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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12. 2024

조급증 있는 P는 어설픈 J화 된다

여행의 시작

회사에 안 나가기 시작한 지 일주일째. 위장이 너무 쓰리고 아파서 병원약도 4일 동안 먹었지만 좀처럼 낫지를 않는다. 곧 장기 여행을 떠나는데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야 하는데 배가 계속 아프다. 스무 시간 정도 굶고 소식하고 고로쇠 물도 마셔보고 찰밥으로 먹어보고 일본에서 사 온 카베진도 두 알씩 몇 번 먹어보았다. 가만히 있어도 배가 아프다가 이제는 눌러야 아픈 정도로 약간 완화되었다. 무엇때문에 좋아진 건지 변수가 많아 알 수 없다.


여행을 가기 전 챙겨야 할 것들을 메모장에 적어두고 하나씩 지워 나가면서 짐을 쌌다. 20대에 여행을 다닐 때는 싼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그냥 무작정 떠났다. 핸드폰으로 구글지도 보면서 다니기 전 시절에는 종이 지도를 펴서 보고 다니고 관광 안내소에 가서 이 도시에는 뭐가 볼 게 있어요? 어딜 가야 해요? 하고 정보를 얻어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며 다녔다. 공항에서는 무조건 도착해서 인포 데스크를 찾아 city center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여행 경험이 쌓이다 보니 좀 미리 검색을 해보게 된다. 무작정 다니다가 길을 잃어 택시를 타야만 한다거나, 미리 셔틀버스나 버스 이용시간 등을 숙지하고 가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고, 비행기 시간을 잘 챙기지 않아 비행기 얼른 타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6살 많은 독일인 친구와 핀란드를 가는데 우리 이름을 부르며 비행기 타라고 방송이 계속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친구가 늑장을 부려 늦어졌긴 하지만 같이 다니다보니 나도 덩달아 느슨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기다리고 짜증 나는 게 싫다.


기내에서는 건조해서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 인공눈물과 핸드크림을 챙긴다. 이번에는 장거리로 가니 물티슈가 필요할 것 같아 챙겼다. 공항은 항상 추리닝을 입고 크록스를 신고 오는 루틴이 생겼다. 공항 내에서 탑승구를 향하는 긴 길에는 늘 올리고 다니던 크록스 발손잡이?를 내려서 발목에 닿게 걸쳐서 걷는다. 훨씬 덜 피로하다.


체크인을 하는데 좌석 이동이 안된다. 에티하드는 좌석 선정에 추가 요금을 받는다. 다행히 자동으로 선택된 자리가 엑스트라 레그룸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지정되어 있는데 선호하는 복도 자리라 좋다. 게다가 바로 옆자리에는 사람이 비어있다. 세 자리 텅텅 빈 좌석이 많아 이동하고 싶어 이리저리 검색해 본다. 결국 짐을 부치면서 직원한테 물어보기로 한다. 카운터 직원도 자리 이동이 원칙적으로는 안되는데 크루한테 물어보고 옮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엑스트라 레그룸이 아니더라도 그냥 세 자리 누워서 가는 자리가 있으면 누워서 가고 싶다. 저번에 모스크바에서 인천행으로 맨 뒷자리 젖힐 수 있는 자리를 선택했는데 세 자리 나밖에 없는 칸이어서 누워서 왔는데 시간도 잘 가고 좋았다. 대신 화장실 앞자리라 안 좋다.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니 자주 깨고 불안함을 느꼈다.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항공사에서 제공해 주는 공항 호텔로 가야 하는데, 후기와 유튜브를 통해 호텔 가는 길을 익혔는데 알고 보니 내가 도착하는 터미널은 신 공항이라 걸어서 갈 수가 없는 것을 전날 밤에 알게 되었다. 택시로는 10분 정도인데 2만 원 가까이 나온다고 한다. 택시비 낭비를 제일 싫어하는데 어쩌지, 하고 호텔 사이트에 들어가 셔틀버스 시간을 알아본다. 25분마다 버스가 있네, 몇 번 출구 가서 타는 거네. 이걸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공항에 도착해서 물어 물어 가려면 1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착-하고 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도착하는데 새벽 시간과 돈을 낭비할 수 없지. 아 근데 도착해서 짐 찾고 입국 심사하고 ATM에서 얼마 정도 찾고 내일 필요한 버스 카드 구매도 미리 하고 1시간마다 오는 셔틀버스를 잘 탈 수 있을까. 막상 알아봤는데 그것대로 움직이는 게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주말에는 제이넵이 살고 있는 퀴타히야인가 하는 곳에 가기로 했는데, 근처에 구경할 만한 대도시인 에스키셰히르는 이스탄불에서 기차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금요일 밤에 갈지, 토요일 아침에 갈지, 토요일 아침에 출발한다면 이스탄불 어느 기차역으로 갈지, 돌아올 기차는 자리가 있는지, 이 모든 걸 미리 계획하는 게 나는 스트레스이다. 그냥 금요일 밤에 토요일에 갈 표를 알아보고 제이넵 집에서 돌아오는 표를 예약해서 돌아오고 싶은데, 돌아오는 표는 그냥 즉흥적으로 해도 될까? 하고 말하니 일요일 밤에는 이스탄불행 열차가 모두 만석이라고 했다. 그래도 제이넵이 기차 시간과 버스 옵션을 잘 알아봐 주고 a, b, c안을 제시하면서 계획을 잘해줘서 그대로 예매를 했다. 휴. 미리 무언갈 계획하면 그거에 맞춰야 하고 놓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맞추고 하는 것이 나는 너무 불안하고 불편하다. 계획을 하는 것이 즐겁고 그걸 따르는 것을 마음 편해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나는 J가 아니기 때문에 계획이 엉성하다. 예약하고 굵직하게 대략적으로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중간중간 연결고리의 계획이 되어 있지 않아 계획을 따르는 사이가 불안한 것 같다.


결국 에스키셰히르에서 만나서 여행을 하고 제이넵 집에 가서 자고 제이넵 도시를 여행하고 다음날 아침 부르사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내가 버스 6-7시간씩 타는 게 멀미 나고 부담스럽다고 하니 2시간 반 걸리는 부르사행을 계획해 주었다. 이스탄불에서 부르사로 페리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가도 좋긴 한데 가방이 무거워서 걱정이다. 제이넵 집에는 최대한 가볍게 가야지. 제이넵이 한국 여자들 피부가 너무 좋다면서 화장품 심부름을 부탁했는데 이것저것 사다 보니 벌써 좀 무겁다.


인천공항에는 오랜만에 리무진을 타고 온다. 1시간 정도 걸렸었나, 여유 있게 잡고 왔는데 1시간 15분 걸렸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데 고속도로도 공항도 너무 널럴하다. 리무진을 타고 오는 한 시간이 지루할 까 싶었는데 이 생각 저 생각하니 금방 도착한다. 3시간 전 도착으로 여유 있게 오니 덜 불안하다. 온라인 체크인을 해 놔서 집 부치는 줄도 내 바로 앞 한 사람 밖에 없었다. 와 너무 순조롭다. 뭘 좀 먹을까. 원래는 김밥을 먹고 싶었는데 식당가를 두리번거리다 오므토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를 네 달 정도 했던 곳! 나는 오므토토마토의 토마토소스, 부드러운 계란이 너무 좋다. 그런데 매장이 많이 사라져 먹은 지 한 10년 가까이 된 것 같아 반가워 바로 매장으로 향했다.

토마토소스는 데미양파소스라는 이름으로 쓰네 이제는. 그래도 깐쇼새우, 왕새우, 버섯 등 일할 때 있었던 메뉴가 대부분 있고 카레와 도리아가 강화되었네. 깐쇼새우에 토마토소스나 크림소스로 바꿔달라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 제일 비싼 메뉴가 왕새우 12,900원이었던 것 같은데 14,000원이면 십 년이 넘었는데 많이 오르진 않았다.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덜 익은 깍두기 맛 그대로네! 깍두기가 한식집 깍두기 같지는 않고 패밀리 레스토랑 깍두기 맛인 게 특징이다.


체크인도 면세 구역 들어오는 것도 기다림 없이 바로 이루어져서 기분이 좋다. 공항 안은 햇살이 들어와 굉장히 따뜻하다. 겉옷을 벗었다. 인천공항은 의자도 화장실도 넉넉해서 좋다. 혼자서 옆자리에 짐 놓고 양쪽에 다 사람이 없는 구역을 찾아 앉으면 좋은데 대부분 자리가 비어 있어 한갓지다. 이를 닦고 립밤을 바르고 앉아서 쉰다. 글을 쓰다 보니 한 시간이 금방 간다. 여전히 배 아픈 것이 좋지 않다. 핸드크림이 무거우니 굳이 챙겨 오지 않고 면세에서 친구를 주느라 내 것도 산 마데카 크림을 손등에 바르며 핸드크림을 가져오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친구 선물로 가방이 무거워졌다.


처음으로 중동을 간다. 아랍에미리트라는 곳, 지도에서 보면 근처에 사우디가 있고 아시안컵 우승한 카타르도 있다. 지도를 보다 보니 오만, 바레인 이런 나라들이 여기 있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번주 다음 주에는 수강신청도 해야 하고 개강 전에 찾도록 아이패드도 주문해야 하는데. 다행히 수강신청은 핸드폰으로 가능해서 좋다. 촉박해서 마음 불안한 여행을 하고 싶지 않은데 이제부터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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