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람들은 중국과 북한을 좋아한다고? 왜?!

모로코(5) 기차 여행

by 모네


제대로 즐기려면 도보 여행은 혼자 나서야 한다.
자유가 이 여행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변덕이 이끄는 대로 멈출 때 멈추고 갈 때 가고…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도보 여행>



모로코 여행하면서는 당일 아침에 기차와 버스 역에 도착해서 줄을 서서 표를 샀다. 페스에서 셰프샤우엔을 갈 때는 이미 버스가 꽉 찼다고 해서 다음 버스까지 1시간 반 정도 기다려야 했지만, 기차역에 도착하면 늘 20-30분 내 출발하는 표를 살 수 있었다. 직원은 1등석을 탈거냐 2등석을 탈거냐, 하고 묻고 나는 2등석이요, 하고 대답한다. 처음에는 표에 쓰여있는 것이 기차칸과 좌석의 번호인지를 몰랐다. 모로코 사람들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기차에 탄다.


2등석 한 칸에는 8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고, 늘 꽉 차지는 않고 구간에 따라 붐빌 땐 7명 정도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간다. 한 칸에는 커다란 창문과 복도와 구분되어 문을 닫을 수 있게 되어있고, 나는 늘 운 좋게 복도자리에 앉아서 복도에 있는 창문으로 풍경을 보면서 갔다. <삶을 견디는 기쁨>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한 권 가지고 탔는데, 창문 밖 풍경을 보느라 지루할 틈이 없이 없었다.


마라케시에서 페스는 7시간 정도가 걸린다. 직선거리는 더 가까워 보이는데 카사블랑카를 거쳐 돌아 돌아 가느라 더 오래 걸린다. 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아틀라스 설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붉은색 도시를 점차 벗어나게 되고, 붉은 끼가 도는 토양과 풀 없이 황토색 민둥산들로 곡선진 풍경에 하나 둘 무성한 덤불들로 드문드문 덮이기 시작한다. 사막 같은 사막 색깔의 풍경으로 창문이 채워지고 어느새 생명력 없는 회끼도는 이끼색 덤불들로 가득 차버린다. 예전에 내가 흑인인 미국 남자 팔에 가득한 구불구불한 털들을 사막에 난 덤불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딱 그 모양이다. 그러다 카사블랑카로 갈수록 풍경 속에 연한 초록색 얕은 나무들이 등장하면서, 민둥산의 색깔도 생기가 있어 보인다. 붉은색, 하얀색, 살구색 허름하고 네모난 집들이 나타나고, 농사를 짓는 듯 일정한 간격으로 심은 식물들이 나타난다. 산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은은한 파스텔톤 하늘색이 채운다.


같은 칸에 탄 모녀는 카사블랑카 다음 역에서 내려서 인사를 한다. 모녀 중 어머니는 에메랄드색 젤라바를 머리까지 쓰고 까만색 천 같은 걸 눈 밑에 바로 둘러서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데면데면 가다가 깐 호두를 주더니 먹겠냐고 물었다. 아니 사실상 내 손에 이미 한가득 쏟아주고는 먹겠냐고 묻는 거였지만, 호두를 좋아하기도 하고 호의가 감사해서 받아먹었다.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했지만 옆옆자리에 앉은 황토색 히잡을 쓴 여자가 영어를 굉장히 잘해서 통역을 해주었는데 한참 대화하고 알고 보니 일행이고 딸이었다. 어머니는 성격이 굉장히 밝고 소리 내서 호탕하게 웃는데 웃음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즐겁게 만드는 걸 타고난 사람이다. 나보고 얼마나 여행을 왔냐, 모로코에 온 걸 환영한다, 다시 마라케시로 돌아오는 거면 우리 집에 놀러 와라, 쿠스쿠스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내가 에메랄드색 옷이 색감이 너무 예쁘다고 이런 건 현지 가격으로 얼마에 살 수 있냐고 물으며 호기심을 가지니 마라케시로 돌아오면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다.


옆자리에 앉은 영어를 잘하는 20대 딸이 인스타그램이나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를 물었고, 그렇게 연락처를 교환하였다. 모로코 여행 이틀차인 나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었고, 언제든 자기한테 연락해서 물어봐도 좋다고 했다. 한국 컨텐츠를 본 적 있어서 한국에 관심이 있었고, 아주 호의적인 표정과 말투로 나를 대해주었다. 에사우이라에 동생이 살고 있는데, 내가 마라케시에 있을 때 하루 에사우이라에 놀러 갈 계획이라고 하니 오면 만나자고 해서 결국 집에 놀러 가진 못했지만, 에사우이라에서 하루 만나서 짧은 시간을 몰입도 있게 같이 보냈다. 에사우이라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한적하고 날씨가 온화한 도시이고, 유네스코에 지정된 아름다운 메디나가 있다.



카사블랑카에서 마라케시로 돌아오는 3시간 정도 기차칸 안에서는 다양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났다. 모리타스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은 한국인인걸 알아봤다고 먼저 말을 걸었다. 모로코 사람들은 대개 그리스 터키 사람들 같은 외양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새까만 피부를 가졌고, 조금 더 우리가 생각할 때 전형적인 아프리카인처럼 생겨서 모로코사람 같지는 않아서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았다. 이들도 아프리칸컵을 보러 모로코에 온 것이었다. 여자 중 한 명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다고 한국인을 만난걸 너무 반가워하며, 감사합니다, 좋아요, 같은 한국 단어를 말했다. 이민호를 좋아한다고 했고, 한국 드라마의 영어 이름을 언급해서 내가 잘 못 알아듣자 구글에 검색해서 보여주었다. 포스터를 보는데 들어본 적 없는 한국 드라마인 걸 보아 흥행하지 못한 작품인 것 같다. 가끔 한국 드라마를 봤다고 보여주는 것 중에 한국인들에게는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을 재밌게 봤다는 사람들이 있다.


모리타스 남자는 자기는 모리타스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한국 사람도 몇 번 손님으로 받은 적이 있다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서 보여주었다. 모리타스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모르고 이름만 겨우 들어봤고, 앞으로 갈 계획은 없지만(그가 4박 5일 사막 코스 사진을 보여줬는데, 모로코에서도 장기간 이동 귀찮고 사막 로망 없어서 안 간 터라 흥미가 없었다) 모리타스에 오게 되면 연락하라고 자기에게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페이스북 페이지에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페이스북 페이지로 연락하겠다고 그 이름을 입으로 한 번 읽으며 예의상 기억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기억할 생각이 없고 기억도 못한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 말을 걸며 대화를 하면서 오느라 심심하지 않았고, 생각이 있으면 자기들하고 아프리칸컵을 같이 보러 가도 좋다고 제안을 해줘서 고맙기는 했다. 내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아 너는 축구는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아, 라고 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하고 아프리칸컵을 같이 보면 재밌을 것 같기는 했지만 아직 감기에서 완전히 회복되지가 않아서 에너지가 많이 없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창가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where are you from? north? or south?” 하고 물었다. 그 아저씨는 모로코 사람인데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서 스페인에서 나온 여권을 보여주며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영어를 잘 못하고 스페인어를 섞어서 말해서 내가 잘 못 알아들어서 모리타스 사람이 아랍어로 아저씨와 소통하고 말을 전달해 주었다. 아저씨의 말을 요약하면,

“나는 그 Kim을 정말 존경해.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북한이 더 좋아. 미국에 그렇게 저항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대단하지 않아? 우리 아프리카 사람들은 미국보다 중국을 좋아해. “이다.

내가 “왜 대체 북한을 좋아하고, 중국을 그렇게 좋아해요? 여행을 다니면서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중국인을 싫어하던데 유독 여기 여행할 때는 나한테 중국에서 왔냐고 항상 환한 미소로 반기고 좋아해 주더라고요. 희한했어요. 무슬림이라면서 중국과 북한에선 종교의 자유도 없는데 뭐가 그리 좋아요? “라고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말하자, 모리타스 청년이 설명해 주었다.


아프리카 모든 국가가 다 그렇지 않지만 어쨌든 자기들은 무슬림으로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건만 보더라도 미국의 태도가 너무 싫고 자기들은 미국에 분노한다며 미국 편에 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모리타니는 찾아보니 국가명 자체가 모리타니 이슬람 공화국이고 인구 전체가 가 무슬림이다.


반미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중국인 것 같다. 적어도 모로코에서 느낀 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호의와 애정이 말도 못 하게 좋다. 무슬림 아프리카인들에게 중국은 자본을 대주고 대규모 관광객들이 자기들의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켜 주는 나라이고 자기와 같은 무슬림을 핍박하는 미국에는 저항하는 강단 있는 나라인 것이다. 그 나라들이 종교의 자유가 없다 해도 뭐 자기들한테 강요하는 건 아니니 상관없다는 것. 나로서는 반미 친중이 이해가 안 가지만 무슬림으로서 종교가 생활양식과 가치관을 온통 지배하는 나라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라오스에 사시는 분이 내가 한 달 살기 할 때는 라오스가 도로도 발전이 되어 있지 않아 도시 간 이동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중국 자본과 기술로 기차와 고속도로가 생겼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온통 도시를 점령하고 있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지금 그 돈을 갚지 못해서 국가 부도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여행 중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뭐든 과유불급이고 어느 한 편에 타협 불가로 X자 마스크를 낀 채 서는 것도 건강하지 못하며, 내 생각만이 옳고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여행을 통해 관찰하고 섞이고 생각하면서 사고가 부들부들 유연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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