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네 Feb 15. 2018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보자

새로운 시작. 내 영혼아 행복해져라


직장을 그만두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말했다. 취업도 힘든데 더 버티지 왜 나오냐고. 배가 불렀다고.


출퇴근 왕복 3-4 시간 동안 숨 막히는 대중교통 속에서 자주 정신을 잃었다. 일주일 감기를 앓고 나면 그다음 주는 신경성 위장이, 그다음 주는 생리통이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나는 녹초가 되었다. 의사가 말했다. 구조적으로 몸이 죽어날 수밖에 없다고. 게다가 호르몬은 여성의 몸과 정신을 가지고 논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삶의 의욕이 없었다.


누가 인생의 행복지수를 말해달라고 하면 0에서 10 사이의 9를 말하던 나였다. 너는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게 그리 많아. 사람들이 늘 나에게 하던 말이었다.


멜라토닌을 잔뜩 먹고 내일 깨지 말까. 이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라오스 한 달 살기에 들어갔다. 옷 사는 데 월급을 다 써버리던 내가 라오스에서 5천 원짜리 야시장 원피스를 사 입고 2500원짜리 쌀국수를 먹으며 지냈다. 내일 출근해야 될 직장이 없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마음이 편안하니 살도 건강하게 찌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더운 나라에서 지내니 허여멀건했던 몸이 까무잡잡하게 타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 원 안 되는 돈으로 전신 마사지를 받았으며, 자주 팟타이 여정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사는 건 엄두도 못 내었던 라임을 2kg에 3천 원인가 주고 사서 라임청을 담가 먹었다. 에메랄드색 폭포물에 몸을 담갔고, 다국적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난생처음 추운 계절을 더운 나라에서 보냈고, 생애 두 번째로 외국에서 생일을 보내게 되었다.


라오스 소녀를 따라 라오스 국립대학이라는 곳에서 하루 수업에 참여해보았고, 수도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보육원 같은 곳을 방문해 소년, 소녀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그들과의 대화는 그들과 나의 미래에 관해서도 많은 생각과 영감을 주었다.



라오스 사람들로 가득 찬 툭툭이라는 교통수단을 타면 하얗고 길쭉한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뒤에서 실수로 툭 밀면 바로 도로로 내던져질 끝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앉았다.


내가 라오스라는 나라에 와서 라오스인 대학생 소녀에게 나를 맡기며 오토바이 뒤에 타 밤거리를 달릴 줄을 상상이나 해봤을까.



이모 댁에 있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비엔티안 곳곳을 활보했다. 지도 없이 아무 데나 내달렸다. 오토바이족 사이에서 속도를 최고로 높이고 스스로 오토바이인 줄 착각하는 전기자전거와 함께 씽씽 달렸다. 그러다 빠뚜싸이 공원에 멈춰서 책을 좀 읽고 가기로 했다.



내가 유일하게 가져온 <면도날>이라는 책 속의 래리에게 나를 이입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 주위 모두가 바람직하고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길을 버리고 책에 몰두하고 보통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경험해보면서, 또 낯선 곳에서 살아보면서 인생의 질문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찾아나가는 래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래리, 1년에 3000달러로 어떻게 살아?”
“충분히 가능해. 그보다 적은 돈으로 사는 사람도 많아. 나는 그 절반 되는 돈으로 살고 있는걸.”
“당신은 정말 너무 현실감각이 없어.
조국의 발전에 참여하고 이바지하는 게 당신의 도리 아니겠어? ......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책임을 회피한다면 미국이 어떻게 되겠어?”

“내가 제안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지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줄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샤넬을 입지 않아도 얼마든지 깔끔하게 입을 수 있어. 꼭 개선문 근처나 포슈 거리 같은 데를 가야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재미있는 사람들은 대개 돈이 없거든. ...... 그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당신도 좋아할걸. 비록 테이블에는 고급 와인이 아니라 평범한 싸구려 와인이 놓여있고, 시중 드는 하인이 없다고 해도 말이야.”
-서머싯 몸, <면도날>



우리 모두가 좋은 대학에 나와서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길임을 주입당해온 것 같다.


회사원 말고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는 거야?


처음엔 대학교 4학년쯤 되어 그 길이 당연한 양 대기업 입사 준비에 골몰하는 또래 친구들을 볼 때 고작 기업 돈 벌어 주는 일 하고 돈 많이 벌면서 사려고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한 거야? 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길을 생각해 보려는 나를 철이 없고 배부르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난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데... 내 인문학적 상상력이나 대학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면서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기업에 들어가 일하는 것에 대한 왠지 모를 거부감이 컸고 기업이 돈 더 벌기 위한 데 내 재능을 투여하느니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나는 특별하니 왠지 남들이 걷는 전형적인 코스 말고 다른 길을 걷고 싶은 청개구리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너희들이 용기 내지 못한 안정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어! 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물론 이후에 모 경제학과 교수님 글을 보고 민간 부문의 일부로서 일하며 경제 발전에 참여하는 것도 나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임을 배우게 되어 사기업에다니는 사람들의 역할,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존중심이 생겼다.  






11월이라 20도 대의 온화한 날씨였다. 나는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글을 쓰며 내 영혼을 달래주었다.

초록, 연두, 노란색 그리고 맑은 하늘색의 색깔과 날씨가 싱그럽게 어우러졌다.


따사로운 햇살, 따뜻한 나라의 이국적인 나무들, 선선한 바람, 그리고 새소리에 취한다.


빠뚜싸이를 바라보고 앉아 나도 관광지 속의 일부를 이룬다. 옆 벤치에 앉아 돋보기를 끼고 빠뚜싸이를 그리시는 백인 할아버지, 아빠 손 꼭 잡은 귀여운 백인 꼬마, 틀어 올린 똥머리에 온갖 핀을 꽂고 셀카를 찍고 있는 태국인으로 보이는 소녀.


몇 발자국을 더 가면 빠뚜싸이 입장권을 파는 곳에 아이스크림을 파는데. 아이스크림이나 먹을까 하다가 자전거를 가지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니 이 시원한 자리를 누가 차지할까. 자전거를 놓고 얼른 갔다 오자니 혹여 그 사이 자전거를 누가 훔쳐가기라도 할까 싶어 그냥 참고 그대로 벤치에 누워본다.



중.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나 들어 본 메콩강을 바라보고 있다니.


스물아홉의 끝 무렵.

계획에도 없던 라오스에서 살아보기.


영혼이 제대로 쉬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제대로 쉴 수 없다고 했던가.


일단 내 영혼은 잘 쉬고 있는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