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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Dec 20. 2021

밖에 비가 오는 것 같아

비가 우두두두둑 내리는 날. 홀딱 젖도록 내리는 비.

너무 추워 이빨이 딱딱 부딪히면서 머리는 이미 젖어 어디로든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날. 한바탕 비를 맞고 돌아와 샤워물을 뜨거울 정도로 쐬면서 나른해져 기분 좋은 날. 아니면 우산 속으로 젖지도 않고 깔끔하면서도 비 내리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상쾌하고 싱그럽게 느껴지는 날. 음, 아니면 우산을 가지고 가기 귀찮고 또다시 여분의 우산을 가져다 놓기 무거워 왠지 비가 오다가 그칠 거야, 하는 마음으로 맨 몸으로 나왔다가 눈을 뜰 수도 없게 폭우를 만난 날. 잠깐 비를 피하고는 핸드폰을 열어 몇 시간 떨어져 있는 그에게 ‘나 우산 갖다 줘.’ 하고  답장하며 실현 불가능한 말을 하고 나서 손으로는 가리는 게 의미 없는 비를 맞으며 비 맞은 생쥐꼴이 된 채로 으악 앞이 안 보여! 바보같이 계속 눈을 닦으며 걷던 퇴근길. 난 왜 비가 오는데 우산을 놓고 왔을까? 하는 후회는 들지 않고, 그래 어차피 맞은 거 우산을 놓고 오길 잘했어, 다음에 또 우산을 갖다 놓으려면 무겁잖아, 하고 생각했던 어느 날.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라는 영화에서 애슐리라는 금발의 여자가 속옷바람에 바바리만 겨우 너덜너덜하게 걸치고 맨발로 뛰어나와 빗속을 걷는 장면을 보면 무모하기도 하고 나도 왠지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카타르시스라 해도 될는지 싶은 희열이 느껴진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도 그러고 싶은.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그와 같이 보기로  영화였는데 결국 같이   <레이니 데이  뉴욕> 넷플릭스에 떴다. 영화를 보면서 그와 같이 보았다면 좋았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나는 여자 친구 애슐리이기도, 빗속에서 만난 여자인 챈이기도 했다. 대화도, 생각도, 스토리도 재미있었고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우디 앨런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미드나잇  파리> 너무 좋았어서  뒤로  개를 챙겨보았다. 재즈 음악도, 가보지 못한, 아름답게 그려진 뉴욕도 좋고 사랑을 그린 어떤 포인트도 좋다.  자체로 예술적인 대화도, 흘러가는 대로 사는 남자 주인공의 뻔하지 않은 삶과 생각을 보는 것도 좋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밖에도 비가 내릴  같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개츠비는 집안도 좋고 부모님도 마음에 들어 하는 애슐리를 좋아한다. 그에게 애슐리는 예쁘고 귀엽고 착하고 사랑스럽다. 여자 친구인 애슐리를 좋아하는 마음은 진실되어 보인다. 그런데 우연히 길에서 만난 옛 여자 친구의 여동생과 투닥거리지만 서서히 끌리더니 마지막엔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고 빗속에서의 로맨스의 감성을 아는 챈과 다시 만난다. 챈도 피부과 의사를 두고 개츠비를 만나러 온다. 애슐리를 좋아하고 질투도 했으면서 그렇게 쿨하게 떠나보내고 다른 여자에게 바로 가버리는 거야? 너무 신기하다. 끌림은 무서운 것 같다. 이성적으로 따지고 들면 의아하지만 비오는 날 다시 만난 그 둘을 보고 있으면 편하고 따뜻하면서도 설렘이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내리는 비는 우울하지 않다. 다이내믹하고 로맨틱하다. 내 친한 친구랑 바람난 와이프와 비를 맞으며 길에서 싸우는데 유머러스하다. 그래, 나 네 친구가 좋아졌어. 그는 좋은 사람이야. 나도 그가 좋아. 근데 뭐? 그래 그런 일이 일어났어, 근데 뭐? 그럼 헤어지면 되잖아, 하고 쿨하게 헤어지면 될 것 같다. 사랑은 금방 변한다. 예기치 않게 불현듯 불 붙는다.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관광객 복장 말고 그럴듯한 드레스를 입고 뉴욕의 재즈바, 아니 도쿄의 재즈바라도 가서 칵테일을 즐기고 싶다. 대학생 때 유럽의 친구들과 매주 즐기던 파티가 떠오른다. 그때처럼 다시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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