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학원 공부가 내게 남긴 것

by 모네

나를 둘러싼 세계가 확장되었다

먼저, 내가 속한 세계가 새롭게 확장되었다. 평소에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장소로 일상이 바뀌고 풍부해졌다. 강의실, 식당, 다른 건물 등 하나씩 익숙한 곳이 생겼다. 여러 특강을 통해 평소 관심 있었던 것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기회를 갖고, 관심이 없었지만 생소한 분야의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물론 나의 이력도, 소속감이 있는 그룹도 추가되었다.


발표 실력..이 늘었을까?

발표는 자신감! 이 아니었다. 내용은 허술한데 자신감만 넘치면 더 초라해진다. 발표 실력은 자기 객관화 능력과 눈치에서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까지로 욕심부리지 않고 사람들이 뭐에 흥미 있을지 쳐낼 것을 쳐내는 눈치.


대학원 수업은 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된다. 대단위 강의식 수업이 아닌 이상 10명 이상 규모가 있는 수업은 적게는 한 수업에 2번, 규모가 작은 세미나식 수업은 많게는 한 학기에 10번 이상 발표가 있다. 10분 내외 발표부터 2시간 동안 내가 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구성해서 발표하는 수업도 있다. 10분은 많은 내용을 압축해서 핵심만 말하는 능력이 요구되고, 긴 발표는 시간 압박은 없지만 방대한 양의 자료조사를 위한 절대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한 시간 넘게 떠들면 목이 매우 마르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전달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가 흥미로워하는 지점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무엇이 학문적 혹은 실무적으로 의미가 있는가를 적절히 잘 고민해야 한다. 과도하지 않은 적절한 시간을 투입해 괜찮은 정보를 찾아내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발표를 효과적으로 준비하는 연습이 반복된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점, 아쉬운 점을 흡수하여 나의 다른 발표에도 적용하면서 점점 나아지게 된다.


업무를 할 때 총괄 담당자로서 10분-20분 정도 담당자들을 교육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다. 교육 담당자가 아닐 때라도 고객에게 제도를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처음 할 때는 되게 많이 떨렸다. 백지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질까 봐 해야 할 말을 다 타자로 쳐서 외워갔다. 타자를 쳐서 외워야 한 것은 내가 종종 기사에서 뇌졸중 증상이라고 언급되는 것처럼 대화를 하다 단어가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증상이 중요한 순간에 나타날까봐여서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동시에 쳐다보는 공포도 있었다.


대학원 3학기 동안 수십 번의 발표를 통해 꽤 단련되어 이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대본을 타자로 써서 미리 외워가지 않더라도 슬라이드를 보면서 발표하고자 하는 바를 수월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슬라이드를 만들고 머릿속으로 논리적 흐름을 한 번 정리하고, 발표 시간에 맞출 수 있는지 말해보는 연습만 전날 2-3번 정도 해보고 가면 괜찮다. 회사에 복귀해서 교육하는 일이 있을 때 이제는 더 잘할 수 있고 오히려 교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엄청난 진전!


가르치는 사람이 중요하다

수업을 접하기 전에 약력만 보면 서울대를 나와서 미국에서 박사를 하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교수가 되는 것이 보통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커리어가 아니므로 그저 '와, 대단하다, 멋지다, '라고 생각했다면, 실제로 교수님들의 수업과 커멘트를 들으면 그 내공이 너무 대단해서 괜히 교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멋지다.


시니어 교수, 주니어 교수라는 표현을 쓰던데 50대 중반 이상의 시니어 교수님들은 인간 챗gpt다. 어떤 질문이든 개떡같이 말해도, 심지어 질문한 사람이 자기가 질문을 하지만 뭘 궁금한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줄줄 말하고 있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배경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질문을 한 것인지를 엄청난 통찰력을 가지고 척척 이해하며, 해소되는 답을 해낸다. 반드시 딱 떨어지는 정답을 낸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방향으로 이끈다. 일할 때 '우리는 관리자가 가르마를 잘 타준다,' 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봤는데, 그런 표현을 빌리자면 시니어 교수님들은 가르마를 잘 타준다. 자기의 주 연구분야가 아니더라도 광범위한 어떤 영역에 대해서도 수준 높은 답변을 뽑아낸다. 1분 대화에 굉장히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전문직이라고 하는 건가.


주니어교수님들(나보다 고작 몇 살 많고, 어떤 학생들보다 어리기도 한)은 지식과 통찰력보다는 천재성이 도드라진다. 지능이 굉장히 높다는 게 뿜어져 나온다. 아, 저 사람이 저렇게 뛰어난 연구를 해내고 인정받으며 어린 나이에 서울대 교수가 된 데는 머리가 좋아서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들이 한 학기 수업에 읽을 논문과 논의할 사항을 짠 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되게 많은 지식이 쌓여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재밌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영감이 넘쳐난다. 가이드의 중요성을 느낀다. 학부 때도 느꼈는데 초, 중, 고 교사와 교수는 수업의 질이 확연히 다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으리라.


TV나 유튜브에서 특목고를 찾아가서 수업을 듣는 것만 봐도 주입식 교육이 아닌 교육 방식과 과정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의 수준 차이가 크다. 일반고에서 평범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나는 되게 부럽다.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안 잘리니까 옛날 시절에 쉽게 교사가 된 사람이 아직도 다닌다. 진짜 뭐 저런 사람도 교사가 되었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중학교 영어 선생님은 중학생도 쉽게 잡아내는 오류가 가득한 시험문제를 내서 매번 복수 정답으로 인플레를 만들었다. 학생보다도 수학 문제를 못 푸는 사람이 수학 교사로 계속 벌어 먹고살고, 체육 교사가 체육 시수가 줄었다고 윤리를 가르쳤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무식함?을 놀리고 비아냥거렸다. 그분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실력이 안되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교사들은 자리를 비워주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특히 수학, 과학을 보다 전문적인 사람에게 개념과 원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배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계속 아쉽다.


수학은 문과에서도 중요하다

수포자는 아니지만 수학은 그냥 대학 가기용으로 주입식으로 겨우 연명하던 나는 공부할수록 수학적 배경이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그냥 모든 문제 유형을 통으로 암기해서 헤쳐나갔다. 수능은 통하겠지만 대학 이후에 사고력에는 아무 도움이 안된다. 문과생이더라도 취업이나 고시합격 등을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다. 경제학은 미시에서 미분 등 수학 문제 같은 문제도 많이 나오고 기본적으로 그래프를 자주 그리는 학문인데 수학적 사고가 튼튼하지 못하면 이해하는 속도가 느리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양적 연구에 통계가 사용되기에 수학을 잘했더라면 이해가 빨랐겠다. 어떤 학문을 연구하더라도 수학이 중요하다. 계량경제, 통계를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면 통계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빠르게 사용하게 되고 연구 시간도, 학위를 받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나는 똑똑한 사람일까?

재산은 물려받지 못해 흙수저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IQ가 140 이상인 것을 보아(지금 재면 더 떨어졌을 것 같지만) 어느 정도의 지능과 공부유전자는 물려받았다. 한국사회에서 흙수저인 것은 출발점부터 모래주머니를 양쪽에 무겁게 차고 달리는 퍽퍽한 인생으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학업 성취도가 우수하다면(게다가 학원 과외, 별 노력없이 맨날 1등만 한다면) 금수저들을 포함한 타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재밌는 경험을 하며 살 수도 있다. 나라도 돈과 지능 중에 선택하라면 지능을 택하겠다. 둘 다 가진 사람은 또 다른 걸 욕심내겠지? 그치만 지능도 계속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평범해진다. 결국 돈이 필요하다. 돈을 투자해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공교육이 몇 천만 원씩 내야 하는 특수 사립고의 양질의 교육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특출난 어린이였지만 형편이 어려워 영재교육을 받지는 못했고, 아쉽게도 점차적으로 평범해져 지금은 범인 중의 범인이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오랜만에 공부하니 못 알아듣고 뇌가 굳은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을 잠깐 했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또 나만의 생각과 관점이 있는 것이다. 이해력이 빠르고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면에서 생각과 논리를 표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대단하다, 하고 배우기도 하고 내가 제기한 문제의식과 논리의 공백 지적을 칭찬받기도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모두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각자의 관심사도 다 다른 게 재미있다.


연구자가 되기에 나는 머리가 좋지 않다. 이건 확실하다. 게다가 엉덩이 힘은 바닥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나의 강점은 나를 거쳐간 수십 명, 수백 명의 정체성이 섞여 입체적인 나를 이루고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포인트랄지 모두가 간과하였지만 중요한 포인트를 잘 잡아낸다. 비판적 시각이 발달했다. 왜 내 눈엔 논리적 결함만 쏙쏙 잘 보이는지. 지적을 왜 참을 수 없는 성격인지. 오해받는 인생이 힘들다.


내가 생각하기에 석사, 박사 이후 평생 공부하는 것이 업이며 + 인정 받는 사람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머리가 빨리빨리 효율적으로 비상하게 돌아가야 하고, 여러 생각을 새롭게 융합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학창 시절에 좀 더 질 높은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 두 개의 조합이 고루 발달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인생 2회차를 산다면 더 잘 살 수 있을 텐데ㅎㅎ 후회와 아쉬움은 미래에 자녀를 낳게 되어 건강하게 전수가 된다면 좋은 것이겠고, 지금은 논문을 잘 마무리해서 석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배운 것이라도 잘 적용해서 나에게, 회사에게, 그리고 공익에 도움이 되는 쓰임으로 녹여내는 것이 똑똑한 것이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KT 알뜰폰 이심으로 옮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