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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20. 2022

코로나는 걸릴 시간이 없어도 걸린다

코로나 격리 3일째.


간밤에 목이 타는 것처럼 아프고 기침을 해서 괴로웠다. 첫째 날, 둘째 날 모두 잘 때가 힘들었어서 잠들기가 싫었었지만, 이틀째에 가장 아프다는 얘기에 그래도 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중간에 잠에서 깨서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병원에서 처방받은 기침약 한 봉지와 조금 남은 500미리 백산수 물병을 잡았다. 기침을 많이 해서인지 목이 불타는 것 같았다. 잠결에 쇄골 가운데 움푹 파인 목부분을 괜히 꾹 누르며 깊이 잠들기를 바랐다.


코로나 격리 전날, 회사에서 목이 간질간질했다. 저번에도 간질간질한 적이 있어 회사에서 제공하는 자가 키트를 해봤을 때 음성이 나왔을 때랑 증세가 비슷해서 그러려니 했다. 옆 옆자리 동료가 며칠 전부터 목이 계속 아프다고 했는데 자가 키트로는 계속 음성이 나온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그분께 옮은 걸까. 집과 회사 사람만 만났는데 도대체 어디서 옮은 거지. 다른 부서 사람들은 한 명이상 다 걸렸는데, 우리 부서만 아무도 안 걸려서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부서이다, 사생활이 건전하다, 주말에도 나와 일해서 코로나 걸릴 시간이 없다, 하면서 방역 주관 부장이 지나가길래 우리 부서는 모범부서로 포상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는데, 내가 걸려버렸다.


그날 밤 잘 때 목이 너무 아파서 자는 중에 일어나 종합감기약을 한 알 먹었는데도 기침을 계속하고 머리가 아팠다. 누가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이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코로나면 안되는데. 자가 키트 해보기가 겁났다. 그날 다른 부서 일을 도와주기로 해서 꼭 회사에 나가야 했다. 다음 주 목요일에 해야 하는 중요한 일도 생각났다. 어떡하지. 집에 사놓은 자가 키트 면봉으로 코를 왼쪽 오른쪽 여러 번 둥글렸다. 뉴스에 보니 깊게 쑤시지 말고 입구에서 여러 번 10번 정도 왔다 갔다 하라는 글을 본 것 같다. 세 방울 떨어뜨리자 금방 두줄이 나왔다. 와 큰일 났다. 화요일에 남자 과장 두 명 하고 삼겹살 먹고 2차까지 갔는데 괜히 갔나, 하는 생각을 하다 그중 한 명에게 걸렸는지 확인을 해보라고 연락했다. 다른 한 명은 이미 걸렸던 사람이었다. 코로나에 걸리면 7일 공가를 주고 회사에 안 나오니 안 걸리는 사람이 바보다, 아 차라리 덜 바쁠 때 걸리고 싶다는 말을 모두가 자주 하는데, 막상 내가 걸리니 당황스러웠다.


방역부서에 연락을 해서 두 줄이 나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걸릴 거라는 생각을 안 하고 문서도 잘 안 읽어보았더니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담당자는 연락을 자주 받을 거 같아 미안했다. 담당자는 일단 가까운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9시에 문을 여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아직 9시가 안돼서 이름을 적어 놓았는데, 9시에 가까워지자 앉을자리도 없이 사람이 가득 찼다. 의사는 내 오른쪽 콧구멍을 보건소에서보다 엄청나게 깊게 찔렀다. 아파서 눈물이 바로 흘렀다. 양성이었다. 기침하고 목이 아프다고 말한 증상에 따라 약을 지어주었다. 약국에 가니 약값을 받지 않았다. 와, 확진자는 약값도 무료로 주는구나. 처음 알았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방에 격리되었다. 필요한 건 가족들이 문밖에 놔주었다. 찜질기, 물티슈, 컵, 생리대, 내 칫솔, 핸드폰 충전기, 물 한 묶음 등등. 과자를 먹고 싶다고 하니 동생이 사다 줬는데 비닐봉지에 스모키 베이컨칩, 카라멜과 땅콩, 야채타임, 빅파이가 들어있었다. 내 취향의 과자는 아니었지만 방 안에서 할 게 없어 과자를 열심히 먹었다. 움직이지 않고 먹기만 해서 살이 찔 것 같지만, 기침을 하도해서 오히려 복근운동을 한 것 같다.


몸이 안 좋아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모든 걸 침대 주변에 가져다 놓았다. 얼마 전 우리 부서에 새로 들어온 여자 동기에게 연락했다. 공가 처리를 부탁하고, 오늘 2시에 다른 부서 해 주기로 한 업무를 꼭 부탁한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미안해하자 동기는 몸이 괜찮냐며 회사 일은 걱정 말라고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 말하라면서 내 걱정을 해주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있어 너무 고마웠다. 다음 주 목요일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문서도 보내야 하고 과정이 번거로워서 해줄 수 있을지 미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내 컴퓨터를 켜서 로그인한 후 파일을 찾아야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었다. 동기에게 카톡으로 확인할 사항, 해야 할 사항을 길게 적어 보냈다. 동기는 해보겠다며, 오히려 나에게 피해를 끼칠까 걱정이 된다고 말해 너무 감동이었다. 괜히 코로나에 걸려 민폐 같고 미안했다. 이렇게 흔쾌히 자기 일도 아닌 일을 해 주려고 하는 모습에 감동받아서 할 수만 있으면 승진 순번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을 해결하고 안도가 되었다. 약을 먹고 누웠다. 잠이 밀려왔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내 조직도에 공가라고 뜬 것을 본 것인지 동료들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부서 동료들, 이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 어떤 번호는 저장이 안 되어 있어서 누군지 몰랐다. 기관장도 문자를 주셨다. 얘기 듣고 염려되어 안부 드린다, 무조건 몸을 생각해라. 감사했다. 같이 삼겹살을 먹었던, 확진된 적이 있던 과장에게도 연락이 왔다. 걸리고 싶다면서 드디어 걸렸네, 하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주일 푹 쉬라고. 회복되어 돌아오면 양꼬치를 사주겠다고. 유머러스한 사람이고 후배들을 잘 챙긴다. 얼마나 인싸냐면 다른 부서 회식에 초대돼서 껴서 논다. 부서 회식에 초대를 받는 것도 재밌고, 거기에 가서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노는 것도 웃기다. 우울하거나 힘들거나 아니면 심심할 때라도 언제든 자기한테 메신저를 하라고 했다. 그의 말에 나는 "아니요. 전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래요! 전 인싸보다 비주류인 사람이 좋아요."라고 했다. 과장님 번호도 메모장에 저장해두었다가 그래도 밥도 한번 먹은 사이니 연락처에 저장했다. 장난을 잘 받아주고 유쾌하고 똑똑하다.


백신을 안 맞았는데 코로나에 걸려 공가 중인 동료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 나도 코로나 걸림" 그 사람은 심장이 안 좋다고 해서 백신을 안 맞았다고 했는데, 같은 부서 동료에게 전염된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이제 회복기여서 언제쯤 안 아파지냐고 물었다. 지난주에 안부 전화를 했다가 목소리가 괜찮아 보여서 괜찮은 것 같은데요? 별로 안 아픈 거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자기 그런 식으로 말하면 끊겠다면서(ㅋㅋ) 장난을 쳤는데, 내가 바로 걸리다니. 백신을 맞았든 안 맞았든 감기 몸살 정도의 증상으로 비슷한 걸 보면, 굳이 백신을 맞을 필요가 있었나 싶다.


격리 이틀째는 첫날밤보다는 잠자는 게 괜찮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목이 아팠다. 목이 아픈데 더해 콧물이 줄줄 나기 시작한다. 휴지에 풀면 코가 헐까 봐 화장실 가서 푸는데, 거의 앉을 새가 없이 계속 가서 코를 푼다. 목이 아파 따뜻한 차를 마시면 콧물이 더 줄줄 나와서 괴롭다. 잘 때는 옆에 물티슈를 놓고 손을 뻗어 물티슈를 꺼내 코를 풀고 그냥 바닥에 던져놓는다. 다음날 아침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른 물티슈들을 휴지통에 버린다. 낮에 할 일이 없어서 넷플릭스를 틀어 놓고 본다. 브리저튼의 다프니는 별로 안 예쁜 것 같은데 퀸으로 나온다. 1800년대 영국 귀족들이 지냈을 것 같은 성, 드레스를 구경하기에 재미있다. 나도 저런 드레스를 입고 싶다. 그 시대 사람들은 왜 이리 허리를 졸라매고 가슴을 드레스 위로 삐져나오게 입었을까. 가부장적 사회 속 여성은 예쁜 나이에 명문가에 시집가서 애기를 낳고 사는 게 거의 유일한 인생의 길이다.


약을 먹고 넷플릭스를 보다보면 어느  잠이 들어  시간동안 잔다. 중간중간 기침을 하기는 하지만 밤에 자는 것보다는  잔다. 잠깐 잘때조차 회사 얘기가 나와서 괴롭다. 회사일이 스트레스가 큰가보다. 요즘엔 떠나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다. 아는분이 인수위에 들어가셨다는 기사를 보고 슬쩍 연락을 드려볼까 싶다가도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내가 싫어해서 하지 않는다.


몸이 으슬으슬 춥기 시작한다. 오늘밤은 잘 잘 수 있을까. 환기를 위해 열었던 창문을 닫고, 보일러를 25도 정도로 높였다. 3일 간 방치되어있던 머리를 감았다. 하루만 안 감아도 머리가 엄청 가려운데, 다른 데가 아파서 그런지 머리가 가렵지 않았다. 코를 풀러 화장실에 갈 때 가끔 거울을 보면 추노에 나오는 사람이 따로 없다. 다리에는 전기 찜질기를 올려놓고, 이불을 푹 덮고 있다. 코를 한번 더 풀러 가야겠다. 과연 몸이 나아지는 건 맞는지. 아무도 접촉하지 않고 오롯이 7일간 혼자 있는다는 것이 새롭기도 하고 좋게 생각하면 좋다. 아프지만 않으면 좋은 휴식인데 말이야. 아직 누구에게도 전염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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