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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18. 2018

비엔티안이 일상이 될 때

#Chilax



라오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놀란 것은 더위였다.

제일 처음 느껴지던 것이 공기 차이였다. 그곳에 계속 사는 사람들은 그 마저도 11월이기 때문에 선선해진 것이라 했고, 현지인들은 오히려 춥다고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니기 시작해서 놀랐다.


처음엔 내가 있게 될 이 낯선 나라, 낯선 공간, 낯선 기후에 적응하는 일이 유일한 일이었다. 잠깐 휴가 내서 후다다닥 보고 가야 되는 것이 아니기에 느리게 느리게. 하루 나갔다 오면 이틀은 집에서 쉬기도 하고

집에서 해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잠깐 나가서 밥만 먹고 들어오거나 책을 가지고 근처 카페에 나가서 망고주스를 마시는 등 어찌 보면 자취하는 느낌이었다.



나중엔 매일의 삶이 익숙해졌지만 커튼을 열면 다시금 내가 라오스라는 낯선 나라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한 달 동안 있게 될 곳은 2층 집이었고 차고지는 배드민턴을 쳐도 될 만큼 충분히 컸다. 집은 천장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구조였고 방마다 화장실도 있었다. 내가 지낼 방도 화장실도 침대도 만족스럽게 컸다. 샤워시설은 깔끔하고 편리했으며 샤워 커튼은 내가 좋아하는 돌고래가 그려져 있었다. 매주 청소해주는 사람도 있어서 쾌적하기까지 했다. 요리 도구도 충분했고 냉장고에 식재료도 많아 요리를 잘 해 먹었다. 피아노도 두 대여서 십 년 동안 치지 않은 피아노를 오랜만에 실컷 쳤다. 하루에도 2층을 여러 번 오르내리면 자동으로 운동도 됐다.


창문을 열어 걸어 놓고 생활하면 에어컨을 틀지 않고 생활해도 선선했고, 처음에는 어색했던 작은 도마뱀 소리와 아침마다 우는 꼬꼬댁 소리가 익숙해졌다. 찌찌암이라 불리는 작은 도마뱀은 처음엔 징그럽다고 기겁했는데, 계속 보니 귀여웠고 모기를 잡아주는 이로운 동물이고 오히려 사람이 무서워 나에게 다가올 일 없다는 얘기를 듣고부터는 공생하기로 했다. 천장으로만 다니는 찌찌암이 자는 동안 내 얼굴 위로 떨어질까 봐 괜히 걱정을 했던 것이다.



집을 돌아서 큰길로 나가면 바로 컬리지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빠뚜싸이에서 학교 과제라며 나를 인터뷰하는 영상을 찍던 학생들이 이 컬리지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집 근처 풍경


내가 좋아하던 초콜릿 두유 냉장고에 가득 채우기
집 근처 카페와 국수집



집 근처에는 동네 슈퍼가 몇 개 있었고, 가끔 나는 두유나 과자, 물 등을 사다 먹었다.

물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인 태국에서 수입한 것들이어서 공산품들은 태국보다 비쌌다.


집에서 나가는 길에는 개들이 갑자기 불쑥불쑥 나타나 큰 개를 무서워하는 나에게는 도전적인 길이었다.


비엔티안을 찾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들려 누워있는 커다란 부처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오는 탓루앙에는 엄청나게 넓은 광장이 있어서 이 곳으로 나가 밤마다 한 바퀴 크게 돌며 운동을 하기도 하고 전기자전거를 타고 나가 씽씽 달리기 좋았다. 이 광장은 여의도 공원의 한 두 세배는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여의도 공원보다 훨씬 더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밤에는 서울에서는 잘 안 보이는 별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향해 목을 쭉 젖히며 별을 구경하며 한 없이 걸었다.




하루는 이웃에게 빌린 기계를 이용하여 거실 한쪽 벽면에 영화를 쏘아보았다.

신작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네이버 영화는 외국에서는 지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쉬운 대로 USB에 있는 영화 보기.

아무 걱정 없이 늘어져서 초콜릿 두유를 마시며, 속살이 주황주황한 파파야를 먹으며. 가끔은 졸기도 하면서.


라오스는 미디어를 만드는 환경이 발달하지 않아서 태국에서 만든 음악, 드라마, 영화를 본다. 라오스 사람들은 태국어를 알아듣는다고 했다. 라오스 소녀들에게 태국 연예인과 그들의 영상과 음악은 삶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이렇게 못 살고 돈 없어서 부모 형제가 죽었다는 얘기를 일상적으로 하는 나라에서, 운송 시스템 조차 발달하지 않은(택배를 우체국으로 직접 찾으러 가야 한다)이 저개발 국가에서 라오스산 미디어 영상을 기대했다는 내가 바보 같았다. 라오스와 비교하면 태국은 생산력도 되고 시장도 큰 살 만한 나라이다. 오히려 물가는 더 싸고 물건은 더 많은. 비교할수록 라오스가 왜소해 보였다. 차로 불과 한 시간 거리 너머의 나라와 그렇게 차이가 클 줄 몰랐다.


라오스 소녀들은 태국 영상 못지않게 한국 드라마도 보고 있었다. 스무 살인 여학생의 핸드폰에 태양의 후예 영상이 있어서 놀랐고, 만나는 여학생들마다 송중기가 결혼해서 슬프다고 했다.

내가 송중기를 몇 번 봤다고 하니 나를 너무 부러워하였다.

우리는 너무 일상적인 송중기였기에 라오스에서 새삼 느낀 송중기의 힘.




라오스는 아주 큰길이 아니라면 횡단보도가 따로 없고 신호등도 없어 그냥 눈치껏 막 건너다보니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나도 모르게 무단횡단을 몇 번 한 뒤

'아 여기는 라오스가 아니지.' 하며 스스로 통제해야 했다.






처음엔 라오스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고, 사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등 뭉뚱그려 동남아라고 생각했었다.



즉흥적으로 무계획으로 가서 살게 된 라오스.

라오스어를 배우는 한국 대학생부터 라오스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 컬리지를 세워 운영하고 있는 한국인들, 봉사자들 등 라오스에서 사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참 다양한 인생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를 느끼고, 또 우연히 알게 된 나를 도와주시는 새로운 인연에도 감사했다.


라오스를 좀 더 깊이 알게 되니 애정이 생기게 되었고 이 나라와 사람을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든 도와주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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