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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Oct 23. 2022

문학을 사랑해서

노벨문학상 작가,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This is what I was born to do!


영드 <80일간의 세계일주>의 1편에서 애비게일이라는 여자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가슴 벅찬 순간에 터져 나온 말인데 인상 깊어 적어 두었다. 저널리스트로서 자기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고 싶은데 여성이어서 제약이 많다. 영국의 유명한 신문사 대표인 아버지마저 자기가 쓴 글을 남성의 이름으로 내보내서 화가 난다.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담은 글을 쓰는데 열정이 가득하고 자기가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는 즐거움을 크게 느낀다.

필라테스를 한 다음 날은 일어나는 게 힘들다. 찌뿌둥하고 몸이 쑤신다. 4개월 등록한 요가가 끝나고, 작년에 다녔던 필라테스에서 기존 회원을 대상으로 9개월 50회 54만 원을 제안하며 문자를 보내줬다. 맨몸으로 하는 요가보다 팔과 다리에 스프링의 도움을 받아 근육을 쓰는 필라테스가 더 도움이 된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내가 왼쪽 오른쪽 팔의 힘이 너무 다르다며 자주 오셔야겠어요, 하고 말한다. 일 년 만에 다시 와서 하니 근육 운동이 너무 강도가 높고 어렵다. 특히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는 하루하루 회사를 겨우 나가는 데 의의를 두며 살았더니 몸이 다 망가졌다. 첫 2주는 너무 힘들어 중간에 포기하며 쉬엄쉬엄 하다가 이제는 끝까지 따라 하려고 하고 있다. 2주마다 인바디를 재며 조금이라도 체지방이 줄어들고 근육량이 증가한 것을 보며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엔 알람 없이 늦게까지 일어나도 돼서 좋다. 침대에 더 누워 있는 시간이 좋다. 눈을 뜨고 바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핸드폰을 하며 뒹굴뒹굴 누워있는다. 한국 백화점에 나스가 들어오기 전에 봉처럼 생긴 형태의 오르가즘 블러셔를 선물 받아 썼었는데, 이젠 한국에서도 나스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블러셔 없는 화장을 하다 요즘엔 블러셔를 하고 싶어져 눈을 뜨자 오르가즘을 검색해서 샀다. 타지마할, 딥 쓰롯, 리베르테, 돌체 비타 등 색깔을 비교하다가 결국 골드 펄이 고급스러운 오르가즘으로 샀다. 타지마할이라는 색깔은 이름과 색깔이 잘 어울린다. 꼭 사보고 싶다. 사무실에서 신을 어그 슬리퍼를 살까 해서 신세계를 다녀올까 하다가 그냥 블러셔만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공공기관은 17도 이하로 유지하라는 지침에 따라 날이 추워졌어도 건물에 난방을 틀어 주지 않는다. 공공요금이 올라 전기세로 허덕이고 있다는 담당부서는 속으로 좋아할 것이다. 정부 지침을 근거로 난방을 하지 않도록 할 수 있으니.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와 에어컨도 켜지 말라고 해서 9월에 한창 더운 기간이 있었는데, 실내 온도계로 31도임에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주일을 났다. 올 겨울에는 춥게 나야 할 것 같아 털 슬리퍼를 사야 할 것 같다.


배민 아저씨가 가져다 준 초밥을 뜯으며 새로 업로드 된 채코제의 파리 동영상을 틀었다. 일주일 전쯤 체코가 그리워 검색하다가 채코제라는 유튜버가 자동완성으로 뜨게되어 보게 되었는데 태국인들과 태국어로 소통하는 게 재미있다. 잘생긴 외모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 유튜버인데 현지인과 소통을 잘하고 배경과 골목을 설명하면서 담아주어 좋다. 여행 유튜버는 본인이 출연을 하고 즉시 즉시 말을 하면서 진행되어야 구독자가 많아질 것 같다. 혼자서 어떻게 저렇게 주저리 주저리 말을 하면서 다니지,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 오늘은 파리에서 빠리지앵 감성의 빈티지한 옷을 사는 내용이 나오는데, 빈티지샵 여러 곳을 대신 구경하는 느낌이 나서 좋고 여행 욕구를 구체화시켜주도록 자극해서 좋다. 그저께 키크고 작은 얼굴에 잘생긴, 채코제 목소리와 사투리를 쓰는 정도가 비슷한 남자 동료에게 여행 유튜버하면 잘될 것 같다고 메신저를 보냈다. 여행유튜브가 자기 꿈이었는데 지금은 애기아빠라 아쉽다고 했다.


요즘 계속 열정의 불꽃이 불쑥불쑥 나오는 건 꼭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뭉크 미술관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절규로만 알았던 뭉크의 작품 몇개를 봤는데 색감이 정말 예쁘고 화려한 그림풍이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고 작품마다 다양한 감정을 담은 그림들의 설명을 들으니 처음으로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나는 그림 배경 설명을 듣는 걸 안 좋아한다.

책장 정리를 조금 했다. 민음사 책끼리 모아놓고 뿌듯해서 사진을 찍었다. 서머싯 몸 단편선은 새로 산 책이고, 읽고 있는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을 빼고는 한 문장 한 문장 아끼며 정성스레 다 읽은 책이다. 다음엔 무라카미 하루키 책끼리, 도스토예프스키끼리 정리해야겠다.


요즘엔 토마스 만 단편집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서머싯 몸 단편선 1>,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읽고 있다. 티비로 139번 오르페오 채널을 틀어 클래식 연주를 들으며 책을 읽으면 좋다. 목요일 퇴근하고는 티비로 유튜브를 틀어 때껄룩의 “벌써 가을이야? 이번 가을을 책임질 감성적인 인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동료가 빌려준 책을 읽었다. 고백이라는 제목의 곡이 연달아 나왔는데 듣기 편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라는 책이다. 감성적인 가을 인디 음악이 두 바퀴 정도 도니 다 읽을 정도로 쉽게 읽히는 일상적인 감성의 글이다. 한 남자를 사랑하고 이별하고, 이별 후의 감정을 고백록처럼 담은 소설인데, 대화가 거의 없이 일기장에 써 내려가듯 감정을 담았다. 노벨문학상은 대서사와 역사가 펼쳐지지 않더라도 인간 본연의 내밀한 감정을 문장으로 끄집어내서 공감할 수 있는 글, 그러나 결코 아무나 쓸 수 없는 이 작가의 가치를 알아주었다.


첫 페이지의 문장부터 사로잡았다. ‘화면은 흔들리고 대사는 지글거리고 찰랑대는 이상한 소음으로 들려서 마치 끊이지 않고 부드럽게 계속되는 미지의 언어 같았다’ 유부남인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중년 여성의 일상적인 감정, 그 남자에게 온통 사로잡혀 인생의 주체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랑의 열정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단순한 열정>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에게 책을 빌려준 동료는 이 페이지를 펴서 보여주면서 자기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라고 했다. 나는 보자마자 짧은 문장인데 굉장한 통찰력이네요, 공감해요! 정말 좋은 작가 같아요. 읽어보고 괜찮으면 다른 책도 사서 읽어볼래요,라고 말했다. 문장으로 압도한다.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현실 속의 그 사람은 A라는 이니셜로 내 글 속에 쓰이고 있는 남자보다도 더 먼 곳에, 내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추운 도시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같은 작은 흔적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리겠지.

그날 저녁 홀연히 왔다 간 그 남자는 예전에 그가 여기 있을 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람, 내 글 속의 그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 남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대서사가 아니라도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글은 위대하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 마음속으로 누구나 느낄법한 생각과 행동이 담겨있고, 내가 느낀 감정이 이런 문장으로 표현되는구나, 하는 탁월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형태의 글을 흉내 내서 써보고 싶다. 내년 1월부터는 아니 에르노의 책을 잔뜩 사서 읽겠다.


나는 책을 빌려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책을 사서 읽으면 좋은 작품, 자기에게 맞는 작가의 작품을 보는 눈이 생기고 가치 있고 질 높은,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독서를 할 수 있다. 사서 읽고자 신중하게 책을 골라 읽는다. 읽기 어렵고 공감 안 되는 필독서를 힘들게 읽을 필요 없다. 한 문장 한 문장 쫀쫀하게 다 읽고 싶은 책을 만나게 된다. 토마스 만이  <글라디우스 데이>에서 쨍한 6월 화려한 건축물과 초록 초록함이 생생하게 그려지게 묘사하며 시작한 예술적이고 희열을 주는 문장이 가득한 글은 정말 소중하다.


IoT 업계 전문가와 회의 중에 느낀 것은 다가오는 세계는 문과생들이 이끌어가는 사회가 될 것이란 것. 탄탄한 인문학적 기반으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인간 본질에 기반한 융합을 상상하고 구현해내는 사람. “IT는 어렵고 진입장벽도 높고 그들만의 리그예요. 근데 IT도 이미 3차예요. IoT가 진정한 4차 산업이죠. 여기 보면 다 문과생들이에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미 기술은 5만 가지 이상 개발이 되었어요. 이미 나온 기술들로 충분해요. 어떻게 결합하고 상용화하고 수익화할 것이냐는 거죠. 어떻게 엮어나갈 것인가 하는 차별화된 생각과 상상력이 필요해요.”라고 말한 사장님은 엄청난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반짝반짝한 생각으로 민간에서 벌써 앞선 세계를 살며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공무원 공공기관은 너무 뒤처진 생각이 든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4차 산업이 무엇인가를 인터넷으로만 검색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책을 짜고 있다니 이대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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