보여 계속 보게 된다. 새콤달콤 딸기색깔 발가락을 사뿐사뿐 떼며 걷는다. 우아한 듯 새침하진 않고 순진무구해 보인다. 나는 너에게 바라는 게 하나두 없어, 그냥 니가 행복하면 좋겠어.


날이 선선해져서 자다 보면 어느새 이불을 끌어당겨 폭 안고 자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을 키고 잤는데 말이야. 아침에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는 시간이 선선하면 기분이 좋다. 땀이 나면 찝찝하다.

대체 공휴일을 붙여서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쉬었다. 안전한 휴가를 보냈다고 자부할 만큼 덤덤한 휴가를 보냈다. 횡성에서 한우를 먹고 이천에서 쌀밥을 먹었다. 예쁜 카페를 많이 봐 두었는데 한 곳도 가지 못했다.


산속에 들어가니 기분이 좋았다. 풀벌레 소리가 호로로로롱 들리고 시골 밤 풍경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 어느 순간 진하게 타는 냄새가 날 때면 라오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경기도 근교와 강원도는 산이 우거졌다. 바다 뷰보다 산 뷰가 좋다.

원주 뮤지엄 산
뜨거운 태양-윤중식

<뮤지엄 산>은 정말 가볼 만한 곳이다. 자연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넓은 산책길과 박물관 곳곳에서 보는 자연이 다 다르다. 그곳에서는 자연이 작품처럼 빛난다.


한국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 하나하나 빼어났다. 그중에서도 윤중식이라는 작가의 그림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두 여인, 오렌지색의 쨍한 색감과 몽글함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서서 계속 바라보았다. 이 앞에 하루 종일 앉아 그림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구상하고 싶었다. 남편이 외도를 해서 소식이 없지만 크게 기분이 상하지 않은 채 차분함과 즐거움을 유지하고 있는 여인과 아이 같기도 했다.


마른 색깔이 아름다웠다
이천 예스파크

이천 쌀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는 예스파크 가는 이정표가 크게 있었다. 예스파크라니. 또 관광지처럼 뭐 하나 만들어놨겠지, 하며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이천 도자기 아울렛을 검색하니 예스파크가 나와 결국 가게 되었는데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가게 하나하나 특색이 있었다. I have no idea라는, 글씨체가 소박하고 느낌 있는 머그컵을 하나 집었는데 16만 원이라 놀라기도 했다. 외국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예술 거리 감성이 있어 여행 온 것 같았다.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평일이어서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 그릇 아울렛은 규모가 컸는데, 정말 고급스러운 도자기 그릇이 한 개 만원, 세 개 만원 이렇게 다이소보다 쌌다. 색깔도 하나하나 달랐다. 나중에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하게 되면 꼭 사러 오고 싶었다. 서양 그릇은 서양 그릇대로, 우리나라 그릇은 우리나라 그릇대로 골고루 있으면 좋겠다.

요즘엔 업무 스트레스가 크다. 예전에는 퇴근하면 바로 업무와 단절되었는데 요즘에는 쉬면서도 걱정이 앞서 마음이 무겁다. 논 뷰를 내려다보며 기분이 잠깐 환기되었다. 푸르름이 좋다. 한동안 계속 내려다보았다. 울고 싶기도 했다. 다홍색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고 싶어졌다.


열린책들 35주년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쉬는 동안 <인간실격>을 다 읽었다. 열린책들에서나온 단편 세트 20권을 다 샀다. 읽은 책도 몇 권 있지만 구성이 좋고 소장용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디자인이 예쁘다. 작가 이름이 원어로 쓰여있다.


30년대 일본의 시골마을, 작은 방, 도쿄를 걷는 것 같다. 다 읽고 나면 영화를 한편 본 듯 여운이 길다.

찐득한 초코퍼지가 먹고 싶다. 오늘 아침부터 사무실에 있던 미떼 핫초코에 얼음을 타서 마시고 낮에는 다크 초코 마카롱도 먹었는데 단게 너무 땡긴다.


지금 내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생은 지치고 허무하고 외롭고 우울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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