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디스패치>
영화를 보고 나와 근처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보다는 개성 있는 카페를 좋아하지만 얇게 입고 나온 탓에 으슬으슬해서 가까운 곳으로 갔다. 생일일 때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유용한 것도 사실이다. 가지고 있는 스타벅스 기프티콘은 만 구천 얼마짜리가 많아 막상 쓰지는 않았다.
통창이 있는 창가에 앉았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과 지하철역 가의 뻔한 풍경, 군데 군데 떨어진 은행 잎과 풍경을 해치는 보라색 현수막이 보였다. 새로 나온, 이름도 포근한 골든위시라떼와 헤이즐넛 브라우니를 주문했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고,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먹지도 않을뿐더러 라오스에 갔다 온 이후에는 카페에서 음료 사마시는 걸 굳이 안 해서 스타벅스 앱을 사용한 지도 얼마 안 됐다. 그것도 동생이 5만 원짜리 스타벅스 카드를 주는 바람에 작년쯤 가입했는데 점심 시간에 잠깐 갔다오기에 주변에 스타벅스밖에 없어서 유용하다.
골든위시라떼는 처음에 마셨을 때 너무 달았던 기억이 있어 이번엔 모든 시럽과 폼을 ‘적게’로 바꾸어 주문했더니 마음에 든다. 다만 오트 밀크로 먹었을 때가 더 풍미가 좋은 것 같다. 브라우니가 부드러울 줄 알고 포크를 달라고 했는데 딱딱해서 손으로 먹어야 한다.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오른쪽 아랫니가 시리다. 이가 썩었는지 과일을 먹고 이를 닦을 때처럼 어제부터 시리던데 오늘도 그렇다.
영화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학생 때 <그랜드호텔 부다페스트>를 본 뒤로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를 챙겨본다. 웨스 앤더슨과 노아 바움백 영화. 웨스 앤더슨 영화를 챙겨보다가 오웬 윌슨이라는 배우도 알게되었고, 오웬 윌슨의 캐릭터와 영어를 좋아해서 찾아 보다가 <원더>라는 영화도 좋아하게 되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작년인가부터 개봉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개봉이 연기되다가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듄이라는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아주 길게 써놓아서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상영 중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신나서 예매했다.
첫 장면부터 예쁜 화면이 매 초마다 요란하게 이어져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요지경 세상같이 정신을 차리기 어렵게 한다. 밝은 겨자색? 개나리색이라고 해야 하나, 밝은 개나리색과 여러 색깔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밝은 개나리색과 검정, 쥐색, 쨍한 다홍색 토마토색, 텁텁하게 구름 낀 회색 섞인 하늘색, 밝은 연두색, 민트색, 밝은 벽돌색과의 조화! 우울했던 마음을 명랑하게 만들어준다.
더더욱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술가들과 협업해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색감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개성 있는 안목과 글, 사진, 그림을 담은,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잡지를 만들고 싶다. 돈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되는 글이 아니라, 그냥 내가 담고 싶은 이야기. 매력적인 사람, 현상에 대한 감상을 담은 예술적인 글이면 좋겠다. 내가 본 것, 생각한 것을 예술로 만들고 싶다.
한 직장에 매어사는 삶은 그 안에서도 나름의 재미와 영감을 주고, 내게 읽고 싶은 만큼의 책과 사고 싶은 옷과 안락한 삶과 어느정도의 노후보장을 해주지만(물론 집은 없고, 집살 돈도 턱도 없다)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인지는 갸우뚱하다. 국립대만대를 나와 엘리트 코스대로 살 수 있음에도 갑자기 행위예술의 길을 걷더니 최근에 핀란드 예술학교에 들어간 대만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면서, 나도 원래 꿈꾸던 일과 삶을 찾아, 아니 새로운 꿈을 꾸며 떠나고 싶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려면 몽상적인 감각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실질적인 활동과 힘이 있어야 할까. -토마스 만, <어릿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