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5) 허저우
- 오늘은 하이킹을 할 거야
- 하이킹? 아? 응.
흠, 뭐, 하이킹? 등산을 하는 건가. 아침에 호텔 옆 편의점에서 산 작은 물을 작은 크로스 가방에 넣었고, 내가 모기를 잘 물리니 친구가 뿌리는 모기약을 챙겼다. 모기가 나만 유독 잘 물리고 이 주에 유독 피곤하고 짜증이 나고 지쳤던 게 더위 탓도 있지만 생리하기 며칠 전이어서였다. 등산하기 전 입구에서 오아아악, 하고 온몸에 잔뜩 뿌렸다. 생리 전 증후군이라 따라다니는데 날도 더운데 걷기가 짜증이 났다. 호르몬의 변화로 더 짜증이 났을 것이다. 나를 위해 여행을 계획해 준 친구에게 짜증을 낼 수 없어 혼자 속으로 삭였다. 그런데 오늘도 하이킹이라니. 여행은 컨디션 좋을 때 해야 한다. 여자의 삶은 힘들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온 지 3일 차. 도착해 보니 구포산이라고 한국어로도 표기되어 있는 곳이다. 어, 저거 한국어 아니야? 하고 친구 남편이 내게 말했다. 친구 남편도 영어를 잘한다. 어, 그러네. 반갑네. 근데 이곳에 한국인이 올일이 있을까?
친구는 미리 온라인으로 표를 4장 예매했다. 이곳은 단순히 등산 코스만 있는 게 아니라 곳곳에 테마파크 처럼 되어 있는 엄청 넓은 규모의 국립공원인데, 정말 잘 조성해 놓았다. 너무 넓어서 꼭 기차를 타고 다녀야 한다.
산장 같이 꾸며진 대기소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예기치 않게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친구 남편은 모자가 있고 친구 둘은 우산을 챙겼는데, 나는 친구랑 우산을 같이 쓰기에 너무 많이 와서 젖을 것 같았다. 우산 같은 거 귀찮고 무겁게 다니는 걸 너무 싫어해서 폭우 아니면 안들고 다니는 나. 마침 우비를 파는 상인들이 있어서 하나 사기로 했다. 엄청 비싸게 팔 줄 알았는데 5천 원 정도로 생각보다 쌌다. 두 종류 중에 천 원을 더 주고 그나마 튼튼해 보이는 핑크색을 하나 골랐다. 알리페이를 켜고 QR을 카메라로 인식해 결제했다.
거세던 비가 한 꺼풀 꺾일 때 걷기를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장소는 폭포수가 있는 곳인데 입구에서 약간만 걸어도 폭포수가 나왔다. 우비를 입으니 우산을 안 써도 돼서 좋긴 한데 핑크색 우비 속은 이미 습기로 가득 차서 후덥지근하다. 시원한 폭포 근처에 가니 기분이 좋아 계속 미소 지었다. 중국인 친구와 라오스 꽝시폭포에 갔을 때 시답지 않아 하며 중국에도 많다, 하고 감흥이 없어 보인 이유를 알 것 같다.
넓은 땅덩어리에 이것보다 대단하고 아름다운 경치가 얼마나 많겠어. 트립닷컴이 중국앱이어서 그런지 중국의 아름다운 사진이 많이 뜨는데, 중국엔 그랜드 캐년, 하롱베이, 스위스, 카자흐스탄, 몽골, 발리 우붓의 계단식 논, 유럽이 다 있다. 중국인은 비자받기도 힘든데 자기네 나라에 다 있으니 중국만 다니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겠다.
비가 어느 정도 그쳤다. 우비를 괜히 샀나. 두 번째 코스인 평지의 걷기 코스에서 산책을 하는데 구름 떼가 아름답다. 우리는 녹차밭 코스로 가서 셋이 사진을 찍었다. 친구 남편이 굉장한 카메라를 가져와서 열정적으로 여러 장을 찍어주었다. 친구는 모든 여자들의 로망인, 사진을 잘 찍어주는 남편과 결혼한 것이다. 녹차밭도 구름이 서라운드로 가득해 손을 모으고 행복해~하며 함박웃음을 짓게 되는 그런 뷰였다. 녹차밭을 구경하고 내려가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녹차를 시음하는 곳 쪽으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기차 같은 차를 타고 와서 도착한 곳은 인공 정원이다. 기차 같은 차에는 모두 아시아인이며, 나 혼자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특별함을 느꼈다. 아, 이 산 전체에 비아시아인을 못봤다. 인공 정원에는 엄청 크고 징그러운 잉어들이 산다. 내가 잉어를 보고 호들갑을 떨며 disgusting이라고 하는 걸 친구들이 재미있어한다. 잉어가 사는 정원에는 기념품 샵도 있다. 전형적인 기념품 샵 같지 않고 젊은 예술가들이 작업실 겸 사용하는 인더스트리얼한 감성의 곳이다. 어제 야오족 박물관에서 내가 고르자 친구가 계산해 준 소수민족 키링과 함께 올해는 용의 해니 용을 하나 사서 달았다. 8위안. 각 띠별로 있었는데 용이 너무 귀여워서 꽂혔다.
오늘은 트래킹만 하러 온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넓은 곳을 코스마다 돌아다니게 되는 줄 몰랐다. 친구도 내가 별로 궁금해하거나 불만을 가지지 않으니 그냥 3-4시간 정도 걸릴 거다, 하고 별 설명 없이 어딘가를 데리고 오고, 나는 막상 가서 아, 이런 데를 왔구나, 하고 패키지족처럼 그냥 남이 짜준 일정대로 따라다니는 것이다. 나라면 여기를 알아보고 오기로 했으면 이러이러한 데를 갈 것이고 코스별로 차를 타고 내려 한 20분 정도씩 구경을 하는데 5-6곳이 있다, 하고 말을 해줄 것 같긴 하다. 근데 진짜 언제 끝나, 싶은데 엄청 돌아다닌다.
다음으로 내린 곳은 원숭이가 가득한 산이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친구가 여기는 원숭이가 나올 수 있으니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말해줬는데, 이렇게 떼로 나타나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인지는 몰랐다. 산을 타고 내려오는 길에 관리인이 원숭이를 부르는 소리를 내자 산 곳곳의 나무를 타고 있건 원숭이들이 잔뜩 내려온다. 우르르 내려오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굉장하다. 이렇게 많은 원숭이를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이다. 바로 발 옆을 지나간다. 너무 가까이 가는 건 왠지 조심스러워 멀찍이 떨어져서 아기를 달고 껑충껑충 뛰는 원숭이를 본다. 귀엽고 소중해. 쟤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지난달에 우붓에서 몽키 포레스트에 가지 않았는데, 갈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