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안과 겉>
- 가난이 나에게 불행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빛이 그 부를 그 위에 뿌려주는 것이었다. 심지어 나의 반항들까지도 그 빛으로써 환하게 밝아졌었다.
- 나는 빈곤 속에서 살고 있었으나 또한 일종의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한한 힘을 나 자신 속에서 느끼고 있었다.
- 나의 힘을 가로막는 장애는 가난이 아니었다… 장애가 되는 것은 오히려 편견과 어리석음이었다
- 가난 속에는 어떤 고독이, 하나하나의 사물에 그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는 고독이 있다.
- 나의 생은 안과 겉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 살아온 그 가난한 빛의 세계 속에 있다.
알베르 카뮈, <안과 겉>
책세상이라는 출판사에서 김화영 번역가의 번역으로 발간한 20권의 알베르 카뮈 전집이 있는데 그중 <안과 겉>은 빈티지한 갱지 촉감의 연한 황토색에 바랜 진분홍색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는 얇은 책이다. 카뮈의 책 중에서는 지금까지는 <결혼, 여름>이라는 책이 문장의 아름다움과 카뮈의 사유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으로 카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추천하던 책이었는데, <안과 겉>을 읽고 나서는 바뀌었다. <안과 겉>은 카뮈를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면서 <결혼, 여름>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동시에 가졌다.
다른 작품에서 카뮈가 가난에 대한 다른 인식을 담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는 재산을 통한 부르주아적 행복을 따분해하고 부럽지 않아 하며, 어린 시절의 빈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알제는 가난해서 괴롭고 음침하고 우울한 공간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과 풍요가 넘쳐흐르는 자연, 반짝이는 바다, 사람의 생명력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알제에 가보고 싶어 북아프리카 여행을 선택하게 되었을 정도로.
책을 읽으며 나의 배경으로서 가난을 떠올렸다. 길에 개똥이 가득한 매우 경사진 한쪽 편에 자리한, 다 기울어져 가는 집에서 다섯 살의 나는 에메랄드색 구식 통돌이 세탁기 위에서 동화책을 읽으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 올 줄 알았는데 새로 산 50권 전집을 다 읽어버릴 때까지 엄마는 오지 않았다. 온 가족이 방 한 칸에서 살고 부엌에서 연탄을 떼었다. 천장에서는 늘 찍찍거리는 쥐가 쿵쿵 지나다니는 소리가 났다. 어느날 천장이 뚫려 쥐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아 무섭고 소름끼쳤다. 내 또래에 집에 푸세식 화장실이 있던 사람이 있을까 싶다. 끼익 끼익 고철로 된 두툼한 대문을 나가기 직전에 야외에 있던 푸세식 화장실은 늘 똥냄새로 가득했다. 그때의 나는 가난이 무엇인지, 가난으로 어떤 괴로움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낮에는 유치원과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집에 오면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카뮈는 빈곤을 즐기는 태도가 멋있다. 작가로서 내일의 걱정 없이 사는 지금의 정도로 만족하며, 무엇을 더 소유하고 사치하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자신의 상상력이고, 예술가로서 하고 싶은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세간의 찬사와 소란스러운 명성을 낯부끄러워한다. 성공에 심취하는 것은 추하다고 얘기한다. 다른 책 <수수께끼>라는 글에서 카뮈는 영예는 사라지는 연기와 같으며,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끊임없는 겸손이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말한다.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목표지향적이고 물질지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는 모두가 따라야 할 올바른 인생의 목표와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이루고 나면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거나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바보 취급한다. ’ 자신의 기준에서‘ 성공한 사람으로서 조언하고 훈계하고 으스대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진정 즐기고 있을까? 자신이 행복한지 확신도 없이 거짓 행복론을 과시하는 모습이 추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가난, 그리고 지금의 가난에 대해 카뮈만큼 초월하지 못한다. 그냥 나는 흑수저 출신이고 서민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이다. 난 한국사회에서 가난을 적극적으로 극복할 능력과 소위 스펙을 가졌고 그럴 기회도 많았지만 가난한 지금이 좋다. 가난한 배경을 자존감이 높다는 반증으로 입밖으로 말하지만, 여전히 의식과 무의식 속에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는 가식이 안 느껴진다. 지금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 과거의 가난을 배경 삼아 자신의 스펙화하여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 나 이렇게 솔직하고 초연한 사람이다, 하고 자신의 일대기를 우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나 비록 가난했고, 지금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부가 그리 필요 없고 매력적이지 않다. 부럽지도 않다. 나는 부보다 추구하는 다른 가치가 있으며, 나는 그것에서 행복을 얻는다. 나는 나를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나의 예리한 사유와 통찰력, 관찰력, 반항이 좋다.‘ 는 식의 그의 가치관과 태도가 묻어나는 글이 공감이 가고 위로가 된다. 스웩 있고 높은 자존감이 멋있다.
어떤 이의 살아온 삶 자체가 힐링이 되어주는 때가 있다. 일상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는 “당신은 healer예요.” 하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