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대구역에 도착해서 숙소가 있는 반월당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이 어디쯤 오는지 알려주는 전광판에는 생소한 지하철역 이름이 떴다.다른 지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꼭 여행 온 기분이 들어서 좋다. 해안, 동촌, 영남대역, 반월당역 등등 이름이 생소하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서울과 내가 사는 경기도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다른 사람을 잘 관찰하지 않는데 부산여행 때도 그렇고 여행을 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궁금해서 쳐다보게 된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10-20대가 많아 보였다. 보세 옷을 입은 사람이 많게 느껴졌다. 가끔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억양이 있었는데, 지역별 차이는 잘 모르지만 경상도임에는 분명했다.
반월당역은 여행하기 좋은 위치이다. 동성로, 북성로, 백화점, 근대역사거리 등 걸어서 10-15분이면 갈 수 있다. 대구에 갔더니 카카오 바이크도 있어서 20분이 넘는 거리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5-6분이면 갔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목적지가 없는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좋았다.
처음 반월당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을 때 여기가 강남역인가 싶어서 놀랐다. 고층빌딩에 파란색 버스가 다니니 너무나 강남역사거리 같았다. 숙소가 있는 동성로 부근은 명동 같았다. 그런데 명동보다는 거리가 한산하고 깨끗하며 길이 복잡하지 않아 좋았다. 너무 서울 같잖아?
중앙로역에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약국 옆에 쭈구리고 앉아 담배를 피는 여자가 있었다. 회색 추리닝을 입고 긴 파마머리는 머리를 감지 않은듯하게 쿨하게 늘어져있었고, 눈썹이 없어 허연 것도 쿨해보였다. 나이는 20대 같은데 어려보이기도 하고 많아 보이기도 하는데 일진포스가 느껴졌다. 잠시뒤에 온 남성인 친구가 10대로 보이는 걸 보면 10대인가 보다, 하고 관찰을 했다.
동성로를 벗어나 대구역 방향으로 걷다 보니 군데군데 아기자기한 소품샵이 나왔다. 대구 소품샵 투어 하는 유튜브 영상들이 있을 만큼 소품샵이 꽤 있다.
홀리데이비지터샵이라는 곳에서는 예술잡지나 책도 많고 즉석카메라, 엘피판, 명화 엽서 등이 많았다.
같이 간 친구가 지나가다가 자몽향이 싱그럽게 나는옷에 뿌리는 향수를 사줘서 나는 엽서를 사줬다. 자몽향을 뿌릴때마다 대구가 생각날 것 같다.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과 핑크색 투명 유리컵을 그린 그림 등 쨍한 그림을 몇 개 샀다. 예쁜 것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상점 직원은 엽서를 포장해주며 친구가 입은 옷 색깔의 스티커를 붙여 주었다. 엽서를 그냥 달랑달랑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담아서 스티커를 붙여주니 기분 좋은 소비를 한 느낌도 들고 외국 여행하면서 엽서를 산 느낌도 들었다.
북성로에는 이국적인 공간이 있었다. 독립서점, 인테리어가 독특한 카페, 을지로처럼 안내판이 없어 입구를 알기 어려워 찾아가기 힘든, 오래된 건물 2층에 숨어있는 소품샵, 색감이 예쁜 내부 등 볼거리가 많아 심심하지 않았다. 굳이 카페를 검색해서 가지 않아도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괜찮은 카페가 많다. 대구에서 산다면 퇴근하고 감각적인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랜차이즈 등 있을 거 다 있고, 식당도 많고 카페도 많고 영화관 대형 백화점도 지근거리에 많다. 현대, 롯데, 신세계가 다 있다. 작은 도시에는 없는 브랜드들도 거의 다 있다. 대구에 살면 불편함이 없을 것 같다. 지하철도 잘 되어있고 도로도 빽빽하지 않다. 부산 같은 곳은 차도 많고 굽이굽이 난코스의 도로가 많은데 대구는 도시 구획이 깔끔하고 도로도 안정적이다. 가로수가 길게 뻗은 한산한 도로가 마음이 분주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왠지 모르게 또 바르셀로나 같기도 하고 일본 같기도, 북경의 거리를 걷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지방도시의 감성도 있다. 얼핏 대구 사람들은 차분하고 점잖아 보인다. 최근 여행한 도시와 자꾸 비교를 하게 돼서 그런지, 부산은 사람들이 성격이 급하고 분주해 보였던 것에 비해 그렇다.
수창청춘맨숀이라는 곳은 폐교 같은 곳을 청년들의 실험적 예술창작 및 전시공간으로 바꾼 곳이었다. 전시를 예약하고 가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대구예술발전소도 바로 옆에 있다. 창원에서 근무할 때는 예술을 즐기기 어려워 아쉬웠는데 대구는 대도시여서 그런지 문화예술 욕구도 충족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청춘맨숀도 주기적으로 주제에 따라 청년 작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창작을 하여 다양한 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폐건물이 그대로 살아있고 어두운 곳에 은은한 조명과 낮고 음습한 느낌의 음악이 흘러나오니 몽롱하다. 모호하게 번져있는 그림들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보라색과 청록색 위에 회색이 뿌옇게 있는 색감이랄지, 밝은 마른 낙엽색이 끌렸다. Spiral Life라는 이번 전시는 예술과 삶의 연속성이라는 주제를 표현하였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에 주목하고, 모든 삶의 경험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전시 설명 글
지난 전시를 보여주는 책자를 보다가 어떤 해에 했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다.”라는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 앨빈 토플러가 한 말이라고 하는데, 예술의 자부심과 힘을 보여주는 문구로 재해석된 느낌이 멋있었다. 개개인마다 나름의 예술가의 역할을 하지만 시대정신과 철학을 가지고 온전히 내 예술을 해나가는 것, 시공간과 현재시민들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망상주의자라는 주제로 사진으로 해석한 것도 마음을 끌었다. 문구 그대로 다 공감이 된 건 아니지만 망상이라는 주제로 엮었다는 것, 머릿속에 나만의 공간을 창조하여 빠져든다는 것이 공감이 되었다.
청라언덕과 근대골목에는 1900년 초반 지어진 건물과 교회, 당시 미국 선교사들이 살던 집이 남아있다. 코로나로 입장이 어려운데, 안에 들어가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칭다오를 여행할 때도 이런 거리가 있어 재밌었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도심 속에 몇 발자국 사이로 근현대가 공존하는 것이 서울과 비슷하다.
연휴동안 대구에 갔었다고 하니 남들이 여행으로 잘 안가는 특이한 데를 간다고 회사사람들이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대구에 갔다온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특히 국내를 혼자 여행한다는 것을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두 꽤 있었다. 난 국내도 혼자 여행하면 좋던데. 마음도 편하고 자유롭고 남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회사에서 느꼈던 압박감과 감정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너무 즉흥여행을 하다 돌아오는 서울행 srt가 매진되어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했지만.
근대건물 사진에 이끌려 갔지만 대구를 가려고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기대했던 것이 충족되었다. 군산은 사진만 보고 갔다가 볼 게 너무 없어 크게 실망했었다. 지방 어디에 살아야 한다면 대구에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대구는 여름에 대프리카다.” 친구의 말도 맞긴 하지만 나는 대구가 마음에 든다. 대구 근처 자연이 멋있는 곳도 여행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