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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Dec 23. 2023

어느 직장 다니는지는 왜 물어요?

대학원 면접 후기

“자기소개서에 어느 직장인지 안 써있는데 어디 다녀요?” 하고 면접관 교수가 물었다.

“네?” 하고 잠시 당황한 나는 직장 이름을 말하지 않고 어느 부 산하 공공기관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수는 약간 짜증을 내면서, 아니 그러니까 그래서 어디냐고요. 직장이름을 말해야지, 하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할 말은 이거였다. 저의 직장 이름이 합격 여부에 관련이 있나요? 직장 말고 저 자신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그런데 나의 합격은 저 사람에게 달려있으니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기소개서에 직장 이름을 쓰지 않고 공공기관이라고만 썼다. 직장 이름과 직장의 사회적 명성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메이저 공기업이 아니기에 가치 절하될 것 같았고, 로스쿨 다니는 친구들이 자소서를 쓸 때 직장 이름을 쓰면 오히려 감점 사항이라고 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라도 인국공 등 들어가기 힘들다고 알려진 메이저 공기업 다니는 사람을 뽑을 거 같은데? 싶었다. 어느 공공기관을 다니든 그 속에서 내가 한 생각, 배운 것, 깨달은 것, 성과가 더 중요하지 않냐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교수는 내가 어디 다니는지가 중요한 가 보다. 공공기관이 몇 백개 되다 보니 듣보잡 취급받는 거 아니야? 싶었는데 의외로 아 ~~에 있는 거요? 하고 우리 회사를 알았고 호의적이어서 놀랐다.


어디를 다닌다고 하자, 또 다른 교수가 질문을 이어갔다. 우리 회사가 수행하는 ~~~ 정부 정책을 ~~이론과 연결시켜 말해보라는 것이다. 잠깐 당황했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말하다가 너무 장황해져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면접관들이 어떤 생각일지 눈빛과 감정을 읽기에도 바빴다. 나는 ~~이론은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그런데 실무자로 일해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이러이러한 고충이 있다. 나라가 기업의 이러이러한 자유를 제한하고 간섭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가,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살아가는데 일정정도 사회안전망이 필요하고 그것을 제공해 주는 게 나라의 역할이다, 그래서 양쪽 입장이 다 이해가 가면서 고민이 많다, 하고 말했다.  사실 교수도 모든 정책을 다 알지 못하니 어떤 말을 해도 진솔하게 말하면 그 속에서 사유하는 힘을 느끼지 않을까.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정책에 대해, 최근 국감 지적과 연결해서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장황하게 말했다, 하고 면접장을 나와서 생각했다. 친한 동료에게 내가 받은 질문과 답변을 말했더니 오히려 대답을 잘했다며 합격할 것 같다고 말해서 안심이 되었다.


면접 준비를 딱히 안 했다. 면접 준비랄 게 없다. 후기를 보아도 3-5분 정도 나에 대해 묻는 간단한 질문을 하고 끝난다는 것이다. 방대하게 쓴 각자의 자소서와 수학계획서, 내 텝스 접수, 졸업한 학부와 성적으로 이미 합격권이 결정될 거라 생각했다. 텝스는 그날 배탈이 나서 설사 투혼으로 시험을 봐서 약간 아쉽긴 했지만 이정도면 됐다 싶고 텝스를 보러 시험장을 왔다 갔다 하고 주말의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어서 그냥 그 점수를 냈다.


보통 지원하는 사람들 보다 점수가 높아서 그런지 면접관이 텝스 준비는 어렵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텝스는 단기간에 공부해서 오르는 시험이 아니지 않나요? 평소 영어를 공부해 온 게 있기 때문에 그냥 가서 봤고 지원점수 이상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수학계획서 쓰는 게 어려웠다고 답변했다. 수학계획서는 실제로 내가 어떤 논문을 쓸지 써내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관심 있는 검색어를 넣어 지원하는 과 교수들 중 관심 있는 사람 세명을 추려서 각각 논문 10개 정도씩을 다운로드하고, 그 교수들이 지도교수로 쓴 석사학위 논문도 각 10개 정도씩 다운로드해서 봤다. 그리고 성균관대, 한양대 석사들은 어떻게 썼는지 논문을 더 보았는데 다들 정말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방대하게 자료를 수집해서 연구하고 통계를 돌려 이렇게 써냈을까. 석사들은 대단하다. 한편으로 내가 과연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자신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대학원 공부를 진정 원하는 것인가? 를 생각해보니 이거 논문 공부가 귀찮고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지원을 마음 먹었으니 완성해보자, 했다.


그래도 논문들을 쭉 크게 크게 읽다 보니 내 관심 영역이 좁혀지고, 지식이 확대되고 평소 궁금증과 연결해서 연구하고 싶은 논문 주제가 다섯 개 정도로 추려졌다. 이젠 그 주제로 키워드를 넣어 모든 논문을 대상으로 한 50개 정도 논문을 다운로드했다. 쓱쓱쓱 이 사람이 이 주제로 택한 methodology, 논리 흐름, 쓴 자료 이렇게 취할 것만 취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래서 내가 평소 관심사와 연결해서 이런 논리와 주제로 연구를 할 거고, 선행 연구들에서 제안한 이러이러한 방향을 채택하여 발전시켜 보겠다, 하고 수학계획을 써냈다. 통계는 지금 단계에서는 잘 모르니 수업에서 배워서 적용하겠다고 솔직하게 썼다. 나의 고민과 궁금증도 주제에 잘 담았다고 생각해서 짧은 시간에 써낸 것 치고는 자신이 있었다.


지원했다가 떨어진 동료는 나에게 인문대라 연결해서 쓸게 없겠네요,라고 말했었다. 인문학의 가치를 잘 모르는 걸로 봐서 S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학부에서 문사철을 배우고 대학원에서 경영이니 행정이니 법이니 하는 실용 학문을 배운다. 문사철이 탄탄해야 사고를 확장할 수가 있다. 나는 인문학도로서 자신이 있고 자소서에도 대학 때 한 학기에 고전문학을 열 권 이상 읽으며 인문학으로부터 얻은 통찰력과 상상력, 사유하는 힘의 가치를 어필하며 녹여냈다. 공부를 많이 해본 사람들이니 오히려 더 인문학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까. 오히려 난 사회과학 연구원과 로스쿨 논문형 글쓰기 모의고사에서 1등을 했었다. 상경계 출신이 대다수인 학생들 가운데서 인문대생인 내가 최고득점한 것이다. 평가위원 교수는 강평에서 자기가 쓴 예시답안과 거의 흡사한 글을 쓴 학생이라며 자기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왔냐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며 내 답안을 복사하여 공유하였고, 로스쿨 교수는 자기가 로스쿨 중간고사에 똑같이 냈었는데 나의 사고와 논리에 미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이 사람은 어딜 가도 수석을 할 거라며 높이 평가했다. 로스쿨에 올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탄탄하게 쌓은 인문학 베이스로 우리는 어떤 학문을 공부하든 자신이 있다. 인문학과 인문학도의 가치를 절하하는 사람들이 한심스럽다. 이 사람들을 보면 보통 자기 경험 테두리 안에서만 사고하며 그것만이 옳다고 믿으며, 그 세계관을 벗어나는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아 손절하게 된다.


밖에서 5분이 지나자 똑똑, 하고 조교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교수는 더 궁금한 것이 있는지 추가 질문을 했다. 왜 서울대를 선택했으며, 어떻게 이 과에 들어올 생각을 했고, 또 합격하면 직장인인데 어떻게 수업을 들을건지 등. 굳이 열심히 면접 준비하지 않아도 답할 수 있는 평이한 질문들이다. 그냥 내 생각을 진솔하게 말했다. 떨어뜨릴 거면 내가 뭘 말하든 떨어뜨릴 것이고 합격할 애면 뭐라 말해도 합격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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