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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an 29. 2023

일요일 아침, 가마쿠라 산책

도쿄 근교 여행

가마쿠라역

도쿄역에서 요코스카선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가마쿠라역에 도착한다. 도쿄역은 많은 선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가마쿠라행 파란색 요코스카선을 타러 가는데 애를 먹었다. 요코스카라고 쓰여있는 안내를 따라갔는데 잘 모르겠다. 20대로 보이는 일본인 여자 두 명이 근처에 있길래 “요코스카 라인, 가마쿠라..”라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에에?? 하면서 자기 핸드폰을 들고 일본어로 도착역에 뭐라 뭐라 급하게 치더니(가마쿠라라고 치는 것이겠지?) 도와주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는 듯이 친절하게 조급해했다. 마침 지나가는 직원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에게 일본어로 우리를 인계해 주며 안내를 부탁했다. 고마웠다. 역시 친절한 일본인들. 하긴 나라도 외국인이 도움을 청하면 내일처럼 도와주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러니까. 그래도 당연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자 직원은 내려가는 다른 출구를 향해 안내해 주면서 거기를 따라가라고 간단한 영어로 말했다. 헤매는 바람에 원래 타려던 9시 49분 차를 놓치고 10시 4분 차를 타기로 했다. 이제야 여유가 생겼다. 하긴 다른 차를 타면 될 것을 왜 그 시간에 타려고 애를 썼을까, 천천히 가면 되지. srt같이 좌석에 앉아서 가는 기차를 생각하다가 그냥 평범한 지하철이 왔다. 이미 자리는 꽉 차있었고 서서 가는 사람이 많았다. 하아, 한 시간을 서서 가야 하나? 얼른 기댈 수 있는 곳을 찾아 기댔다. 한 30분쯤 서있으니 몸이 쑤신다. 지상철로 가니 밖을 구경해서 그나마 덜 지루하다.


가마쿠라역에 도착해서 걸으며 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구글지도를 보니 west exit으로 나가서 걷다 보면 바닷가에 있는 온천 가는 방향이다.

서쪽 출구로 나와서 걸으면 보이는 상점 거리
옷가게가 많다
니트의 질이 좋다.
크레페를 만들어준다

파란색 지점들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데는 도보로 40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에노덴이라는 마을 곳곳을 다니는 전철을 타도 되지만 걸으며 우연히 만나는 상점도 구경하고 밥집도 찾을 겸 왼쪽 하단의 온센 스파라고 쓰여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이 많았는데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생각해서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 직원들이 일하는 크레페집엔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우리도 여기서 먹어볼까, 하고 줄을 서서 주문하려고 what’s the best here? 하고 물었다. best menu, please 했더니 영어 메뉴판을 주었고, 메뉴는 한 50가지는 되어 보였다. 러시아에서 먹었던 블린을 떠올리며 나는 생크림 바나나를 선택했다. 사과잼을 같이 선택했어야 되는데 약간 새콤한 단맛이 아쉬웠다. 그래도 왜 줄을 서서 먹는지 알 것 같았다. 안에서 크레페를 받아 들고 먹고 있는데 자기 아빠와 똑같이 속눈썹이 긴 4살 정도 되는 남자 아기가 뛰어다니며 장난을 쳤다. 해맑은 모습이 귀여웠다. 인상이 짙은 일본인처럼 생겼다.


하세역으로 가는 방향에는 옷가게가 많았다. 괜찮아 보이는 옷가게마다 들어갔는데 모두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캐시미어도 있고 질이 좋고 색이 예쁜 니트가 많았다.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로 가격도 괜찮았다. 정말 예쁜 터키색 니트가 있었는데 목폴라 형태여서 아쉬웠다. 나는 목이 조금이라도 쫄리는 옷은 가위로 짤라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답답해서 못 입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가 목이 조금이라도 갑갑하면 옷이 중요하냐 애기 목이 갑갑하지 않냐, 하면서 가위로 다 잘라버렸다고 한다. 안 입어버릇해서 지금도 못 입는다. 하루종일 옷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어서 신경질이 난다.

하세로 향하는 길은 상점길이 이어진다. 사진에 보이는 이 길에 들어서자 바로 북촌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길이 생각난다. 크로아쌍 빵집이 있고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종종 나타난다. 한 옷 가게에는 질 좋은 옷이 많았는데 모두 20만 원 대였다. 백화점도 아닌데 비싼 것 같아서 흠.. expensive라고 말하니 간단한 영어를 알아듣고 말하는 50대 여사장은 all made in Japan. good quality.라고 말했다. 우아하고 자부심이 있으면서 친절하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아줌마, 할머니 감성의 옷가게들도 나오는데 잘 건지면 괜찮은 옷들도 많다

디자인과 색깔이 예뻤다
도쿄에 살면 주말에 자주와서 이런 카페에서 쉬다 가고 싶은
서점
길가다 만난 식당

아까 카이센동이랄지 맛있어 보이는 식당은 이미 다 지나갔는데 배가 고팠다. 사진을 보고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할머니 세 명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아무도 없다. 나무로 된 일본 스러운 느낌의 공간이다. 친절한 할머니가 우리를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아주 좁은 공간이어서 앉기에 갑갑하다. 일본은 호텔도 그렇고 너무 좁다. 할머니가 메뉴판을 가져왔다. 일본어만 써있지만 그래도 사진이 같이 있다. 가마쿠라는 유튜브를 보다가 톡파원25시라는 JTBC에서 하는 프로그램에서 보고 오게 되었는데, 잔멸치덮밥이 유명하다고 했다. 비릴 것 같지만 비리지 않고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구. 한 명은 잔멸치덮밥 정식을, 나는 그냥 무난하게 카레를 시켰다. 카레는 매콤한 맛은 전혀 없고 완전히 달달한 카레였다. 음식이 나오기 전 할머니는 서비스라며 수줍고 조심스럽게 맛차라면서 주고 간다. 카페인이 있어 녹차류는 잘 마시지 않지만 일부러 주고 간 정성을 생각해서 마셔본다. 음~ 맑고 씁쓸한 맛인데 녹차랑은 다른 맛이다. 나에게는 조금 씁쓸하고 응축되어 있어 물을 약간 타서 마시니 고소하고 풍미가 있다. 맛차를 사가야겠다.

색감이 예뻐서 지나가다 찰칵
마을 곳곳을 관통하는 에노덴 기차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슬램덩크에 나온다는 풍경의 그 역까지 걷지는 않았지만 여기로도 충분하다. 부산이랑 오사카처럼 바다 근처에서 느끼는 짠기와 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신비롭고 깨끗하고 오묘한 느낌이 든다.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은 잔잔히 불고 마음은 평화롭다. 바다만 보면 강원도 같을 수 있는데, 해변 앞을 지나가는 작은 박스차들이 너무나 일본스러워서 한국 같지는 않다. 여행온 기분을 그대로 느낀다. 하아 좋다.

두 시간 온천을 끝내고 가마쿠라역까지 여섯 정류장은 에노덴을 타고 돌아왔다. 도쿄역으로 가기 전에 고마치도리라는 상점 거리을 걸어본다. 이번엔 east exit으로 나가보자. 새로운 곳을 탐색하고 걷고 구경하는 건 정말 재미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다. 간간히 한국어가 들려오지만 주로 일본 사람들이었다. 하라주쿠를 걸을 때처럼 사람에 치인다.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서서 먹고 있다.

처음엔 떡처럼 완전히 쫄깃하지 않아서 응? 하는데 고소해서 중독된다
먹었는데 배아팠던 문어생강 어묵
고마치도리에서 빠져나와 발견한 가게에서 산 스웨터
가마쿠라역 안녕

한적하고 따뜻하고 평화롭던 가마쿠라 산책길. 대도시를 벗어나 일본 스러운 가옥과 풍경을 만나는 도쿄 근교 여행으로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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