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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13. 2022

타락하여

매트리스 위에 깐 쥐색 겨울 이불에 누워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새벽에 추웠는데 이제는 약간 땀이 날 지경이다. 생리가 시작되려는지 다시 아랫배가 무겁다. 위장약이랑 타이레놀을 같이 먹어도 되나, 하고 생각했다. 위궤양으로 2주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작년 9월부터 속 쓰림이 심했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스성 같다. ‘7월에 로마에 갈 거야,’ 하고 독일인 친구와 잠들기 전 주고받은 말이 떠올랐다. 로마보다는 토마토 치즈 바질, 이렇게 기본 재료 맛으로 환상적인 이탈리안 피자와 파스타, 라자냐가 상상되었다. 나도 가고 싶다.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어딜 제일 먼저 가야 할까?


타락.

그냥 갑자기 타락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일어난 지 얼마 안돼서 몽롱해서 그런가. 오랜만에 너무 푹 자서 그런가.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영원히 이렇게 누워있고만 싶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히잡에 베일을 쓴 중동계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가 오래도록 남는다. 눈이 슬퍼 보인다. 눈물은 흘리지 않지만 나를 걱정해주는 눈빛이 너무 슬퍼 보여 안아주고 싶다.


타락하여, 타락하여 살면 어떨까. 최고보단 최악이 좋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건 청개구리처럼 갖고 싶지 않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오히려 신선한 경험이고 재미있을 것 같다. 가슴 뛰는 일은 있지만 야망은 없다. 야망 있는 사람들을 보면 좀 무섭다. 기를 쓰고 노력하는 모습은 오히려 존경스럽지 않고 왜 저렇게까지, 이런 생각이 든다. 몰라, 내가 이상한가 보다. 경주마처럼 달리며 무언가를 얻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 참 추하다.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서 연고지로 돌아간 차장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 걸자마자 대뜸 차장님 언제 오세요,라고 했다. 지난주에 갔잖아, 이제 안 가지. 정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아, 물론 띠동갑 나는 전형적인 배불뚝이 아저씨이다. 다른 부서인데도 자리에 찾아가서 말 걸고 놀리는 게 재미있었다. 차장님 세수 안 한 것 같아요, 차장님 뱃살이 곰돌이 푸 같아요. 하고.


“이제 이쪽 지역번호로 뜨면 전화 안 받으시는 거예요? 차장님 행복하세요? 차장님 뭐하세요? 거기는 사람들 좋아요? 무슨 일 하세요? 차장님 보고 싶어요. 여기는 지옥입니다. 집에 가시더니 사투리가 심해지신 것 같아요.” 등등


답은 안 궁금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냈다. 차장님은 자기 부서 사람들도 보고 싶다고 전화 안 하는데 옆 부서 조무래기가 전화해서 언제 오냐니 잠시 당황한 것 같았느나 원래 캐릭터가 이런 애였지, 하고 목소리가 정상 톤으로 돌아오더니 내가 힘들어서 했겠거니 하고 부드럽게 위로해 주었다.


나이에 비해 훨씬 더 전형적인 아저씨 같은 느낌의 그분과의 대화가 즐거워서 자주 찾아가게 된 건 질문이나 요청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시간을 내서 길게 설명을 해준다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보통 자기 일이 바쁘면 말 거는 것도 싫어하고 필요한 정보만 주고 마는데, 예를 들면 내가 대구에서 일하는 거에 관심이 있었을 때 대구에는 관사 방이 남아요? 하고 물어보면 지도를 켜서 어떤 아파트 관사이고 대구지사에서 도보로 얼마나 걸리고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 출장 갈 때는 주로 어느 도로를 이용하는 지도 말해주고, 여기부턴 투 머치 토크가 시작될 것 같아서 화제를 전환하느라 지도를 가리키며 차장님 집은 어디예요? 한번 했다가 지도 상에 자기 아파트를 띄우며 출근길 경로를 알려주고, 자기가 어느 지사를 갈 때 어느 도로를 이용해서 출퇴근하고, 이 부근엔 뭐가 맛있고 등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뭐 하나 업무 상 고민거리를 들고 가면 뻔한 답이 아니라 요리조리 같이 고민해주는 등의 행동이 창의적이라고 느껴졌다. 사내행사를 기획하는 중에 그 속의 작은 이벤트의 사회자로 딱 좋겠다 싶어 초청하니 처음엔 아우 내가 뭘, 하더니 열심히 준비해온 모습에 놀랐다. 나는 뻔한 사람보다 입체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도 나는 샛길로 빠진 토크를 듣는 게 따분해지면, 아 그래서 요점이 뭐라고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인데, 그러지 않는 그 부서의 신참들은 그 차장님은 잔소리가 심하다,라고 평한다. 안물안궁을 늘어놓아서 그런 것 같다.


나의 친한 동료들을 돌아보면 주로 남성이다. 남성 동료가 더 편하다. 여자 선배들은 어렵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여자 동기들은 질투심이 많다. 나는 라포가 형성된 동료들에게는 차장님, 하고 부르지 않고 000님~~ 하고 부른다. 나만의 시그니처다. 나는 이름을 부르고 싶다. 대리님, 과장님은 정이 없게 느껴지고 그렇다고 000 과장님, 하고 부르기엔 너무 길다. 그래서 000님이 제일 편하고 좋다.


친근하게 둘이 대화해도 오해 살 일이 없어서 유부남이 편하다.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가장의 모습을 보면 멋있고 숭고하다. 미혼의 동료여도 여자 친구가 있는 사람이 편한 게 사실이다. 나는 그 사람이 재밌고 좋아서 대화하고 뭔가를 발굴하고 싶은데, 친하게 다가가는 의도를 의심받지 않을 수 있어서 그렇다. 괜히 남자 여자관계로 느끼거나 본인에게든 남에게든 오해를 사는 건 싫다. 그래도 나는 미혼의 남자동료랑 둘이서 밥도 자주 먹는다. 친구처럼 나의 고민을 잘 들어준다. 몇몇은 인간 대나무 숲이 되어준다. 질투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기 좋다.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하지 않다. 악의가 없다는 걸 이해해준다.


남성과 여성은 아무리 동료여도 성이 다른 사람들이다. 나이차이가 나든 안 나든 가정이 있든 없든 관계 속에서 모종의 수줍은 미소가 있다. 동성간에 있는 감정적인 갈등의 완충작용을 하고 업무 관계도 더 쉽게 풀 수 있는 그런 묘한 무언가가 있다. 히스테리가 누그러지기도 한다. 기관 내 남녀 성비는 꽤 중요한 것 같다.


파란색 장미를 건네며 위로하는 장면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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