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6) 버스 여행
페스에서 3박을 하고 쉐프샤우엔을 가는 날이다. 대중교통이 없어 아침에 택시를 타고 CTM 버스 터미널 가려고 나왔다. 아, 이제 페스도 마지막이구나, 풍경을 바라본다. 비가 약간씩 내리기 시작해서 거리의 사람들 중 몇 명은 우산을 쓰거나 후드를 뒤집어썼다. 페스 관광 중심지인 메디나는 오래되고 높다란 황토색 성벽 같은 풍경인데, 택시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 3층 정도 되어 보이는 유럽 같은 얕은 황토색 건물들과 차로변에는 낙엽이 반쯤 떨어져 뼈가 드러난 플러타너스 나무들이 서있다. 도로도 깨끗하고 평평하게 정비되어 있다. 바르셀로나의 한 구획된 거리의 풍경 같다.
숙소를 갔을 때는 기차역에서 그나마 50 부르는 걸 40으로 깎아서, 그것도 합승 택시를 타야 했는데, 버스정류장 가려고 길에 서있는 택시를 잡아탔는데 20디르함만 냈다. 깡마른 할아버지였는데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도 저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손짓하면서 길을 알려준 정직하고 정이 많은 할아버지다. 15분 정도 차로 달려서 20 디르함을 냈는데, 메디나에서 관광객에게 잠깐 길을 알려주고 50-100 디르함을 요구하는 청년들은 참 돈을 쉽게 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쉐프샤우엔 가는 표를 사려는데, 매진이 되었다고 했다. 헉. 어제 이미 숙소를 예약했는데, 버스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잠깐 당황했는데, 다음 차가 1시간 뒤에 있었다. 짐이라도 맡기고 어디 나갔다 올까 싶어서 물어봤는데, 짐을 맡아주지는 않는다고 여자 직원은 저 안쪽에 들어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냥 앉아만 있고 싶지 않았는데 역 주변이라도 걷고 싶었다. 잠깐 화장실을 들르자. 어슬렁거리다 서있는 경비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 화장실을 물으니 안쪽에 있는 화장실을 친절하게 가리켰다. 여행하면서 모로코의 휴게소나 공공장소의 화장실을 가봤는데 늘 깨끗하고 휴지가 잘되어있었다. 중국에서 늘 개인 휴지를 가지고 다녀야 했어서 이동 중에는 가방에 휴지를 넣고 다니는데, 여기 터미널엔 없어서 가지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아무도 없어서 무료인가 보다 했는데, 두 번째 갔을 땐 화장실 칸에서 나오니 거울 앞에 서있던 직원 복장을 한 여자가 3 디르함을 달라고 했다. 직원 옷을 입고 있으니 사기는 아니겠지.
터미널에서 나왔는데 터미널 유리는 다 거울로 되어있다. 거울에 비친 내가 입고 있는 옷은 페스 메디나에서 300 디르함 주고 산 검은색의 니트 재질의 긴 가운인데 너무 길어서 171cm인 나에게도 발에 가끔 끌릴 지경이다. 수선을 해서 밑에를 좀 잘라야겠다. 무슬림 옷들은 발목까지 오는 긴 옷들이어서 쉬크하다. 코트는 아니고 긴 검은색 니트 스웨터인데, 옷을 여미는 부분은 은색으로 처리되어 있는 게 아주 약간 아랍 느낌이 가미되어 한국에 가서도 일상복이면서도 약간 이국적으로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00디르함이면 5만 원 정도 하니까 한국에서 이 정도 퀄리티와 길이의 옷을 산다고 하면 너무 좋은 가격이지만 아저씨가 처음 500을 불렀을 때 깎은 가격인데도 약간 비싸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깎으려 했는데 같은 상점에서 옷을 사던 무슬림 아줌마가 300이면 너무 좋은 가격이라고 너무 잘 어울린다고, 이것저것 다른 옷을 입어봤는데 블랙이 젤 예쁘다며 꼭 사라고 거들어서 사게 되었다. 나중에 만난 현지인도 옷이 예쁘다고 만져보더니 얼마 주고 샀냐고 해서 300에 샀다고 하니 잘 샀다고 로컬 가격이라고 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쨍쨍해지기 시작하는 버스 터미널 주변을 캐리어를 끌고 한 바퀴 돌기로 한다. 골목에 들어서니 하얀 배에 회색 등, 까만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핑크색 귀를 쫑긋 세우고 대리석 바닥으로 된 아직 은색 셔터가 내려져있는 상가 앞에 앉아있다. 쏟아지는 햇빛을 등에 쐬고 있는지 얌전하고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건물마다 조금씩 다른 바랜 노란 개나리색의 3층 정도 규모의 건물들이 이어진 골목이 펼쳐지고 검은색, 회색, 흰색 무슬림 복장을 한 그을린 피부의 아랍 사람들이 분주히 아침을 맞이한다. 작은 빵집, 슈퍼가 있고, 아랍어 꼬부랑글씨로 간판이 붙어 있다. 노천카페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아랍 아저씨들이 앉아 있다.
그렇게 버스 터미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뭐좀 먹고 가기로 생각하고 노천에 아저씨들이 모여서 빵과 커피를 먹고 있는 집에 들어간다. 밖에 치킨 바베큐를 굽고 있어 뭔가 식사도 할 수 있는 곳 같다. 나도 커다란 빨간색 코카콜라 천막이 쳐져 있는 야외 자리에 앉았다. 대충 치킨 타코와 오렌지 주스를 시켰는데, 이 둘에 55 디르함이다. 페스 물가가 워낙 비싸서 이것도 정말 싸게 느꼈는데, 라바트나 카사블랑카에서 같은 메뉴를 먹는다면 35 디르함 정도면 먹었을 것 같다. 메뉴를 시켰는데 약간 오래 걸린 것이 진짜 정성스럽게 요리를 해준다. 안에 들어가는 치킨은 잘 구워져 있고 속에 들어간 야채도 신선하며 빠니니 또띠아도 맛있다. 오렌지 주스도 신선하게 그 자리에서 짜주는데 너무 달콤 새콤하다.
그렇게 비타민을 가득 충전하고 터미널로 돌아와 핸드폰도 충전했다. 보조 배터리 없이 다니기 때문에 충전 코드 꽂는데만 보면 미리미리 충전을 한다. 기다리다 드디어 우리 버스를 타는 시간이 되었다. 배도 부르고, 화장실도 미리 다녀왔고, 핸드폰도 충전되어 있다. 나는 복도 자리여서 앉아있는데 모로코 아줌마가 와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비면 다리를 좀 벌리고 편하게 갈 텐데 기대와 달리 만석이었다. 이어폰을 꽂고 애플 뮤직을 켰다. 그런데 한참이 돼도 버스가 출발을 안 한다. 뭘 또 기름을 넣는지 뭔지 대기만 40분을 했다. 그러다 드디어 출발하나 싶은데 아주 느릿느릿 버스 터미널 주위만 뱅뱅 돈다.
옆자리 아줌마가 웃으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를 시작으로. 그런데 아주 간단한 단어만 영어로 알아듣고 자기는 프랑스어랑 아랍어만 한다고, 그러면서도 너무 소통을 하고 싶어 해서 자기 핸드폰을 켜더니 AI에 무언가 계속 번역을 시킨다. 어느 어느 지역을 가냐고, 라바트와 카사블랑카, 마라케시가 남았다고 하니 거기에서 가볼 만한 곳을 사진을 구글 검색해서 계속 알려주고, 자기는 탕헤르에 사는데 탕헤르에도 언제 꼭 오라며 연락처를 물어봤다. 그리고 자기가 히잡을 벗으면 이런 얼굴이라고 히잡 벗은 집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아 네. 나는 사실 멀미가 심해서 차에 타면 핸드폰을 거의 안 본다. 그런데 계속 얼굴에다 대고 자기 번역한 핸드폰 화면을 들이대서 보여주니 너무 멀미가 심해졌다. 아줌마는 투머치토커였는데, 그래도 정이 넘쳤고 나에게 자기 가족이 직접 짠 올리브유가 있는데 선물하고 싶다며 주었다. 내가 너무 좋다고, 안 그래도 한 병 사가려고 했는데 아직 여행 중이라 무거워서 못 샀다, 여기 모로코 올리브가 너무 맛있더라, 하니까 그런 시장에서 바가지 써서 사지 말라고 자기 거를 가져가라고 했다. 할머니가 싸준 마냥 생수병 같은데 랩을 꽁꽁 싸매서 포장된 올리브유를 감사하게 받아 가방에 넣었다. 내가 멀미가 난다고 하니 처음에는 향수를 꺼내더니 뿌리라고 했다. 향수 뿌리면 더 멀미 날 거 같은데, 아니 괜찮다 웃으며 손사래 치니 자기 가방에서 오렌지를 꺼내주고서는 오렌지 냄새를 맡으면서 가라고 했다.
멀미가 난 이유는 아줌마가 계속 말을 걸어서 뿐만 아니라 운전을 너무 멀미 나게 하기 때문이었다. 너무 느리게 간다 싶긴 했는데 대화를 끝내고 이어폰을 끼고 좀 안정을 찾고 가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느리게 가는 게 차가 밀려서가 아닌 것이다. 와. 너무 황당했다. 2차선 도로는 뻥 뚫려 있고 저 지평선 멀리에도 차는 우리 밖에 없는데, 무슨 버스가 20으로 달린다. 그러면서 아주 작은 물웅덩이며 온갖 장애물을 옆 차선으로 역주행해가면서까지 피해서 달리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차가 왔다리갔다리 멀미가 나는 것이다. 야. 미치겠다 뒷목 잡는다 이거. 차가 없는데 대체 왜 안 달리는 거야!!! 혼자 내면에서 분노의 고함을 지르고 있다가 휴게소에 도착해서 내리고, 화장실을 갔다 와서 다시 차에 탔다. 뒷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이 차는 대체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거예요? 하도 느리게 가길래 앞에를 봤는데 차가 안 밀리더라고요. 으악, 너무 심해요. 모로코에선 원래 버스가 다 이런 거예요? “라고 하니 뒷자리에 앉은 탱글한 곱슬머리의 젊은 여자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네 네. 모로코에서 제일가는 버스 회사예요. 신뢰가 가는 버스예요. 빠르게 가길 원하면 private van을 타면 돼요. 이 차는 안전하게 가는 차예요.”라고 말했다.
졸지에 프라이빗 투어차도 아닌 버스를 타놓고 느리다고 불평하는 승객이 되어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제미나이에게 모로코 버스가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건지 물었더니 모로코는 교통사고가 나면 책임 추궁이 매우 강해서 사고 나면 운전기사의 인생이 거의 끝난다고 말했다. 모로코 도로는 포장이 안되어 있어 요철이 심하고 갑자기 사람, 염소, 당나귀, 개가 튀어나오는 도로가 많아서 사고 가능성이 1%만 있더라도 피해서 안전 운전을 한다고 한다고 체감 속도가 20~ 40일 거라고 했다. 맞어 맞어!!! 무슨 이 큰 차가 온갖 걸 다 피해 간다니까, 하고 AI와 소통을 하며 공감을 받고 가는 나. 서울에서 대전정도를 갈 거리를 차도 한 대도 없는데 5시간 반을 걸려서 도착했다. 휴 차에서 겨우 탈출을 하고 해방감을 느꼈다.
그래도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옆자리 아줌마도 사귀고 선물도 받고 푸르른 초원에는 비가 갠 뒤 아주 또렷한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를 본 뒤 취업 합격 문자가 오는 등 늘 좋은 소식이 있었던 터라 무지개를 봐서 이번엔 무슨 행운이 올까, 하고 기대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