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떠나도 계속되는 하루

치앙마이(9)

by 모네

날씨는 정말로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해가 쨍쨍하고 맑은 날씨가 거의 일주일째 지속되었고, 심지어 비가 하루도 안 오는 날도 며칠 있었다. 오늘도 자연스럽게 7시 전에 눈이 깨졌고, 생리 이틀차로 아랫배가 약간 무거워 벌떡 일어나고 싶지는 않은 몸상태였다. 나는 보통 아이폰 생리주기 하는 날짜에 맞춰서 생리를 하는 편인데 이번엔 2-3일 약간 늦어졌다. 수영장 카페 같은 곳이 있어서 가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혹시나 생리를 할까 봐 일주일째 못 갔고, 화요일 이후에 계속 배가 아프고 기운이 없었다. 요가를 하니 어지럽고 핑 돌아서 요가도 가지 못했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비생산적인 것이 짜증 나기도 하고 시간을 소비하는 게 아까웠다. 여성의 애환.


커튼을 촥 걷으니 방에 햇살이 들어왔다. 새하얀 시트는 뽀송하다는 착각을 준다. 햇빛으로 시트가 살균도 될까? 간단히 화장실을 갔다가 냉장고 쪽으로 가서 물을 꺼냈다. 1.5리터 생수의 거의 밑바닥만 남아서 아침에 한 번에 다 마시면 될 것 같다. 물을 꺼내는 김에 방에 불도 켰다. 파란색 라벨이 둘러져 있는 singha 물은 편의점에서 1바트 더 비싸다. 원래는 13바트짜리 세븐일레븐 물을 사서 먹는데 내가 살 때 마침 다 떨어졌었다. 원래 500바트짜리 네슬레 두병을 사면 항상 세일을 해서 몇 번 샀는데 물이 너무 맛이 없어서 1.5바트 생수병을 사는 것으로 루틴을 바꿨다.


물을 컵에 따라 마시고 아침에 넷플릭스로 뭐 볼 게 있는지 둘러보는데 딱히 끌리는 게 없다. 일단 정신을 몰입할 기운이 많지는 않다. 트리거인가 김남길이 나오는 총기 소재 시리즈를 몰아봤었는데, 엄청 재미있다기보다는 그냥 틀어 놓고 보기에 너무 재미없지는 않았다. 빌런으로 나오는 사람은 키도 크고 잘생기고 멋있긴 한데 연기가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빙의되지는 않고 대사와 표정을 짓는 느낌.


그렇게 아이패드를 다시 덮고 누워서 이불을 덮는다. 막 일어나서 그런지 아직 좀 춥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고 누웠다가 8시간 정도 이미 자서 잠은 오지 않았다. 배터리가 30 정도 남은 핸드폰을 집어 들어 켠다. 머리 근처에 놓으면 안 좋다 해서 가급적 떨어뜨려 놓아서 몸을 한번 더 왼쪽으로 힘을 주어 움직인 후 핸드폰을 땡겨 왔다. 올드타운 사각형 박스 좀 아래쪽에 있는 동네에 Weave artisan society라는 카페 겸 코워킹스페이스 겸 예술공간 같은 곳이 오늘 다시 문을 연다는 것을 아침에 페이스북을 통해 접했다.



주말에 근교의 플리마켓에서 90바트 주고 산 인디핑크색 칠부의 헐렁이는 주름 바지를 입고 위에는 바스락 거리는 소재의 반팔을 입었다. 그냥 훌렁훌렁 빨아도 금방 마르는 소재라 좋다. 낮에는 나갔다 오면 땀을 흘리니까. 볼트가 20% 할인 행사를 해서 불렀다. 그 weave 카페에 왔다. 기사도 여기가 맞나, 하고 그냥 아주 좁은 골목에 있는 곳인데 어디가 입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알아서 찾겠다고 지도 위치에서 내렸다. 그런데 바로 보이는데 좁은 입구 안에 엄청나게 깊고 넓은, 빈티지하고 힙한 공간이 들어 있다. 두리번거리며 동영상을 찍으며 들어갔다.


키가 큰 여자 직원은 오늘 오픈 첫날이라고 했고, 첫날이라 그런지 되는 메뉴가 많이 없었다. 당근과 사과 등이 들어있는 디톡스 쥬스같은 걸 하나 주문했다. 내가 페이스북에서 오늘 연다는 것을 보고 찾아왔다고 하니 반가워하며 고맙다고 했고, 직원은 매우 밝고 명랑하게 항상 말끝에 Thank you so much,를 붙였다. 까무잡잡한 현지 사람들로 보이는 젊은 남자들이 좀 있긴 했는데 모두 여기 카페 관계자 같았다. 층고는 매우 높고 공간은 넓어서 어디에 앉지, 하고 한참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콘센트 근처, 좀 시원한 에어컨 근처, 그리고 노트북을 하기에 테이블과 의자 간격이 괜찮고 의자가 편한 곳으로 정했다. 갈 때까지 손님이 나밖에 없었다. 그래 이런 데를 알고 오기가 쉽지 않지. 위치도 여행자들이 잘 가는 곳이 아니고 알려진 곳도 아니다.


오늘은 논문 3개 정도를 읽었는데 완전히 관련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언급되었던 것을 읽은 것이라 설렁설렁 크게 크게 읽으면 되는 논문들이었다. 그래서 리딩을 금방 끝냈다. 대학원은 엄청나게 많은 자율성이 주어지는데 시간 관리며, 여러 가지 것들을 혼자 해야 한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선정하려면 여러 주제에 노출되어야 하고, 그중에 마음에 드는 분야를 정하면 또 세부적으로 어떤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할지 연구 가능성과 의의, 데이터 등 현실과 타협해 나가는 과정이 빡세다. 그리고 선행 연구를 읽는데 어떤 식으로 탐색해서 어떻게 읽기 시작하고, 하루에 몇 개를 어떤 식으로 정리해서 읽어나갈지 등, 모두 자기의 판단과 센스에 달려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점검도 스스로 해야 하는데, 요즘엔 챗지피티가 과외선생님처럼 잘 도와주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자율성의 양면이 있다.


그렇게 논문 3개 정도를 다 읽어 나가는데 비가 쏟아진다. 이 건물의 지붕이 물에 닿으면 소리가 요란한 소재인지 천둥번개가 치듯 날카롭게 때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 소음이 심각해서 듣기 싫을 정도이다. 야자수가 있는 비 내리는 창밖 풍경은 싱그럽다. 원래는 여기서 몇 시간 있고 싶었는데 비가 그치면 얼른 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비가 좀 사그라들면 근처에 뭐 좀 먹으러 나갔다가 집에 가야겠다.


그렇게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프사를 바꾼 동료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는데, 우리랑 같은 공간에서 일하던 동료가 본인상을 당했다고 했다. 그것도 투신을 했다고 했다. 너무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았다. 같은 부서가 아니고 자리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한 두 번 대화한 게 다이지만 밝고 쾌활하고 굉장히 긍정적이고 사람 좋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마음을 먹기까지, 그리고 그런 결과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을까. 그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도록 만든 고통과 슬픔, 아픔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적지 않은 충격이었는지 하루종일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


우리는 겉모습을 보고 온전히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을 더 깊게 겪어 보았다 해도 온전히 그 사람의 생각, 감정, 그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까지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쁘며 자신의 감정에 대처하기에 바쁘다. 결국 나의 삶과 감정만이 소중하다. 너무나 당연하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니까. 인간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여러 두려움, 슬픔, 아픔 등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마주하고 이겨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마음을 다잡고 살아줬으면 좋겠는 마음 역시 결국 나 중심적인 생각이란 걸 깨닫는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고 쌀쌀해졌는데 그 직원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감정이 다운되고 기운이 없어졌다. 누군가 생을 달리할 때마다 나는 살아있으며, 눈을 떠 이 공간을 바라보면 세상은 여전히 굴러가고 있다는 걸 의식하게 되면서,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그대로 흐르겠지, 하고 생각한다. 내가 없는 세상이라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태국 사회적 기업과 디지털 노마드 트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