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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an 24. 2023

설날 아침, 도쿄 근교 황금색 온천에서 노곤하게

이나무라가사키 온천

도쿄에서 고층 건물 말고 일본 스러운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가마쿠라라는, 도쿄역에서 한 시간 거리의 바닷가 마을을 찾았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일본 영화에 나온 도쿄 근교 마을이었다.설날연휴 중 하루는 그곳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구글 맵을 보다가 이나무라가사키 온천이라고 바다를 보면서 온천을 할 수 있는 동네 사우나 같은 곳을 찾았다. 그날 열어야 할 텐데, 연다고는 되어있는데 찾아가면 막상 문 닫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반신반의하며 찾아갔다. 근처에 가니 온천, 그리고 영업 중이라는 한자가 눈에 보이자 신이 났다.

온천 1층에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가 있었는데 햇빛이 들어오는 따뜻한 뷰가 좋았다. 들어가자마자 온천은 어디로 가야 하나 두리번거리자 60대 정도인데 젊어 보이는 일본 아줌마가 친절하게 다가왔다. 일본어를 못하니까 “온센..” 하고 말했더니, 눈치껏 자판기로 안내했다. 일본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two person” 하니 먼저 돈을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천 엔짜리 세장을 넣으니 1500엔짜리 두 개를 눌러주었다. 오기 전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수건 빌리는 돈을 내야 한다고 해서 수건을 챙겨 올까 하다가, 다 젖은 수건을 무겁게 가져가는 것도 일이다 싶어, 에잇 돈을 쓸 땐 쓰자, 하고 맨 몸으로 왔다. 아줌마에게 “towel?”하고 말하니 버튼을 누르고 쿠폰이 나오면 카운터에서 바꾸는 것이었다. 수건을 두 장 빌리는 돈은 320엔이었고 그나마 이건 페이스 타월이었다. 다른 버튼을 페이스&배쓰 타월을 빌리는 데는 한 사람당 520엔인 것 같았다. 페이스로 충분해!


신발을 갈아 신고 한국의 목욕탕처럼 키를 카운터에 갖다 주면 목욕탕 열쇠로 바꿔준다. 아까 그 친절했던 약간 웨이브가 있는 단발의 일본인 아줌마는 위로 올라가서 워먼 쓰여있는 데로 가라며 끝까지 안내해 주었다. 일본어로 말했지만 눈치로 알아들었다.

출처: 온천 사이트

의외로 사람은 많이 없었다. 자리도 있어서 자리를 잡고 앉아 머리를 묶었다. 거울을 보며 클렌징 오일로 얼굴을 닦았다. 자리를 다 쓴 사람은 고동색 고무 바가지를 각 세면대에 얹어놓고 나간다. 다 썼으니 다음 사람이 앉아도 된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이 자리가 주인이 있는 자린지 아닌지 눈치껏 봐야 되는 한국과 다르다.

자리마다 두 사람이 하나 쓸 수 있는 바디, 샴푸, 트리트먼트가 비치되어 있었다. kracie라는 브랜드에서 제공해 주는 것 같았다. 끄라씨에, 하니 끄라씨바 러시아어 같은 어감이 들었다. 머리를 감고 온천에 들어가기 위해 가져간 파란색 플라스틱 재질의 머리끈으로 다시 머리를 묶었다.


와, 바다가 보인다. 여기 되게 좋다.

탕에 들어가기도 전에 매료되었다. 바다를 보면서 온천을 하다니. 발부터 담그며 들어가는데 뜨겁지 않고 따뜻했다. 물의 성분 때문인지 미끄덩해서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영어로 간단하게 온천 성분으로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쓰여있다. 물을 손으로 떠서 보니 연한 커피색이었다. 약재를 탄 건가? 효능이라고 쓰여있어서 저 멀리 판넬을 보니 한자로 황금이라는 것만 알겠는데 이게 황금 성분이란 건가. 알 수는 없지만 몸이 부들부들해지고 좋은 것 같았다. 나중에 나와서 검색해 보니 자연적인 색깔 때문에 황금탕이라고 부르고, 철분이 많이 섞여있다고 한다. 영양이 많고 안티에이징에 좋다고. 아 그렇구나, 아까 얼굴에도 문대고 푹 담그길 잘했다.


핀란드식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데를 지나면 노천온천을 할 수 있는 탕이 나온다. 일본 여자들이 몇 차례 지나가고 혼자만 있는 시간은 독탕으로 호사를 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겨울이지만 온도계는 10도 가까이 가리키는, 한국보다는 따뜻한 날씨어서 아래는 따뜻하고 위에는 시원한 공기를 맡아서 기분이 좋다. 물이 미끄덩해서 어디에 기대고 앉아야 한다. 하늘을 보니 정사각형에 가까운 네모로 뚫린 하늘이 보인다. 오늘은 연한 하늘색의 하늘에 흩어지는 형태의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검은 물 위로 하늘이 비친다. 한 단계 계단 위로 올라앉아 하반신만 담그고 몸을 웅크린다. 오른쪽을 보니 웅크린 살색의 몸이 불투명한 유리로 어렴풋이 비친다. 시원한 바닷가 바람이 살살 불고 햇살이 따뜻하니 노곤하게 기분이 좋다. 뜨뜻하다.


젊은 일본인 여자 둘이 들어와 대각선 끝 쪽에 자리했다. 일본 여자들은 한국 여자들보다 더 하얀 편이고 대체로 날씬한 것 같다. 수줍은 버섯같이 생긴 가슴이 인상적인 여자의 몸이 보인다. 몇몇 여자들은 머리 위에 수건을 네모나게 접어서 올린다. 얌전하고 조용하다. 일본사람들은 깔끔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인상이다. 지하철은 조용하다. 대체로 아이폰을 가지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핸드폰만 하는 풍경은 한국과 비슷하다.


황금 고동색 물감을 푼 온천물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본다. 물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크게 보인다. 까만 물이 약간은 무섭다. 무라카미하루키 소설에 자주 나오는 우물이 생각났다. 아까 온천을 오는 길에 절 앞에 우물을 보기도 했다. 40도 물과 10도의 공기의 온도차로 수증기가 일어 물 위에 있는 수증기가 바람이 불 때마다 일정한 모양을 이루며 퍼져 나가는 모습이 영화 같다. 박찬욱 감독 영화 같은데 나올법한 미장센이다.


온천을 하고 나오니 몸이 가볍고 개운하다. 챙겨 온 새 속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마스크를 쓰니 더 좋다. 편의점에서 산 참치 마요네즈 오니기리를 하나 뜯어먹는다. 바닷가에는 아직 햇살이 가득해서 눈이 부시다. 작은 박스 형태의 아기자기한 일본 차들이 바다 앞 도로를 지나간다. 일본 차들이 지나다니니 여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바다의 짠내가 안 나서 마을이 더 정적이고 신비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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