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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Oct 05. 2023

몽골에서 게르 말고 에어비앤비

”몽골은 별 보러 가는 거야?“ 추석 때 몽골에 간다고 하니 동료 모두가 보이는 반응이다. 그런데 나는 초원에서 자며 별보는 게르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도 밖에 있어서 불편하고 모르는 한국인들과 몇박 며칠 생활하고 싶지 않았다. 친한 사람들하고도 여행 가도 불편하고 단점이 보이는데 특히 유머코드가 안 맞는 사람과 하루종일 붙어있는 게 싫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전형적이지 않은 몽골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 호텔 가격과 상태를 찾아보았다. 호텔 말고 에어비앤비에서 자고 싶은데 에어비앤비가 더 싸고 좋다. 단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마지막 날 저녁 8시 비행기라 짐 보관을 해야 한다. 괜찮은 에어비앤비 몇 개에 하트를 눌러놓고 위치가 좋아 보이고 평이 좋은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호스트는 짐을 보관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바로 결제를 했다. 몽골에서 에어비앤비는 베이징, 리스본에 이어 세번째인데 이번에도 물론 매우 만족스러웠다.


택시에서 내려서 아파트 앞에서 만난 호스트는 20대 남자로 보였는데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 만나자마자 집 소개와 집에 어떻게 비번을 치고 들어가며, 안에는 뭐가 있고 뭐가 있다, 하고 매번 반복되어 익숙한 듯하게 얘기를 쏟아냈다. 말이 빠르고 소통이 잘된다. 한국 남자같이 반듯하게 자른 머리와 하얀 얼굴, 멀끔한 스타일과 체격, 스마트함은 분명 인기가 많을 요소이다.

에어비앤비 아파트 방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넓었다. 주방은 따로 다른 방에 분리되어 있는데 깨끗하다. 냉장도도 크고 인덕션도 4개나 있고 주방도구도 충분하다. 식탁과 의자도 있고 조명도 감각적이다. 환기가 가능한 창문이 있다.

외관은 구소련 아파트처럼 낡은 느낌인데 실내는 깔끔하다. 침대는 널찍하고 높고 푹신하다. 추울까 봐 히터가 따로 있는데 있는 동안 날이 추워져서 틀어 놓고 생활해야 했다. 한 가지 단점은 실내화가 없다는 점이다. 출장에서 혼자 방을 쓸 때 남은 일회용 호텔슬리퍼들을 챙겨 올 걸, 하는 생각마저 든다. 조명은 따뜻한 색이고, 소파와 책상 그리고 꽤 커다란 티비가 있다. 세탁기도 있어서 좋다.


걸어서 5분 거리인 국영백화점에 있는 노민마트에서 간단한 장을 봐다가 해 먹기 좋다. 몽골의 사과와 감자가 굉장히 맛있는데 사과는 수입산(맛있으면 러시아산 별로면 중국산이라고 함), 감자는 몽골산이라고 한다. 감자는 노릇노릇하고 고소해서 맛있는데 몽골 식당을 갔다가 건너편 한국인 무리가 와~ 감자 맛있다, 하면서 먹는 소리가 공감이 갔다. 마트에서 산 바나나, 바닐라 맛 두유는 맛이 좋다. 스웨덴에서 바닐라 맛 요거트 큰걸 사서 거의 매일 시리얼을 먹었는데, 요거트는 아니지만 그때 생각이 나서 집었다. 바닐라 맛은 막상 좀 인위적인 맛이고 바나나 맛이 맛있다. 락토 프리인 점이 마음에 든다.


에어비앤비 앱에서 집 소개에서는 드라이기가 있다고 해서 안 가져왔는데 아무리 서랍을 열고 해도 드라이기가 없어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랍을 찾아볼 수 있겠어요?” “아, 이미 찾아봤는데 없네요.” 하니 자기가 곧 가져다주겠다 한다. 잠시 뒤에 띵동 하고 벨이 울리고 문 손잡이에 문밖 화면이 컬러로 뜬다. 이런 것도 되는구나. 호스트가 아닌 키가 작은 아저씨가 가져다주고 나간다. 어디서 가져온 거지?

어제 일찍 잠들어서인지 아침 7시 반쯤 눈이 떠지고 밤새 히터로 건조한 공기를 환기시키려고 창문을 열었다.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잔잔하게 확 들어온다. 그냥 흐릴 뿐이라는 아이폰 날씨 예보와 달리 비가 후두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고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끌어당겨 엎드려 눕는다. 누워서 비 오는 소리를 듣는다. 창문 너머 나무의 초록초록한 나뭇잎이 비바람에 찰랑찰랑 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훈훈해진 방안에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떠다니기 시작하니 기분이 좋다. 약간씩 에너지가 생긴다. 우산이 없으니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려 조금 쉬다가 씻고 나가야겠다.

비온 뒤 감성도 좋다.
아파트 촌을 오가면 현지인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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