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네 Jun 03. 2022

싱그러운 여름의 창원

@오트리코퍼레이션

뾰족뾰족 율마들과 카페에서 보이는 세로수길의 가로수가 조화롭다. 낡은 느낌의 시멘트색을 세련되게 바른 벽과 곳곳에 배치된 느낌 있는 모양의 흔하지 않은 나무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마호가니 색 가구들이 예쁜 루프탑 카페. 색깔도 모양도 예쁜 매실애플에이드를 시원하게 쭉 마신다. 달달하다. 아침, 낮에는 자전거를 타기에 땀이 난다. 금요일 점심시간인 이곳에 손님은 나뿐이다.


정말 높게 길쭉길쭉하게 뻗은 창원 가로수길의 나무들은 도시인을 편안하게 해 준다. 창원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고 감싸준다. 2019년 가을 창원의 가로수길은 바삭바삭한 마른 노란색의 풍경이었다. 지금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바뀌었고, 이 길을 걸으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통 넓은 내 바지는 살랑살랑 흔들린다. 비연고지인 창원으로 발령이 나서 오기 전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오자마자 중앙대로의 쭉 뻗은 가로수들을 보고 매료되었다. 중앙대로 가로수와 자전거를 타다 보면 나오는 도심 속 공원들, 용지호수, 그리고 이곳 가로수길은 창원에 있는 게 점점 좋아져 더 있고 싶게 만들었다.


나를 창원으로 보냈던 간부는 요즘 이곳으로 발령이 나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내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창원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며 내가 보여준 가로수길 사진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를 발탁해서 헤드쿼터로 데려온 분이고 존경스러운 인격을 가지셔서 더 마음이 쓰였다. 구성원을 진정 어린 마음으로 대하며 이끄는 따뜻한 리더십을 가진 간부는 따르고 싶어 진다.


창원에 있는 지사에 출장을 왔는데 그 간부가 없었다. 휴가 중이라고 했다. 이곳 출장이 결정될 때부터 우리 부장에게 000님 보고 싶어요!! 할 정도였는데 막상 와보니 부재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문자를 보냈다. 000님 보고 싶어서 빨리 왔는데 왜 안 계신 거냐고, 아쉽다고. 그랬더니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문자로 답장을 해도 될 텐데 전화로 연차를 쓴 사정을 설명하며 (미안할 일이 아닌데) 미안하다고, 못 봐서 어떡하냐고 공감해주는 그 마음 씀씀이가 대단해 보였다. 잘 지내세요? 너무 보고 싶어요, 하고 20년도 넘게 차이나는 한참 후배의 애교와 투정을 잘 받아주신다.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겪은 직원들이 정말 많은데 채용한 직원들 이름을 한 명 한 명 기억한다. 나와의 일화도 기억해 주니 좋다. 괜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릇이 큰 사람이 주는 따뜻함과 위로가 좋다.

오랜만에 오는 창원의 길거리와 공기와 바람이 좋다. 약속 장소인 가로수길의 어느 식당을 가기 위해 누비자에 티머니 카드를 등록하고 자전거를 빌렸다. 오기 전에 누비자 사이트에 접속하니 아이디와 비번이 없다고 나왔다. 오래돼서 탈퇴가 된 건가. 회원 가입을 하고 누비자 비용 결제를 했다. 와, 이렇게 쌌었나. 일주일 이용에 2천 원이다. 1회 천 원을 내느니 일주일로 결제하고 여러 번 타야겠다 아, 누비자는 티머니로 빌리는 거였지! 미리 챙겨 오길 잘했다.


자전거에 올라타니 처음엔 어색했다. 동네에서 자주 타는 전기자전거인 카카오 바이크 하고 느낌이 달랐다. 금방 적응하고 가로수길을 향해 올랐다. 햇살이 약간 뜨거웠지만 바람이 살랑 불어 괜찮았다. 경남도청으로 향하는 방면의 오르막이 기억났다. 우측에 성산아트홀을 지나고 좌측에 용지호수공원을 지났다. 성산아트홀이라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글자야, 하고 엄청난 깨달음을 얻어 전구가 깜빡이는 느낌이 들었다. 누비자 정류장이 어디쯤 있겠다, 하는 감각이 살아있는 나 자신에 놀라면서도 창원에 속했던 나 자신이 좋았다. 고향이 아닌 곳인데 아주 약간은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00 왜 이렇게 예뻐졌어, 집에 가더니 마음이 편안해 보이네, 너무 좋아 보여! 거의 2년 만인가, 경남에 오니 친정에 온 거 같겠네!” 여기는 나이가 자기보다 어리면 이름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근데 친근해서 괜찮다. 심한 분들은 진짜 마이웨이여서 너무 웃기다. “야 0아, 니도 00 출신 아이가. 이리 쫌 와바래이”하고 멀리 있는 나랑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대리를 부른다. “과장님, 개인정보를 너무 크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웃으며 지적하는데 아저씨 과장은 개의치 않는다. 야라고 부른다. 나에게도 처음부터 어, 니는 이름이 뭐지? 하고 물었던 게 생각난다. 초면에는 그래도 조심스러워하며 존대하는데 마이웨이이신 분이다. 근데 밉지 않고 친근하게 대해서 후배들이 많이 따른다. 이따 저녁에는 뭐하냐며 자기 선약이 있어서 밥도 못 사주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저씨들하고 술 마시는 거 괜찮으면 업무 관계자들하고 술 마시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아, 됐어요. 000 대리가 같이 먹어주기로 했어요 하하. 하니 그럼 옆 테이블에서라도 먹지 않겠냐고 해서 거절했다. 지도를 켜며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아저씨들은 지도 켜는 걸 좋아하나, 나에게 대구 설명할 때 지도 켜던 아저씨 차장이 생각났다.


과장님을 놀리느라, 아니 사실 너무 똑똑하고 일을 잘하는 분이어서, 우리 부서로 모시고 싶다고 선임 과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 아 야, 누가 내에 대해 물어보면 마이 아파 보인다캐라. 죽어가는 거 같다 캐라. 고혈압이 있다.” 하길래 과장님 고혈압인데 술은 왜 드세요, 안 아픈 사람이 어딨습니까. 뭐 증빙됩니까, 하고 웃으며 말하니, 그들의 니즈에 맞춰줘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거라며 치료할 단계는 아니라고 하며 갑자기 자기는 우울증이 있다며 안 된다 했다. “과장님 제가 더 우울해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은 나를 반갑게 환영해 주었다. 별로  친하고 얘기도 많이  나눠본 동료들도 오랜만에 보는 나를 반가워해 주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궁금해했다. 출장 용무는 2시부터 4시까지인데 10 반쯤에 가서 6시까지 있다 왔다.     동료들과 얘기도 나누고 업무 영감도 얻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처음 보는 동료이지만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은 왠지 가까운 사람처럼 반가웠다. 내가 쓰던 관사를 고 있는 동료는 대학교 후배이기도 해서 아주 약간 친밀하고 편한 마음도 들었다. 우리 대학 출신들은 여기까지다.  이상의 친밀함은 없다. 그래서 좋다.


처음 보는 부장도 내가 동료들과 친밀하게 수다 떨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말로만 듣던 000 대리냐며 궁금했는데 실제로 보네, 하며 다가왔다. 000 대리 엄청 재밌네, 말 잘하네, 하며 옥상에 같이 가자고도 했다. 옥.. 옥상이요? 응 그래. 담배 한 대 피게. 저.. 랑 같이요? 응. 하길래 따라갔다. 담배연기가 해로운데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나, 했지만 친근하게 말 걸길래 따라갔다. 그 부장이 헤드쿼터에 있을 때와 유사한 일을 내가 하고 있어서 인지 자기가 힘들었던 걸 털어놓았다. 옥상은 생각보다 쾌적하고 넓었다. 옥상에 올라가 전경을 내려다보니 좋았다. 멀리 주택가들의 지붕이 이국적이었다. 00지역에서 초, 중, 고를 나왔다고 하니 어느 고등학교냐고 물었다. 명문고 출신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부장은 나와의 대화를 재미있어했다. 나의 인사이트와 호응도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해, 창원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뒤에서 여자 과장이 나를 부르더니 마카롱을 선물로 주었다. 창원에 왔으니 마카롱을 먹어야지, 하고. 창원에서 맛있는 마카롱 집인데 안 그래도 전날 저녁에 먹고 싶었는데 문 닫을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먹는데 역시나 맛있다. 마카롱을 사다 준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여러 마음들은 보답하고 싶어 진다. 이 아줌마 과장들은 고객 응대가 뛰어나다. 사투리가 아주 막강하다. 자기 동기들은 거의 차장을 달았지만 육아 휴직도 오래 쓰고 애들도 아직 어려 비연고지에서 떨어져서 고생해야하는 차장 승진을 위한 노력보다 가정에 힘쓰는 것이 더 좋고 가정에서 얻는 것이 더 큰 모양이다.


살랑살랑 나무가 흔들리는 걸 보며 카페에서 여유롭게 글을 쓰는 지금이 좋다.

@포숑
@해피치즈스마일
@영국집
가로수길의 식당, 카페 공간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들의 블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