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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an 02. 2022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없어

“대리님도 얼른 연애해요. 그러다 나처럼 된다.” 같이 밥을 먹다가 미혼인 남자 차장님이 말했다. 연말이라 그래도 분위기 좋은 식당을 예약해서 식사를 했다. 분주한 도심에서 10분 정도 차로 떨어져 있는 곳인데도 근교에 나온 것처럼 시골 공기가 느껴졌다. 산 밑의 한적한 느낌도 좋고 주택을 개조한 식당 밖으로 보이는 산 뷰도 좋다.


어쩌다 우리 네 명은 사랑을 주제로 얘기를 하게 되었다. 편의상 반말로 적겠다.

“내가 진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나중에 죽기 직전에 눈 감을 때 느끼는 게 진짜 사랑이지 않을까. 그 사람이 그 당시 배우자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고 봐. 아무도 장담 못해 그건.” 사람 1이 말했다.


“맞아. 10년 동안 결혼해서 산 사람하고 이혼하고 진짜 사랑을 찾았다고 새로 결혼해서 30년 산 사람이 있다면 난 후자가 참사랑인 것 같은데. 억지로 참고 사는 것도 불행한 것 같아. 이혼하면 어때. 내 인생이 중요한 거지.” 사람 2가 말했다.


“그래도 부모의 사랑도 있고, 연인이든 배우자든 대신 죽어줄 수 있는 마음이면 사랑이 아닐까?” 사람 3이 말했다.


“난 연애는 해봤어도 사랑은 못해봐서 그런지, 아무리 좋아도 계산적이게 되는 건지, 대신 죽어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사랑을 못해봐서 그런 마음이 드는 건가.” 사람 4가 말했다.


“난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고 봐. 대신 죽어줄 수도 있는 그 사랑의 마음은 들 수 있지만 그건 일시적인 생각일 거고. 왜, 일본에서 생체실험으로 모성이 있는가를 실험했나? 그랬는데 막 태어난 애기와 산모를 방에 가두고 바닥을 계속 뜨겁게 지질 때 한계에 다다르자 산모가 애기를 밟고 그 위에 섰다잖아. 그런 거 보면 반드시 모든 부모가 목숨을 바쳐 자식을 사랑하지는 않아. 대신 죽어줄 수도 있다고 하는 말은 그냥 사랑을 속삭인 말일뿐이야.” 사람 1은 영원한 사랑은 신의 사랑밖에 없다며 인간의 사랑의 표현은 육욕의 끌림, 설렘, 목적의식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육과 영이 있는데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생각이 아닌 육의 자아와 생각대로 이루어진 마음을 좇지 말라고.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결혼하려는 커플들을 만나서 어떤 마음으로 결혼하게 되었냐고 물으면 우리가 ‘사랑’하면 느끼는 숭고한 느낌과 희생, 끝없음 이런 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람 3이 말했다.


“맞아. 그냥 이 정도면 서로 좋아하고 조건도 나쁘지 않거나 뭐 좋을 수도 있고, 아무튼 그냥 나이도 차고 가정을 꾸려 애를 낳고 싶고 지금 아니면 결혼을 못하겠다 싶을 수도 있고. 그렇게 막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그게 뭐 나쁜 것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어머니도 그러시더라고. 이혼녀만 아니면 누구든 괜찮다.” 사람 4가 말했다.


“그리고 그냥 사랑이 많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 표현이 무덤덤한 사람이 있기도 하고 항상 사랑 표현이 넘치는 사람도 있고. 항상 누구를 만나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있더라고. 난 사랑 표현이 넘치는 사람보다는 그냥 잔잔한 사람이 좋아.” 사람 2가 말했다.


“아 그럴 수 있겠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해. 그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내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그 사람은 꼭 나여서가 아니라 누굴 만나도 그렇게 사랑을 넘치게 주는 사람일 거라는 그 사실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벽이 생기고 의심을 하게 만들더라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이 마음이 실제로는 나의 착각일 수 있구. 그런 거 보면 차라리 잔잔하고 오래가는 사랑이 나을 것 같아. 변치 않으려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겠네.” 사람 3이 말했다.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끌림과 사랑은 다른 것인데 인간은 둘을 같은 거라고 착각을 하는 걸까. 끌림도 사랑도 없는데 연애하는 게 좋아서 계속 사귀는 사람도 있고. 두근두근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 짜릿하니 지속하고 싶어서 사랑이라고 스스로 세뇌하는 걸까. 그 사랑의 결실을 반드시 맺으려는 인간의 욕심이 나를,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우리의 몸과 존재는 모두 에너지고 파동이어서, 사실 실체가 아닌지도 몰라.” 하고 12월 31일 마지막 날 몇 남지 않은 부서에서 부장이 나와 차장을 향해 말했다. 다른 부서도 모두 휴가를 쓰고 최소인원만 남았다. 나도 대강 할 일은 끝냈는데 주시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딱히 새해 마지막 날의 계획도 없고.

“오. 재밌어요. 맞아요. 지금 얘기하는 우리도 모두 꿈일지 몰라요.” 내가 말했다.

“아주 먼 미래에는 이걸 보면서 그러겠다. 2021년에는 공공기관들이 경영평가 보고서를 이렇게 써서 했구나, 하고.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기관들이 이런 일을 했구나, 하고” 2월에 제출할 경평 보고서를 작성 중인 차장이 말했다.

“오 그 미래 사람들이 추억하는 그 날짜의 점 속에 이렇게 우리가 살아서 대화를 하고 있어요! 너무 신기해요.” 내가 내 손을 서로 만지며 살아 있다는 생명력을 표현했다.


어쩌다 풍차 돌리기 저축법을 얘기하다가 차장이 5천만 원만 넘으면 그때부터는 재테크하기가 쉬워진다고 했다. 집 얘기를 하다가  “휴, 저는 언젠가 집을 살 수나 있을까요.”라고 말했더니 자기가 집 살 때인 2009년 경에는 5천만 원만 있으면 대출도 쉽고 집을 사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집값도 너무 비싸고 미래세대에는 안타깝다며 말했다.


그랬더니 듣고 있던 부장이 “집 살 수 있지 그럼. 그리고 집 안 사면 어때. 대리님 노마드로 살아!”라고 내가 듣고 싶던 얘기를 했다. “오! 저 노마드로 살고 싶어요. 집이 없으면 어때요! 대충 살면 되죠. 나중에 동남아에 가서 살 수도 있고.” 내가 신나서 말했다. 차장은 노후에 집 없으면 초라해진다며 자기는 안정적인 게 무조건 좋다고 집은 살 수 있으면 사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 되면 또 기회가 생기겠죠.”라고 내가 말했다. 부장도 그때 되면 인구도 줄고 집도 남을 거라며 집 없는 사람을 위한 정책도 생길지 어쩔지 그때 돼서 또 길이 있겠지, 하고 나랑 비슷한 생각을 말해서 내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래 노마드로 살자. 집 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을래. 아등바등 살았으면 이 회사에도 오지 않았을 텐데, 하고 재미있는 생각도 들었지만 후회는 안 하니까.


그런데 옆에서 듣던 다른 동료가, “근데 부장님 분당에 아파트 있으시잖아요.”라고 말해 다들 빵 터졌다. 내가 부장님 실망이라고 얘기하니 당황한 부장이 아 그럼 나 집 팔게 허허, 하고 웃었다.


부장은 나랑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서로 공감할 때가 많다. 저번에 우리 기관장 중에 웁살라대학 사회학과 석사를 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길래, “우와 한국에서 웁살라 아는 사람 처음 봤어요.”라고 했더니 웁살라 같은 명문대를 모르는 사람도 있냐며 스웨덴 여행할 때도 다녀왔다고 했다. 한국에서 유럽을 다녀왔다고 하면 보통 서유럽, 남유럽은 많이 가봤는데 동유럽, 북유럽 여행한 사람은 많이 없어서 웁살라를 안다길래 놀랐다. 여행 만렙자군. “저도 웁살라에서 공부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너무도 쉽게 갔다 와,라고 말했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기 쉽지 않은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코로나가 끝나면 웁살라로 유학을 떠날까, 하는 의욕이 생겼다.


지난주에는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얘기할 일이 많았다. 멀리 있어도 나를 걱정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주는 따뜻한 에너지가 좋다. 회사에서 만나는 내편이 되어주는 동료들의 따뜻한 눈빛과 나를 좋아하는 마음도, 장난을 즐겁게 받아주며 만드는 분위기가 행복감과 위로를 준다. 속상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준다.


내가 삶에 의욕도 없고 몸도 안 좋고 영혼이 지쳐있는 것 같다고 하니 한 친구는 꼭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다면서. 그런데 자기가 백신을 맞지 않아 자기랑은 식당도 카페도 갈 수 없을 테니 통화라도 하자고 했다. 요즘 시대에 백신 안 맞는 사람이 있다니 그 의지가 대단하면서도 백신 패스 시행 때문에 항상 밥도 혼자 먹는다는 말이 재미있었다. 사람으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다시 힘을 내게 한다. 맑고 건강한 생각으로 가득 차고 내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라색으로 된 페소아 단편 책을 꺼내 읽었다. <선원>이라는  연극 대본이다.

-우린 우리가 원하는 게 될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리가 되길 원하는 건 늘 과거의 것이거든.

-세상에 답이 있는 게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에 지쳐버리게 되지. 왜냐하면 모든 게 변하니까…… 영원하고 아름다운 건 꿈뿐이야.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난 나로부터 분리돼서 말을 하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돼. 이건 자기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내 심장을 너무 강렬하게 느끼게 만들어. 그러면 거의 울고 싶은 심정이 되거든.

-어쩌면 이중에 아무것도 진짜가 아닐 수도 있어. 현실에 속한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 살아있다는 건 너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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