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네 Aug 11. 2023

수영장 성공하면 방콕은 다 한 거야

수영장이 있는 예쁜 색감의 호텔. 그거 하나만 보고 숙소를 정했다. 여름인데 호텔비는 4만원대로 저렴한데 평점은 9.0점인 엄청난 곳이다. 와, 여기로 해야겠다. 강을 건너편 까오산로드와 왕궁 등 구시가지이다. 비행기를 예약하자마자 기분 좋게 예약하고 방콕에 도착했다.


밤 10시쯤 돈므앙 공항에 도착했다. 좁아도 너무 좁아 힘들었던 비엣젯항공보다는 그래도 앞뒤 간격이 조금 넓었고 목베개 같은 것이 조절이 가능한 비행기였지만 5시간 반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건 쉽지 않았다. 세븐 일레븐이 보여 들어가니 레이 과자가 종류별로 있다. 와악. 내일 아침에 먹을 요거트를 살까 뭘 살까, 하고 고민하며 유제품 코너에 멈춰 서서 고민한다. 라오스에서 사 먹던 태국 두유가 보인다. 와 진짜 태국에 왔구나.


공항 안은 추운데 택시를 타러 나가니 공기가 후덥지근하다. 기내에서 입었던 하얀색의 얇은 비닐 잠바를 벗어 허리에 묶는다. 숨을 들이마시자 뜨끈하고 한국과 다른 냄새의 공기가 훅 하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다. 왠지 숨도 늦게 쉬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몇 번 더 새로운 들숨날숨에 약간 익숙해진다. 밤인데 왜 이리 더워, 하고 말한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길에 서있는 택시는 비쌀 것 같아 한국에서 가져온 유심을 꽂은 핸드폰을 꺼내 볼트 앱을 연다. 320바트에 가자는 택시가 쉽게 잡혔다.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해 얼른 차를 타고 싶은데 정확한 위치가 안 잡히는지 기사가 주위를 빙빙 돌고 있길래 기사에게 우리는 2번 출구 앞이고 여자 두 명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태국 여행 내내 볼트로 택시 부르기를 시도했는데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다. 그럴 땐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볼트에서 본 가격을 이쪽저쪽 맞춰 흥정해서 타는 게 빠르다. 공항을 올 때 탄 택시는 400바트를 부르길래 350에 가자고 제안해서 왔다. 클럽음악 같은 영어로 된 힙합음악을 틀어주는 20대로 보이는 남자 택시기사였다.


택시를 타자 센 에어컨 바람이 훅 하고 들어와서 살 것 같다. 그 사이 땀에 젖어 볼에 붙은 옆머리 몇 가닥이 날리고 이마의 땀이 식기 시작한다. 한 5분 달리자 기사는 highway? 하고 물었다. “하이웨이 타는 게 더 빠른가요? “ 하고 영어로 되물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다. 더 비싼 거겠지. 어차피 고속도로인지를 안타도 걸리는 시간이 40분 정도라 괜찮다. ”No thank you.”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카운터에 사람이 없다. 기척을 하니 아저씨가 나오는데 평소 영어에 뛰어난 다른 직원들과 달리 약간 어눌하다. 그래도 우리 방이 어디고 엘리베이터는 저쪽에 있으니 타고 올라가라는 정도의 의사소통은 통했다. 캐리어를 끌고 아저씨가 가리킨 곳으로 문을 열고 나가니 이 호텔의 주인공인 수영장이 나왔다. 와! 하고 아름다움을 보았을 때의 기쁨에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정말 예쁘다. 맑은 물에 밤이어서 어둡지만 주황색 벽과 야자수들, 그리고 수영장이 규모가 작지 않아 좋아 보였다. 수영장에 꼭 가야지.


3층으로 향해 복도를 따라 쭉 걷는다. 나무 열쇠로 문을 연다. 다행히 무거운 열쇠는 아니다. 카드 말고 열쇠로 돌려 여는 감성이 에어비앤비 집에서 자는 느낌도 든다. 방에 도착해 커튼을 치려고 하는데 밖에서 우리를 따라 시선을 옮긴 아저씨와 눈이 마주친다. 제대로 찾아갔는지 걱정한 눈치다. 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만들어 흔들면서 괜찮다는 시늉을 한다. 수영장이 예쁘고 싸서 숙소의 질은 포기했는데 그래도 꽤나 널찍하고 파란색 시트도 예쁘다. 침구류도 포근하고 괜찮다. 접시와 칼, 포크 등이 있어 과일을 사다 깎아먹어도 되겠다. 다행히 에어컨이 있어 얼른 켠다.


옷을 다 벗고 문이 없는 옷장 밑에 대충 놓는다. 빨개 벗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가 이를 닦는다. 어메니티가 따로 없다. 샴푸와 몸 씻는 비누만 통에 들어 있을 뿐. 와 칫솔 가지고 오길 잘했다. 손은 클렌징폼으로 씻어도 되지만 작은 비누가 없는 게 아쉽다. 이 호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찬물이 잘 안 나온다는 거다. 특히 잠깐호텔에 짐을 놓고 나가기 전에 샤워를 하는 낮에는 엄청 미지근하고 뜨듯한 물만 나와 씻은 느낌이 안 든다.

셋째 날 오전에 짜뚜짝시장에 다녀와서 저녁에 아이콘 시암 크루즈를 타러 가기 전에 2시간 정도 수영을 했다. 전세 낸 것처럼 나 혼자만 있을 수 있다. 괌에서 산 원피스 수영복을 안에 입고 하얀색 큰 수건으로 몸을 두르고 내려오니 프랑스인처럼 보이는 4인 가족이 수영을 하고 있다. 1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과 남자 청소년, 그리고 엄마다. 깡 말랐는데 건강하고 예뻐 보이는 몸이 프랑스인 같다. 비키니를 입었는데 시크해 보인다. 살이 쪄서 괌에서 산 원피스가 많이 낑긴다. 사진 속 내 몸을 보니 너무 투실투실하다. 거대한 동그라미가 떠다니는 것 같다. 빨리 살을 빼고 싶다.


몸을 담그니 시원하다. 수영장 바닥의 하늘색 색감과 싱그러운 풀 색깔 그리고 주황색의 호텔 벽 색이 마음에 든다. 예전에 출장으로 제주도 부영호텔에 하루 묵은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수영은 못하고 잠만 잤었다. 그 예쁜 부영호텔 감성의 호텔을 하루 4만원에 자는 거다. 프랑스인들이 떠난 수영장 한가운데 두둥실 떠서 하늘을 본다. 시원하고 고요하다. 무라카미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의 돌고래호텔에 온 듯 이곳은 단순히 호텔이 아니라 한 상황이고 추억이다. 돌고래호텔에 가고 싶다고 갑자기 슝-하고 갈 수 없는 거다. 나는 이곳에 속한 듯 속하지 않는다. 눈만 깜빡-하고 뜨면 나는 리무진을 타고 집에 돌아가고 있겠지?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추억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돌아올 때면 내가 이 순간을 생각했던 그 장소를 떠올리게 된다.


다음에 방콕을 가게 된다면 스쿰빗 지역이나 지하철 역 주변 교통이 편한 곳으로 갈 것이다. 교통이 나쁘고 택시도 잘 안 잡히지만 그래도 이 호텔을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에 찌릿했던 그 마음은 스트레스로 생긴 뇌세포와 몸의 불순분자를 죽였다. 정형화된 고급호텔보다 좋다.


방콕에 자주 갔던 친한 남자 차장에게 카톡을 보냈다. 안 그래도 방콕 가기 전에 어디 어디 가면 좋은지 조언을 구했었는데 갔다 와서 이건 이랬다 저건 저랬다 내가 산 이 예쁜 접시 좀 봐라, 하고 사진 폭탄을 날렸다. 호텔에 시원한 물이 안 나오고 위치가 안 좋아 아쉬웠다 하니, “수영장 성공하면 방콕 여행은 성공한 거예요. 과장님은 항상 호텔 잘 고르더라.” 하고 말했다. 그래요? 하고 아쉬움이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 사라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콕에서 감성 사진 찍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