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10)
도이인타논은 치앙마이 여행 필수코스이다. 도이인타논, 도이인타논, 하고 계속 듣기는 했는데 트레킹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어서 하고 싶은 것 리스트에는 없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만난 어떤 분이 트레킹이 너무 좋았다고 특히 논뷰도 예뻤다고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 사진 한 장으로 끌려서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밴 옆자리에는 칠레에서 온 남자가 앉았다. 혼자 온 남자였다. 왼쪽 한자리 짜리 자리에는 체코인 남자가 앉았다. 40대 정도로 보였는데 계속 태블릿을 보면서 갔다. 구불구불 멀미를 유발하며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 아무도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없었다. 오른쪽 사람은 까만색 무선 이어폰을 갤럭시에 연결해 음악을 듣고 있었고, 왼쪽 사람도 태블릿으로 계속 검색을 하면서 가길래 “그렇게 뭐 읽으면서 가면 멀미 안 나요?” 하고 말을 걸고 싶었는데, 극 I 들은 갑자기 말 걸면 당황스러워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나서 참았다. 오른쪽 남자는 털이 북슬북슬 팔다리에 가득한데 손등은 털 없이 뽀얘서 재밌다고 혼자 생각하면서, 이것도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안 했고, 푸켓이라고 쓰여있는 핫핑크색 바지가 예쁘길래 예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을 걸어서 대화를 시작했는데 칠레 사람으로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에 여행을 온 것이었다. 발리도 곧 간다고 하길래 내가 반가워하며 발리에서 좋았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더니 갑자기 수다스러워지면서 챗지피티가 짜준 자기 인도네시아 여행 코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 나는 멀미 나는데 자꾸 뭘 보여주네. 알고 보니 투머치토커였다. 알고 싶지 않은 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여행지 사진을 계속 검색해서 보여준다. 순식간에 에너지가 떨어진 나.
차를 타고 정상에서 내리는데 너무 추웠다. 비도 오기 시작해 추울 수 있으니 외투를 가져오라는 여행사의 사전 고지가 도움이 되었다. 와로롯 시장에서 390바트인데 350바트에 깎아서 산 하얀색 소프트코튼 긴팔을 입고 갔었다. 원님만 근처에서는 똑같은 게 490바트이고 그나마 아줌마가 선심 쓰듯 450바트를 제시했는데 좀 비싸게 느껴져서 사지 않았었다. 낮에 에어컨 있는 곳에서 공부하니 후루루 가방에 쑤셔 넣을 수 있는 가벼운 긴팔이 유용하다.
우리 팀 말고도 가이드가 이끄는 투어 팀이 많았다. 비바람이 불고 안개가 끼니 커다란 나무로 둘러싸인 숲 속이 신비로우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어린이들도 많다. 추워서 이빨을 부딪히며 으으, 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은 대충 흘려듣고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곳 가장 높은 정상은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추운 건가. 하루 중에 여름과 겨울을 넘나 든다고 누가 말했다.
이곳에서의 설명을 마치고 다시 차로 돌아갔고,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부처상이 있는 곳에 왔다. 원래 치앙마이를 내려다보는 뷰가 예쁘다는데 안개가 심하게 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춥기만 하다. 둘러보라고 40분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시간이 남았다.
너무 추워서 트레킹을 할 수 있을까 싶은데 트레킹 입구로 차를 타고 다시 도착해서는 날씨가 맑아졌다. 비도 오지 않고 선선해서 좋다. 입구에서 남자 현지인 가이드가 새로 와서 길 안내를 해준다. 나무 막대기를 하나씩 나누어준다. 나도 가볍고 키에 맞는 나무막대기 하나를 집었다. 시작부터 같이 간 여자 가이드는 사진을 되게 잘 찍어준다. 태국 사람인데 얼굴이 갸름하고 코도 오뚝하고 예쁘게 생겨서 너무 예쁘다고 말해줬더니 함박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그러면서 “너도 예뻐.” 하면서 한국인들은 피부가 좋고 모공도 작다고 덧붙인다. 내가 몇 살인지 궁금해서 묻길래 ”30 몇 살이야,“ 하니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에 웃으면서 ”그건 나도 30 몇 살이긴 해, “하고 말했다. 영어를 정말 잘하길래 치앙마이의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다 이 정도로 잘하냐고 하니 자기는 대학에서 배웠지만 더 어린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배워 훨씬 더 잘한다고 했다.
내가 치앙마이 대학교에서 공부했냐고 물어봤는데 치앙마이 대학교는 태국에서 top 5 안에 드는 명문대여서 공부를 엄청 잘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는 다른 도시에서 공부했다며. 와, 치앙마이대학교가 진짜 명문대구나 그냥 시골 마을에 초록초록하고 캠퍼스 넓은 학교로만 생각했는데. 저번에 성태우에서 대화하게 된 70대 한국 아저씨가 치앙마이대학교가 서울대보다 세계 순위 높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트레킹 하며 만난 논밭뷰는 환상적이다. 쨍한 연두색 뷰가 펼쳐지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이 나온다. “우붓에 가면 이런 아름다운 논밭뷰를 볼 수 있어.” 하고 핑크색 바지의 칠레 남자에게 말했다. 우붓보다 여기가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칠레 남자는 알고 보니 영어를 배운 지가 1년밖에 안되었다는데 꽤 잘했다. 트레킹 안 힘들어? 하고 물으니 자기는 칠레 사람이라 산을 잘 탄다고 했다. 여자 혼자 남미 여행하는 거 어때? 하고 물으니 그는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했다. 둘 이상이 가라고 했다. 흠, 남미는 비행기 값도 비싸고 비행이 너무 힘들어서 가기가 힘든데 시간이 날 때 아니면 평생 가보기 힘들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
우붓에서는 자전거로 평지를 타고 돌다가 논 뷰를 만나거나 논뷰 카페에 도착해서 만났는데 여기는 산속에서 걷다가 만나니 더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뷰가 나타나고, 전체적인 뷰를 조망하니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또 그때는 햇빛이 쨍쨍해서 더웠는데 지금은 바람도 너무 완벽하게 선선하게 불어와서 더 행복감을 준다.
트레킹 중간중간 폭포도 나오는데 전혀 감흥은 없었다. 지난번에 루앙프라방에서 같이 여행하던 중국인 친구가 우린 이런 폭포가 엄청 흔해, 하고 아무 감흥 없어하던 게 공감이 되었다. 작년에 중국에 가보니 그냥 듣보잡 산에도 어마어마한 폭포가 있는 것이다. 그런 걸 봐서 그런지 이 정도 폭포는 한국에서도 있는데. 물도 누리끼리하고 뭐. 하고 반응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른 여행객들은 가족사진을 찍고 폭포 사진에 공을 들였다.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쓰는 가족 여행객들이 많았다. 초딩들은 힘이 넘쳐서 등산을 잘한다. 야무지게 백팩을 메고 나무 막대기를 짚으며 날아다닌다. 같이 밴에 탔던 프랑스 남자아이 가족은 영어를 잘 못해서 질문하면 계속 뭐라고? 하고 되물었고 대화를 부담스러워했다.
온통 진흙 범벅이 된 샌들과 함께 도착한 마지막 코스는 매끌렁루앙 마을이 나오고 한 카페에 도착한다. 한국의 패키지 투어처럼 강매나 불필요한 곳에 데려다주는 게 아니라 잠깐 쉬면서 커피와 차를 시음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사면되는데 가격도 저렴하다. 가이드 마이크 같은걸 머리에 차고 어디선가 핑크색 도인복장을 하고 아저씨가 나타나 유창하게 커피와 차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사라진다. 전문적인 느낌이 이곳 분위기와 안 어울려서 웃긴데 좋은 정보를 주니 좋다. 이 차는 피부에 좋고 뭐 눈에도 좋고 등등.
그중에 체코에서 온 삼남매와 알고 보니 이들의 아버지였던 왼쪽에 앉았던 아저씨는 가족이었다. 삼남매는 여기 카페에 앉을 때 내가 말을 걸어서 처음 대화를 했는데, 아버지와 남동생이 ”얘네 한국 문화 빠순이야. “라고 말하려고 하는 걸 입틀막 수준으로 막아낸 뒤 얼굴이 빨개지며 다시 침착하면서, 넷플릭스로 한국 시리즈 많이 보고 케이팝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하고 나에게 말했다. 나도 체코와 연이 있어서 서로 반가워하며 대화를 쏟아내고 이제 대학생이 된 큰딸에게 한국에 언제 안 놀러 오냐고 하니 안 그래도 돈을 모아서 갈 거가고 했다. 삼남매는 내가 본 평범한 길거리의 체코인들과 달리 영어를 굉장히 잘했고 알아듣기 힘든 체코인 억양도 거의 없었다. 자신감 있고 에너지 있었는데 아버지도 영어를 잘했다. 어릴 때 독일에도 살았어서 독일어, 영어, 체코어, 어머니는 또 슬로바키아 사람이어서 4개 국어를 한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말했다.
자기가 동경하던 한국인을 만나 대화하는 게 너무 행복해하는 소녀들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했다. 저번에 우붓에서 만난 호주인 소녀도 그렇고 영미유럽권 십 대들이 넷플릭스 등을 통해 한국을 접하고 한국에 호의적인 게 체감이 된다. 한국인 혹은 아시안에 대해 콧대 놓은 금발머리 소녀들이 변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인스타그램 같은 걸로 연락하면서 한국에 대해 공유해도 좋을 것 같아, 하니 소녀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보았다. 나를, 한국을 그렇게 좋아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너무 큰 행복감을 주었다.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 나도 너무 기뻐지고 에너지를 얻는다.
한번 말을 트니 투머치토커 본능 나온 왼쪽자리 체코인 아버지는 또 여행 계획과 자기들 시골 마을에 최근에 집 사서 사는 곳을 태블릿 지도로 보여주며 계속 지도를 보며 대화를 하였다. 돌아가는 구불구불한 길에 멀미 심한 나에게 가혹했지만 여행자들과 만나서 이제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보기 어려워진다는 걸 아니까 대화를 어느 정도 계속 나누었다. 쉬크한 삼남매는 앞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꼈다. 그래도 다 커서 이렇게 아빠랑 같기 여행하고 아버지를 굉장히 사랑하고 존중하는 화목한 가정을 보니 기분이 좋다. 아버지는 혼자 내일 숙소를 예약하고 갈 곳을 정하고 알아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갔던 곳 중 좋았던 곳을 물으며 근교를 추천해 달라고 하길래 치앙라이와 치앙다오가 어떻겠냐고 말했다. 나도 치앙다오는 외곽만 가봤는데 도이루앙 산 뷰가 예쁜 사진을 인스타그램으로 찾아 보여주면서 여기 예쁘지 않냐고 물었다. 그 사진을 보더니 괜찮은 것 같다며 아버지는 치앙다오 숙소 시세 검색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국적 여행자들과 기분 좋은 대화와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일상을 떠나 건강한 리프레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