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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05. 2022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아

<여자 없는 남자들>

나는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데 오늘은 우유를 데워 카푸치노 캡슐을 기계에 넣고 내렸다. 냉장고에 사놓은 소화가 잘 되는 우유를 흔들어 보았더니 반 이상 남은 듯 묵직했다. 전자레인지에 1분 동안 데웠다.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배가 살살 아프다.


설 연휴가 끝난 금요일은 금요일 같지가 않았다. “금요일 같지가 않아요!”라고 말하니 한 달 반 동안 같이 일하게 된 근로장학생이 “ㅎㅎ 화요일 같아요!”라고 말했다. 점심을 먹고 왼쪽 콧구멍에서 코피가 흐르는 게 느껴져 얼른 휴지를 뽑아 코에 대니 빨간색이 묻어 나왔다. 그저께 pcr검사를 받을 때 왼쪽 콧구멍을 찔렀는데 그래서 그런가, 하고 네이버 뉴스에서 유치원생이 pcr 검사를 받고 나서 온통 빨갛게 물든 마스크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옆 자리 동료가 괜찮냐고 건조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아악, 코피 투혼!”이라고 말하며 원래 코피가 자주 난다고 장난스레 말하며 능숙하게 콧구멍을 편안하게 막을 정도로 휴지를 손으로 잘라 막았다. 나는 주기적으로 왼쪽 코에서만 코피가 난다.


이 년만에 보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날 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가 그저께 만난 친구가 열이 나서 검사를 해보니 코로나 확진이라고. 그 얘기를 듣고 나도 부랴부랴 검사를 받으러 갔다. 눈이 발목 넘게 쌓인 길에는 아직도 눈이 쏟아져 내렸다.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한 시간 반 동안 눈을 맞았더니 오히려 목감기에 걸렸다. 으슬으슬하다. 무려 일주일도 안 돼서 두 번째 받는 길이다. 첫 번째 콧구멍을 쑤셨을 때는 너무 당황스럽고 여운이 불쾌해서 하루 종일 신경이 예민했다. 코피 날 것 같이 아팠다. 물론 코피가 나지는 않았다.


우리 기관장이 코로나에 걸렸는데 나는 기관장의 밀접 접촉자여서 회사 내 안전 관리 부서로부터 검사를 받으러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기관장이 확진 판정을 받기 전날 나는 복도에서 그를 마주하고 약 일 분간 대화를 나눴다. 백신 3차까지 맞은 사람도 코로나에 걸렸다니 황당했다. 기관장은 직원들에게 설 명절을 조용히 보내고 방역 수칙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는 사람인데 본인이 걸렸으니 영이 안 선다. 설 명절이 지나고 우리 기관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우리 부장과 나는 설 연휴 동안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은 감상을 나누었다. 나는 에세이보다 장편을 좋아해서 장편만 읽었는데 이 책을 읽고 하루키 단편에 빠졌다고 말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정말 명작이라고. 부장은 처음 상실의 시대가 나왔을 때 읽고 그 시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진 이야기를 하였다. 오히려 하루키 장편의 판타지적 요소를 좋아하지 않고 단편과 에세이가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쉽게 읽히는 책을 쓰면서도 그 안에 통찰력을 담는 하루키가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안 써진다고 말했더니 부장이 크게 공감했다. 하루키 책은 영감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의 대화는 노마드 친화적 도시인 미국의 덴버, 갑자기 퀘벡 얘기, 노마드 인생, 교사를 그만두고 핀란드로 떠난 어떤 유튜버 얘기로 흘러갔다.

새로 산 책들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제목 속에 여자를 상실한 남자들의 이야기들이 묶여있다. 이 책에 따르면 여자 없는 남자가 되는 것의 상실감과 가슴 아픔은 여자 없는 남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데,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진 사람들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당신은 그렇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숙이 배어든다. 연한 색 카펫에 흘린 레드 와인의 얼룩처럼.

그 얼룩을 지우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작업이다.
얼룩은 아마 당신이 숨을 거둘 때까지 그곳에, 어디까지나 얼룩으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설령 그 후에 다른 새로운 여자와 맺어진다 해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멋진 여자라고 해도, 당신은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들을 잃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각 단편 속 남자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다. 여자의 남편에게서 그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기도 하고, 부인이 병에 걸려 죽기도, 그녀가 떠나게 만들어 잃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헤어진 채 십수 년이 지나기도 한다. 여자를 잃은 남자들은 상처를 깊게 받는다. 상처를 회피하다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하며 활력과 색채를 잃어간다. 다른 여자를 만나봐도 회복되기 어렵다. 하루키의 말처럼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슬픔과 고독은 잃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여자를 잃은 남자들은 어쩌면 다시는 영원히 사랑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다른 여자와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사랑에 빠지기 어렵다. 다른 여자를 안으면서도 공허함과 헛헛함에 고통스럽다. 카펫 위 와인 얼룩을 아무리 지우려해봐도 영원히 지울 수 없듯 괜찮아졌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더 불쑥 불쑥 올라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평생 고독감이 채워지지 않은 채 자신만의 감옥에 갇혀 발버둥치다 그렇게 죽게될 것 같다. 영원히 사랑을 하지 못하는 저주. 재미있다.


“난 독립기관도 정말 좋더라.” 부장이 말했다. <독립기관>에 나오는 독신의 중년 성형외과 의사는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나는 남자인데, 그런 그 남자가 가정이 있는 연하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 여자를 너무나 가슴 깊이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남편도 자기도 아닌 또 다른 남자를 선택해 살게 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고 하루하루 시들어가다가 결국에 죽게 된다. 비록 제삼자의 눈에는 왜 그딴 여자 때문에 마음 아파하며 죽음에 이르도록 그렇게 헤어 나오지 못하냐고 하겠지만, 그건 제삼자의 판단일 뿐이다. 그 남자는 진정 사랑을 느껴보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최극단까지 가서 깊이 느껴보았다. 그 여자가 아니면 사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의 사랑을 만나본 것, 더 이상 여한이 없는 걸까.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로는, 다른 여자에게선 신기할 만큼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른 여자를 만나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는 항상 그녀의 모습이 있어요. 그걸 몰아낼 수가 없어요. 정말이지 중증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자기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고 그래서 불합리한 힘에 휘둘리는 기분이 든다. 즉, 당신은 딱히 일반상식에서 벗어나 이상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한 여자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독립기관>, 무라카미 하루키

“부장님~~~ 승진 축하드려요! 아 이제 부장님이 아니시지.” 하고 복도에서 마주한 다른 부서 부장에게 인사했다. 저번에 한번 당직을 같이 설 때 도시락을 나눠먹었는데 잠깐의 대화로 그간 까칠하고 독할 것 같다는 편견을 깨게 된 여자 부장이다.  어떠하더라~ 하는 소문과 외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달리 그 사람을 약간이라도 겪어보았을 때 다른 점을 느끼게 되면 굉장히 매력있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부장님 저희 부장님한테 여자 없는 남자들 빌려주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하루키 엄청 좋아해요!”라고 말했더니, “어머, 세대를 넘는 취향의 공유이네.”라고 답했다. “부장님 너무 멋있어요!”라고 말했더니 잉?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길래, 저번에 토론할 때 보니 논리력이 너무 멋있었다, 책을 많이 읽으신 것 같아서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더니 부끄러워하며 토론하는 걸 언제 봤냐며 고맙다고 했다.


연구 과제에 논리적 허점을 거침없이 지적하는 그 모습과 비판적 사고가 정말 멋있고 똑똑하게 느껴졌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베이스가 탄탄한 사람이 가지는 사고였다. 괜히 저 자리에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난 저 자리에 가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서 대리랑 친해서 같이 밥을 먹으며 부장님이 너무 멋있는 것 같다고 팬심을 고백하니, 자기도 우리 기관에서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퇴근길 눈이 얼어 미끄러웠다. 그런데 나는 자전거를 잡아 탔다. 장갑을 꼈지만 손이 시렸다. 눈이 얼어 자전거를 타는데 자전거 전체가 심하게 덜덜거렸다. 온몸이 위아래로 덜덜거렸다. 아주 심한 돌길 위를 지나가는 것 같았다. 위아래로 이렇게 심하게 흔들리니 전신 다이어트가 되겠네, 하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 타기를 포기하고 세웠다. 걸어서 집에 오는 길에 아까 회사에서의 일을 생각했다.


욕심 없이 대충 사는 게 편하고 좋다. 뭘 맡는 게 싫다. 인생이 피곤하다. 계산적인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게 싫다. 대충 하루하루 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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