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대체 베스트 프렌드가 누구예요?
나랑 여러 고민들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는 후배가 물었다.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고 댓글에 자주 등장하는 그 사람이 베스트 프렌드가 아니면 대체 누가 베스트 프렌드냐고.
내가 "이 사람이 베스트 프렌드야" 하고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참 알기 어려운 사람 같다고도 했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장난도 치고 자주 같이 다니길래 저 사람하고는 친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해서 나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그냥 지인이라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나의 '지인, 친구, 베스트 프렌드'의 규정과 범주가 어렵다고 했다. 보통 베스트 프렌드라고 여기는 친구들은 나에게는 친구 정도에 속하는 거 같기도 하다고 했다.
나에게 베스트 프렌드를 '진정한 친구' 정도로 정의하자면 나이도 다양하고, 친구의 성향도 다양하다. 몇 년 간 보지 못한 외국인 친구를 베스트 프렌드라며 소개하고 일 년에 한 번 연락하는 친구를 베스트 프렌드라 하기도 한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데 베스트 프렌드로 여기는 사이라고 하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 후배는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를 진정한 친구를 구분하는 척도 중 하나로 두는 것 같았다. 나도 그 개념을 어느 정도 차용하기 시작했다. 그냥 세상의 시시콜콜한 겉도는 얘기를 하는 사이가 아니라 정말 내 얘기, 내 감정, 내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를 존중하며 들어주는 사이가 소중한 것 같다. 똑같이 여행 다녀온 얘기를 나누더라도 단순히 내가 어디를 갔고 기후가 어땠고 무엇을 샀고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사고 보고 경험할 때 그 과정에서 '어떻게 느꼈는지'를 알려주고 싶은 사이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10년 동안 여러 인간관계를 거쳐가면서, 자주 보고 자주 얘기하며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친한 관계나 진정한 친구는 아님을 깨닫고 있다.
속물적인 친구들보다는 순수한 사람들이나 인간의 속물성을 경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하게 되는 것 같다.
본인의 인맥을 '관리'하며 나도 그 '관리 대상' 속에 놓여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하고는 처음엔 왠지 모르게 그들이 만나야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만나게 되다가 결국에는 거리를 두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사람들은 만나도 딱히 할 얘기가 없고, 나도 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잠깐 그 시간을 때울 세상의 겉도는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고 대충 깔깔거리다 마무리된다. 참으로 비생산적이다.
그들의 SNS속에 소개되는 것과는 달리 나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님이 느껴진다. 이들은 나의 감정이나 나의 생각을 묻지 않으며 나에게서 어떠한 정보나 다른 인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교양이 없게 느껴진다.
나에게 무언가 기대하고, 자기가 설정한 기준에 내가 부응하지 못하면 서운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숨 막히고 벗어나고 싶다.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먼저 연락을 하고 만나고 싶고
자꾸 베풀고 싶은 사람,
묻지 않아도 내 감정을 다다다다 얘기하고 싶은 사람,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항상 생각나는 사람,
질투 없이 응원하게 되는 사람을 진정한 친구로 여기는 것 같다.
내 삶을 응원해주고 기쁨과 슬픔을 내 일처럼 공감해주는 사람.
내가 해 주는 한 마디에 너무 감동하고 감사해주는 사람.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주고 진심으로 응원하며 나를 아끼는 마음이 전해져 눈시울을 붉게 만드는 사람.
생각하면 너무 보고 싶고 여러 상황 때문에 못 만나는 게 아쉬워 하루 종일 우울해지게 만드는 사람.
내가 두서없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