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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Sep 09. 2018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내공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들이 쉰 숨에서 찬기가 느껴진다. 아 벌써 가을이 온건가.

상쾌하고 개운하다.

한 겨울 코가 아릴 만큼 차가운 공기를 잠깐 상상해본다. 아니다. 지금이 딱 좋다.


가을이 오면 더 감성적이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우울함의 파고를 잘 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심연의 어떤 것이 불쑥 나와 영감을 주는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영수증을 구길 때 바스슥거리는 소리, 억수같이 내리는 비가 우산에 투두 두둑 떨어져 팝콘 튀기는 소리에 매료되었다.


몇 달 전부터 집-회사-집의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혼자만의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정말 오랜만에 우리 스터디 모임(정확히 말하자면 스터디 모임-> 독서 모임-> 계모임으로 변한)방의 한 친구(동갑은 아니고 언니)가 연어가 너무 먹고 싶다며 퇴근 후 같이 먹자고 했고, 어쩌다 보니 나와 그 친구와 둘이 보게 되었다.


집-회사-광화문-집은 내 일상의 일탈이 되었다.

광화문까지 가는 길, 광화문역에서 나와 약속 장소 근처 친구의 회사 근처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은 내 일상과는 다르기에 두리번두리번 거리게 되었다. '와, 광화문의 퇴근 무렵은 이런 모습이구나. 광화문 사람들이 지나간다.' 호기심이 생겼고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약속시간보다 빨리 도착해 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즐거웠다.





이 언니는 어릴 때부터 책을 정말 다양하게 많이 읽었다.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요즘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빠져있다가 왔다고, 얀 마텔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발굴해서 너무 좋다고 하자, 그가 쓴 <파이 이야기>와 내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은 뒤 읽고자 하는 <20세기의 셔츠>를 읽었다고 하였고, 평소에도 내가 이런 책을 읽어보려고 하는데 어떤가?라고 하면 거의 읽은 책인 경우가 많았다. 고전, 사회과학, 각 분야의 전문서 등을 편식하지 않고 다양하게 읽은 사람이어서 융합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인 것이 대번에 느껴진다.


나는 책은 읽고 싶을 때 읽는 것이지, 쉴 때 하고 싶은 행위는 아니다. 쉴 때는 널브러져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게 곧 휴식인 것을 느낀다.


요즘 내가 잠깐 발을 걸치고 일하는 곳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이 기관을 생각했을 때 기대한 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것에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러이러한 것에 대해 이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하는 영역에 대해 무지, 무관심하고 속이 비어 보여 실망했다. 그런데 이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내가 이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수준의 고민과 관심이 이 친구 입에서 나와 감탄하면서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며 일상에서 같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언가 생각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허탈함도 느꼈다.


대화 중에 내가 가진 의견의 가정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였으며, 몇 줄로 정리될 수 있는 나와 내가 지향하는 일에 대한 문장 사이사이 스페이스 바를 꾹 눌러 다시 생각해 볼 여백을 만들어 준 것 같다. 내가 왜 이 관점으로만 사고하고 있었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며, 전구에 불이 반짝 들어오듯 몇 가지 영감과 고민 과제를 주었다. 나와 다른 분야 속에 살고 있는 그 세계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깐 동안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게 곧 어떤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냐를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개인마다 읽는 책의 범주도, 읽는 방식도 다양하기에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뭉뚱그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자면 이들에게서 다양한 생각, 사고방식, 문화, 세계에 대한 이해력과 분별력이 느껴지고, 대화 중에도 다양한 질문거리와 관점을 던져준다. 자신의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분야를 이해하며 그것을 자신의 분야로 끌어와 창의성과 융합성을 발휘할 역량을 쌓는다. 물론 그 역량을 발휘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책을 읽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은 속 빈 강정처럼 보인다. 추구하는 가치가 단편적이고 뻔하며 생각이 평균적이다. 사회의 겉도는 이야기들 외에 깊은 대화가 되지 않는다. 쉽게 휩쓸리고 동요한다.  내가 뭐라고 자신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하는 가 싶기도 하지만,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책을 읽고 꿈을 꾸고 글쓰기를 생각하면서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교양있는 삶을 산다면.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깊고 다양한 고민으로 이끄는 건 결국 인문학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 좋다. 인간 내면의 깊숙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며, 주변에 있을 법한 많은 사람들이 대입된다는 점에서 입체적으로 읽힌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도스토예프스키 <백치>를 함께 읽으며 인물들의 심리를 얘기하곤 했는데, 나는 그 중 나만이 어떤 심리인지 이해하고 공감이 간다고 했던 "아글라야" 캐릭터와 많이 닮았다. 물론 두 번째 읽으면 다르게 다가올 수 있으나 처음 읽을 땐 그랬다. 두꺼워서 다시 읽을 엄두가 안나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곱씹을수록 놀라운 것 같다. 최근 다시 읽은 <지하 생활자의 수기>를 읽을 때 그랬다.


나의 책 읽는 양도 참 부족하다. 새로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책을 여태껏 몰랐다니,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이 책을 못 읽어 보고 죽는다면 아쉬울 뻔했어하고 감탄하며 더 많은 책들을 읽고 싶은 목록에 올리지만 귀찮아서 후순위로 밀리는 것을 보면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얀 마텔이 캐나다 수상에게 읽기를 바란다며 101권을 추천하며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소위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여 아이디어, 기술 등이 융합되어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고 한다. 정책가는 한 분야만 고려해서는 다양한 영역이 엮여 돌아가는 데 따른 파급효과를 예측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에 얀 마텔이 자신의 국가 지도자가 이 문학만큼은 꼭 읽고 깨달았으면 하고 편지를 쓴 심정이 이해가 가며, 비단 국가 지도층 뿐 아니라 다양한 부문에서 일하는 우리들 각자가 인문학을 통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고민하고, 토론하고, 융합하여 사고하면 어떨까. 우리 모두 일상에서 thinker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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