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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y 16. 2023

베트남에서 네일아트하기, 어떨까?

지나가다 보인 카페 메뉴판
호텔 화장실 창문

한낮의 태양이 사라지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세차게 내린다. 호텔에 들어와 잠깐 쉬며 창문 밖을 내다본다. 운치가 있다. 호텔 건물을 둘러싼 보라색, 다홍색, 진분홍색 꽃들이 더 싱싱해 보인다. 비가 약간 그친 뒤 가벼운 흰색 바람막이를 입고 나와 거리를 걷는다. 후드를 쓰니 딱 좋다. 아주 약간 추적추적 내리니 비에 젖은 달랏 건물들과 공기가 감상적으로 느껴진다.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 준다.


달랏의 골목은 언덕이 좀 있다. 그래서 지도를 따라 내려갈 때 너무 가파르게 내려간다 싶으면 아, 어떻게 다시 올라오지, 하는 생각이 든다. 굽이굽이 골목 속속을 따라 걷지 않으면 너무 빙~ 돌아야 해서 지도를 따라 걷는 게 좋긴 하다. 더운데 길을 헤매면 짜증이 날 수 있다.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골목의 벽, 건물의 색깔, 창틀과 테라스 구조물의 부드럽게 우아한 곡선 속에 계속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와 예쁘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움이 주는 희열을 느낀다. 리스본의 굽이굽이 언덕 위 화려한 색감의 집들과 문이 제각각인 풍경이 쉽게 떠오른다.


비가 와서 어디를 가긴 그렇고 즉흥적으로 네일을 하면 어떨까, 하고 구글 맵에서 네일을 검색했다. 주변에 네일 샵이 많았는데 가까운 데 몇 군데가 몰려있어 가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가 갑자기 비가 점점 더 내려서 지도 위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빨리 찾고 싶다. 그런데 지도가 가리킨 데로 언덕이 가파른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서 갔는데 네일샵이 없었다. 오히려 옷 가게들은 어디 가면 있는 거야, 하더니 옷 가게들이 눈에 보였다. 그러다 첫날 쌀국수 먹으러 가던 길에 있던 Bee’s nail인가 하던 곳으로 갔다. 쌀국수 집을 목적지로 설정해 가는 길에 보였다. 구글 지도에는 영업 종료라고 떴는데 밖에서 보기엔 영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몇 명 있고 떠들썩해서 예약 없이 와도 될까 싶었다.


영어를 길게 하기보다 단어만 간략하게 말했다.

“네일 받을 수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약간 동북아 동양인 외모의 여자가 sure, 하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여자 넷과 남자 하나, 여자 아이 한 명이 있었는데 손님은 없었다. 예약을 해야 되나 싶어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의외로 바로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기쁘다.


언덕 골목 위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발을 내려놓고 페디를 같이 받을 수 있는 앉는 형태의 낡은 청록색 의자가 세 개 있다. 네일을 해주는 사람은 의자와 의자 사이에 앉아서 해 준다. 나는 발이 아닌 손을 하기로 했기에 발은 발판에 올려놓고 앉아 손을 내민다. 20대로 보이는 베트남 여자 두 명이 양쪽 손을 맡아서 해 준다. 처음엔 손톱을 정리해 준다. 한국하고 비슷하다. 아까 영어로 인사를 받았던 사람은 중국 사람이라고 한 것 같다. 영어가 잘 통하고, 한국어 단어도 통한다. 한국에서 온 것을 쉽게 알아봤는지 한국에서 왔냐고 먼저 물어본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한국 단어 몇 개를 말한다. 다른 베트남 여자들도 한국어 단어 몇 개를 말한다. 내가 따라서 한국 발음으로 말해주니 좋아한다. 한국 드라마 시티 헌터를 봤다고 하고, 또 어떤 영화를 말했는데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영화였지만 내가 온 나라와 문화를 좋아해 주니 좋았다.


가격은 쌀 것 같아서 묻지 않고 바로 했다. 가격과 상관없이 기분전환으로, 그리고 시간이 떠서 딱히 할 일 없는 이 시간에 꼭 하고 싶었다. 중국인 여자는 다양한 색으로 발린 손톱 색깔 판을 가져오더니 어떤 색으로 하고 싶냐고 물었다. 강렬한 색? 아니면 은은한 색? 당연히 나는 강렬한 색이지! 예쁜 색이 너무 많아 고민이 되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지난번에 수박색으로 해봤으니 이번엔, 음 마호가니 색으로 해볼까. 그래 그게 좋겠다!

3천원

양쪽에서 손톱정리를 하는 동안 왼쪽 편을 바라보니 머리를 야무지게 묶은 6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마른 여자 아이가 소파에 비숑과 함께 앉아있었다. 소파 자리에 반반 나누어 어우러져 앉아있는 게 귀여웠다. 비숑은 어린이와 자리를 공유하며 얌전하게 누워있다. 어린이와 가끔 눈이 마주쳐서 안녕, 했더니 쑥스러워했다. 어린이가 신은 당근색 슬리퍼가 예뻐서 직원에게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시장에 가거나 어디서든 살 수 있다고 했다. 악어 모양의 플라스틱 슬리퍼이다. 야시장에서 많이 봤는데, 당근색 신은 걸 보니 예쁘네. 언제 보면 사야겠다. 베트남 사람들은 체구도 작고 발도 작아서 큰 사이즈가 거의 없었다.

짜잔

네일을 받는 동안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약간 뜨거운 게 나오는 원통 안에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 여러 번 넣었다. 젤 네일인가 보다. 마호가니 색을 세네 번 덧발라줬는데 진해질수록 예쁘다. 마호가니~버건디색이다. 손톱이 짧아 뭉툭하지만 그런대로 귀엽다. 네일을 하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군데에서 받은 상장이 잔뜩 걸려있다. 이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이 좁은 곳에서 매일매일 네일만 하면 지겹지는 않을까?


네일이 다 끝난 뒤 중국인 여자는 영어로 된 메뉴판을 가져와서 계산을 해준다. 손톱 정리 비용을 따로 받았는데 다 합쳐서 25만 동, 약 만 4천 원 정도다. 외국인한테 보여주는 메뉴판은 왠지 가격이 더 비쌀 것 같은 생각도 잠깐 들었는데, 그래도 한국보다는 훨씬 싸다. 결과물도 만족감도 거의 같다. 동남아에 간다면 한 번씩 네일을 꼭 해야겠다. 젤네일이 손톱에서 떨어질 때면 머리감을 때 걸리고 불편하지만 1-2주 동안은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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