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3)
그래, 동남아에 왔으면 마사지를 해야지. 쿠알라룸푸르 환승 여행에서 만 오천보씩 걷기도 하고(여행에서 만 오천보면 많은 건 아니지만 오랜만이다..)비행으로 다리도 부어서 마사지를 하기로 했다. 구글맵에서 마사지를 검색하는데 250k나 하고 베트남 태국을 생각하면꽤 비싸다. 그리고 마사지 샵이 잘 없고 왓츠앱 같은 걸로 부르는 출장 마사지가 대부분인 것 같다.
자카르타 북쪽에 숙소를 잘못 잡은 나. 북쪽에 망가두아 스퀘어라는 곳에 Queen Massage라고 뜨는데 가격이 저렴한 것 같고 네일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는 것 같다. 원래 묵을까 고민했던 노보텔도 있어서 괜찮은 곳이겠지, 하고 지도에 동선을 찍어본다. 걸어서는 25분, 버스 타고도 25분 정도 나오는데 IDR 3,500짜리 버스 노선이 나오고 다른 하나는 JAK. 이라는 버스 노선이 무료라고 뜬다. 아, 무료 버스가 있는 건가, 뭔지 모르지만 탈 수 있다고 나와 있는 곳으로 일단 가보자. 쇼핑해서 사 입으려고 일단 자카르타에서 며칠 동안 입을 옷들만 가져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까만색 드레시한 너풀거리는 반팔에 청반바지를 입었다. 너풀거리는 반팔은 단추가 예뻐서 더 좋다. 괌에서 산 리바이스 반바지인데 그때보다도 더 살이 쪄서 입기 불편하진 않지만 사진으로 보면 작아 보인다.
어제 비바람이 치던 야시장이 아침에는 조용하다. 어제는 비가 와서 추웠는데 햇빛이 세다. 몇 미터 안 걸었는데 벌써 조금 덥다. 그래도 약간 살랑한 바람이 불어서 좋다. 지도에는 주변에 쇼핑몰이 많다고 해서 괜찮은 지역인 줄 알고 예약했는데, 말만 쇼핑몰인 유령 도시, 폐허 같은 곳이다. 버스 타는 곳까지 5분 정도 걸어 나갔는데 JAK이라고 써져 있는 버스가 온다는 건지, JAK 뒤에 있는 숫자가 쓰여 있는 버스가 오는지 목을 빼고 지켜보는데 정류장 표시 있는 곳에 서 있는데 뭐 비슷한 교통수단도 안 온다. 주변에 서 있는 아저씨에게 구글맵을 보여주었는데 손가락을 멀리 가리키며 저기로 가봐야 한다고 한다.
어디로 가야 하지. 허둥지둥 도로에 지나가는 차들만 보고 있는데 현지인들이 여러 명 타서 앉아 있는 허름한 승합차 같은 게 선다. 예전에 비엔티안에서 현지인들이 타고 있는 커다란 단체 툭툭에 탔을 때 다들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 사람들의 눈빛을 하고 있는 자카르타 현지인들이 타 있다. 흠.. 숫자는 다른데 일단 그 승합차가 서서 나를 부르니 다가간다. 어딜 가냐고 묻는 것 같아서 구글 지도를 보여 준다. WTC 망가두아,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라고 뜨니까 여기까지 간다고 해야겠다. 부부가 같이 운행하는지 나에게 말을 건 아줌마가 뭐라 뭐라 운전하는 아저씨한테 말하더니나에게는 타라고 해서 일단 탄다. 이게 공짜인 건지, 돈을 달라는 대로 주고 타는 건지. 그래도 현지인들이 타는 거니 비싸게 바가지 씌우진 않겠지. 히잡을 쓴 할머니와 꼬마 아이들이 나를 호기심 있게 바라본다. 나도 미소를 짓는다. 중간에 얼마 정도 돈을 주고 청년이 내린다. 한 5분 정도 달렸을 까, 내가 내릴 곳에 벌써 도착했다. 얼마 정도 내야 하지? How much? 하고 물었는데 답이 없다. 다른 노선이 3.5K 정도 했으니 5K 정도 내면 거스름 받겠지? 하고 거스름을 기다렸는데 아줌마는 복대에 자크를 잠그고 거슬러 주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에게 말하니 비싸게 탄 것이라고 했다. 450원 정도지만 그래도 더 낸 기분은 좋지 않다. 언어가 안 된 댓가지 뭐.
봉고차에서 내려 그 쇼핑몰까지 가는 길을 구글맵으로 확인한다. 횡단보도는 당연히 없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오토바이 부대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본격적으로 이 journey를 시작하기 전 길을 확실히 눈에 익힌다! 흠, 저기 차가 올라가는 좁은 길이 있는데 저 길이 맞나. 일단 지도는 저 길을 가리키니 저쪽으로 가보자. 아직 첫날이라 오토바이 부대 뚫기가 익숙하지 않으나 차근차근 눈치를 보며 건너가 본다. 이쪽엔 그림자가 없어서 햇빛이 엄청 뜨겁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보니 야외 주차장이 나오고 파스텔 톤의 색이 바랜 커다란 쇼핑몰 같은 건물들이 있다. 와 여기가 노보텔이 있는 곳이라고? 허름해서 믿기지가 않는다. 아직 10시 전이라 오픈은 안 했을 것 같은데 더우니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쇼핑몰 입구에 의외로 로손이 있다. 로손에 들어가서 혹시나 도지마 롤이 있나 괜히 확인해 보고 나온다. 있으면 아직 배는 안 고프지만 아침을 핑계로 사 먹으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어묵바들을 판다.
쇼핑몰에 들어가니 아직 오픈하지 않고 철문을 내린 칸막이들로 가득하다. 조금 걷는데 되게 냄새가 좋다. 갈색의 나무 조각 같은 것을 잔뜩 가져다 놓고 향수를 파는 상점이 죽 늘어져 있는 것이다. 화려한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이 향수를 팔고 있다. Oud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아라비아 향수인가. 2월에 아부다비에서 경유 여행을 할 때 우디 향을 Oud라고 쓴 것을 봤었다. 저 나무 조각들은 우디한 향을 파는 향수 가게라는 것인가 냄새가 나는 나무 조각들인 것인가? 아직도 궁금증은 해소되지 못한 채. 그 골목을 걷다 보면 상점을 들어와서 향을 맡아보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발목을 붙잡는다. 성가신 정도는 아니다. 나는 여행을 하면 향수를 자주 사기도 하고 우디한 향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 다가가서 맡아보기로 한다. 가격이 얼마인지 대체로 시세를 알고 싶어 가격도 물어보는데 15ml에 150k 정도면 괜찮다. 처음 가격을 물어봤을 때 100ml로 큰 것만 권하는 곳을 지나 영어가 잘 통하는 인도네시아 여자가 파는 상점에서 작은 향수를 하나 샀다. 향수를 잘 못 사면 위험할 것 같다는 큰 근거는 없지만 막연한 생각이 아주 조금은 있기 때문이다.
난 바닐라향과 우디한 중성향을 좋아한다고 하니 여러 가지 추천을 해 주었다. 그중에 중국인들이 엄청 좋아해서 많이 사간다는 향도 있어서 계속 추천을 해 주던데 그 향은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브랜드에서 맡아보지 않은 다양한 향을 살 수 있어서 여행하면서 우연히 사는 이런 향수들이 좋다. 한국에 와서 새로운 향을 풍기고 다니는 게 즐겁다. 향수를 뿌리면 나는 그 향을 잘 못 맡지만 머리끝에 뿌리면 맡는 사람들이 풍부하게 맡아서 종종 느낌을 이야기해 줄 때 향이 너무 좋다고 하면 기분이 좋다. 이스탄불과 아부다비에서 산 우디한 향과 다른 향으로 사고 싶어 여러 번 맡아보면서 골랐다. 처음엔 살 생각이 없이 맡아 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막상 너무 맡아 보니 작은 병이라도 사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작은 소비면서 기쁨을 주는 이 소비를 하고 싶은 충동이 커졌다. 이번엔 아주 약간 상큼 달콤하게 과일향이 도는 우디한 향으로 Bakarat라는 이름의 향을 골랐고, 서비스로 체리향도 같이 담아 주었다. 처음엔 그냥 향을 덜 수 있는 작은 병을 보여 주길래 스프레이 없냐고 하니 여러 가지를 꺼내 왔다.
조금만 사길 아주 잘한 것이, 담아져 있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맡은 큰 향수에서 스포이드로 짜서 덜어 주는 것이다. 위생과 안전은 약간 포기해야 한다. 성분이 걱정스러워서 의미 없는 질문을 구글 번역기로 해서 보여주었다. 위생과 안전이 달려 있으니 영어보다 원어로 묻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 같게도 돌아온 답은 그냥 "나무나 침향뿌리 같은 향신료가 들어있어요, "였다. 너무 바보 같은 내 모습에 순간 황당했다. 왜 여긴 인도네시아인데 이곳은 중동 향수를 많이 팔아요?라고 물었는데 중동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 했나, 뭐라고 대답은 하던데 딱히 뾰족하지는 않아 흘러들었다. 이 향수는 오만에서 왔고, 자기는 인도네시아인 알바생이고 사장님은 오만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 이제 마사지나 받으러 가자.
되게 황량하고 후진 제3세계 쇼핑몰 같은 이곳을 돌아다니며 마사지 샵을 찾았다. 마사지 샵이 여러 개 있는 것 같은데 닫혀 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가. 쇼핑몰 광장 같은 곳에 마사지 기계를 가져다 놓고 마사지를 하는 아저씨가 내가 지나가니 마사지하라고 권한다. 아,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하는 마사지를 하고 싶어요, 하고 사진을 보여 줬다. 그러더니 2층으로 올라가 왼쪽으로 꺾어서 걸으라고 한다. 오, 고맙네. "뜨리마 까씨" 하고 인사를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탔다. 텅 빈 상가들이 보이고 아주 저 멀리 마사지 샵이 있는 것 같아서 열심히 걸어가는데 아까 그 아저씨가 부르더니 이 쪽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처음엔 나를 부르는 소리를 못 듣고 계속 걷는데 내가 안 보니까 이쪽으로 뛰어 왔다. 저쪽에 연 데가 있다는 것 같다. 따라가 보니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려고 입간판을 꺼내고 있는 아줌마가 있었다. 아저씨는 대가도 없이 왜 이렇게 열심히 나를 도와준 것일까. 너무 착하고 고맙다. 나중에 마사지가 끝나고 길에서 또 만났는데 혹시 한국 돈이 있냐고, 자기 지갑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해외 돈을 모으고 있는데 혹시 작은 지폐라도 있으면 바꿔줄 수 있냐는 것이다. 천 원짜리라도 있으면 바꿔주고 싶었는데 가진 한국돈이 하나도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길에서 받는 마사지는 참으로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냥 상가 칸막이 하나에서 커튼을 치고 그 작은 공간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침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주 얕은 매트리스 하나 깔려 있고, 공간은 겨우 옷을 갈아입을 정도로 작다. 얼굴을 대는 곳에도 수건을 대거나 하지 않아 내 화장이 바로 묻는다. 다음 사람은 어떻게 쓰는 거지. 하루에 한 번이나 빨면 잘 빨 것 같은데 전 사람이 땀을 흘리고 마사지받은 데서 그냥 누워서 하는 건가. 여기 오는 관광객은 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손님이 있긴 할까. 아, 그래도 노보텔 손님들이 여기가 가까우니 들르긴 하려나? 하는 생각을 혼자서 하며 누워서 아줌마를 기다렸다. 둘이 있기에 공간이 좁아서 왼쪽 오른쪽 팔다리를 할 때는 나도 요령껏 몸을 비켜 주었다. 오랜만에 마사지를 받는데 너무 시원하고 좋다. 오일을 이용해 등과 종아리를 시원하게 풀어 준다. 나중에 발리에서 받은 Balinese massage와 유사했다. 베트남에서 받았던 오일 마사지는 너무 부드럽기만 해서 풀리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여기서 받는 오일 마사지는 그래도 좀 압이 있어서 개운한 느낌이 있다.
1시간에 100k 정도로 굉장히 싸서 그래 1시간 반을 하자, 하고 120k짜리를 하려고 했는데(자카르타에선 싸다고 느낀 이 가격이 발리에 가면 모든 샵들의 기본 가격이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됐는지 1시간 하고 끝났다. 혼자서 작은 공간에서 열심히 해 준 아줌마에게 10%의 아주 작지만 그래도 팁을 드렸다. 아줌마는 엄청 크게 기뻐하며 얼굴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발리에서도 마사지를 할 때 보면 딱히 팁 문화가 없다. 그냥 칼 같이 쓰여 있는 가격만 계산하면 되고, 마사지해 준 사람도 다른 나라처럼 팁을 주기를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는 뉘앙스가 전혀 없다. 그래서 밖에서 본 가격을 보고 들어가고 팁을 얼마를 줘야 하지, 하고 고민하는 일 없이 끝나고 내고 나오면 되니 좋다.
마사지를 받고 나오면서 손톱을 만지면서 네일 할 수 있는 곳이 있냐고 아줌마에게 영어로 물었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지만 내가 손톱을 만진 걸 보며 아 한 층 내려가면 된다고 방향을 손으로 알려 준다. 감사했어요! 인사를 하고 네일샵에 간다. 미용실 겸 네일샵인데 밖에서 가격표를 보니 네일이 60k로 굉장히 싼데 안에 들어가니 12시 반쯤 오라고 한다. 흠, 다른 데를 가봐야겠다. 다른 층으로 내려가 본다. 짝퉁 같은 싼 옷들도 팔고 이것저것 잡동사니들을 많이 판다. 사람이 많아졌다. 카페들도 있고 외국인도 간간히 있다. 코너를 도니 네일샵에 사람이 있어 얼마냐고 물으니 140k이다. 아까 본 가격보다 비쌌지만 그래도 12,000원 정도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싸니까 페디큐어를 받겠다고 한다. 약간 오렌지빛이 도는 쨍한 레드로 하고 싶었는데 마침 비슷한 색이 있어서 했는데 색깔이 마음에 든다. 길거리 소파에 앉아 있고 내 발을 해주는 여자는 여러 기구들과 자기가 앉을 수 있는 쪼그려 앉는 의자와 수건을 가져와서 차려놓고 해 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옆 가게의 옷을 구경한다. 전통 문양 같은 옷 같은데 꽤 예뻐 보여서 끝나고 다가갔지만 파는 사람이 없어서 사지는 않았다.
아, 이제 슬슬 배도 고프고 점심시간인데 그랜드 인도네시아에 가기 전에 여기서 먹고 갈까? 거기 가서 먹을까? 아무래도 쇼핑몰이 거기가 더 크고 잘되어 있을 테니 푸드코트 같은 데가 더 괜찮겠지? 다시 이동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