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은 최고의 복지이다. 종강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2주 동안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뒹굴뒹굴 보냈는데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학기 중에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학교 가는 날은 공부 안 하고 딱 수업만 듣고 학교에 안 가는 날은 쉬엄쉬엄 2-3시간 정도 리딩을 하고 나머지는 자유시간을 가졌다. 조교 신청을 안 해서 내 시간이 많이 나서 좋았다. 지금은 두 달 반동안 첫 방학을 맞게 되었다. 방학 동안 학기 중에 못 읽었던 논문과 이론을 접하려고 했는데 아직 시간이 많으니 쉬엄쉬엄 하려고 2주 간 놀았다. 여행 전까지 집에서 마구 뒹굴뒹굴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이라는 드라마가 종영해서 다 봤다. 흥행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명품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무엇이고 사랑과 모정은 무엇인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드라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노선생으로 부르다, 노박사라고 부르다, 마지막엔 이름을 불렀다.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책에서 계신 곳을 생각해 내 눈이 가득 쌓인 숲 속 산장을 찾아가고, 새로운 연인과 함께 잘 지내시는 걸 확인하고 눈밭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미끄러진 김에 누워서 하늘을 보는 장면. 눈 쌓인 이파리들과 시원한 하늘이 보인다. 마음이 개운하고 행복해 보인다. 시어머니로 나오는 배우의 발성과 말투, 감정, 몰입, 스타일리시함이 멋져 보였다. 연기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기력한 남편 역할의 배우도 그 배우가 가진 목소리와 발성이 큰 무기 같다. 이세나 역할은 사이코패스인데 연기자의 소화력이 부족해 보였다. 흉내만 내는 겉도는 느낌이다. 특히 춤추는 장면이 너무 어색하고 몰입이 안된다. 해야하니 하긴 해야겠고 나름의 심오한 표정을 하고 팔을 휘휘 젓는 느낌. <버닝>의 여자 주인공이 상의를 벗고 자유롭게 추는 춤이 떠올랐다. 그 배우가 했더라면 더 잘 어울렸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덮어놓고 오래 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를 다 읽었다. 두 권의 대 서사는 결국 내 손에 잡히는 현실 그리고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고 소중함을 크게 느끼는 결말. 하루키는 줄거리로 요약하면 단순한데 한 문장 한 문장 쌓아나가며 줄거리를 형성해 내가고 그 사이의 대화와 생각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게 장점이다. 저 너머의 세계와 현실을 다루는데 SF 같다기보다 감정적 여운이 길다. 요즘엔 피츠제럴드의 <무너져내리다>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앞부분은 피츠제럴드의 에세이가 나오고 뒤에는 단편이 나오는데 재미있다.
성적이 발표되었는데 의외로 잘 받아서 기분이 좋다. B+정도 받을 것 같다, 하면 A를 받고 뭐 A 정도 주시면 감사하겠다, 하니 A+가 나왔다. 시험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좋아서 좋다. 나는 항상 B쁠 정도를 목표로 공부한다. 그래서 힘이 들지 않는다. 너무 이해가 안 가거나 못 외우겠는 건 포기한다. 그러니 아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적당 적당히만 공부한다. 체력이 안되기도 하고 귀차니즘이 있다. 공부는 좋은데 시험은 싫어! 평소엔 재밌어서 교과서, 논문 읽기를 성실히 하는 편이어서서 그래도 매주 쌓인 것이 있어 시험 기간에 공부를 막 열심히 안 해도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는 것 같다.
이번주엔 여행을 간다. 재미있게도 인도를 가려고 했다가 인도네시아에 간다. 인도 가려고 며칠 동안 구글지도에 다 표시해 놓고 기차 스케줄도 알아봤는데 날씨가 너무 덥다고 해서 포기했다. 그렇게 하노이, 치앙마이를 열심히 또 여행영감을 받기 위해 찾아보다가 결국 즉흥적으로 인도네시아에 가기로 결정하고 방학하자마자 비행기를 예약했다. 시간이 많은 백수니까 경유로. 10년 전쯤에 갔었던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한다. 경유여행도 기대가 된다. 말레이시아 전자도착카드?를 쓰는 것으로 바뀌었네. 인도네시아는 비자가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비자도 온라인으로 미리 신청하고, 방학하자마자 미리 맡겼던 중국 비자도 오늘 나와서 여권을 찾았다. 편도만 끊고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인도네시아는 돌아가는 항공표도 필요하다.
하고 싶은 것을 메모장에 정리해서 써 놓으니 제법 계획이 있어 보인다(가서 알아볼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