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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Jan 28. 2019

완전히 깜깜한 어둠 속에서의 20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곳곳을 구경하다 한 공간 앞에 이런 푯말 앞에 서있는 직원이 있었다.

처음엔 이 푯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읽으려 하지 않고 까만 커튼이 보이길래 열고 들어가려 하였다. 직원은 나를 제지한 뒤 주의사항을 다시 읽으라고 가리켰다.


아 이런 거구나!




까만 커튼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마주한 것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바로 더듬더듬 벽만을 의지한 채 아주 조금씩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인기척이 느껴졌고, 가끔씩 다른 사람과 부딪혔다. 아무리 둘러봐도 눈을 뻐끔뻐끔해봐도 도무지 어떠한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 공간이 굉장히 넓고 높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계속 벽을 잡고 걷다 보면 뭐가 나오긴 하는 걸까.


눈이 안 보이니 정말 불편하면서도 내가 제어 가능한(돌아온 문쪽으로 뛰어나가면 된다는) 일시적인 어둠이라고 생각하니 무섭지는 않았다. 벽을 잡고 걷다가 공중에 떠있는 실로 엮은 듯한 전시물에 부딪혔다. 지나가는 사람은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을 지으며 이미 오래 있어 눈이 조금 보이는 듯 나를 도와주었다.


우측으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공간 중앙에 있는 구조물을 둘러싼 금속 막대였는지 벨벳 끈이었는지를 잡고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며 한 바퀴 돌았다. 한 바퀴가 굉장히 큰 것으로 볼 때 구조물이 꽤 큰 것 같다. 호기심에 팔을 뻗어보니 작품이 만져졌다. 중간중간 다른 사람들도 만났다.


이정도 시간이면 눈이 적응돼서 좀 보일 것 같은데 핸드폰을 꺼내 볼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구조물도 안 보이고 눈을 아무리 깜빡여도 어둠뿐이니 갑갑했다.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고, 들어온 쪽에서 커튼 밑으로 아주 미세한 불빛이 느껴졌다. 아 저리로 나가면 되겠구나. 그냥 지금 나갈까 아니면 더 있어볼까?  고민하다가 벽 쪽으로 가서 기대서 잠시 쉬기로 했다. 이 전시의 의도는 뭘까? 우리는 잠시뿐이지만 항상 어둠 속에 있는 맹인들은 어떨지 생각해보라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시 쉬었다.


그때였다.


천장에서 아치 형태로 몇 줄의 아주 작은 불빛들의 모임이 연결되어 이어져 있었고, 내가 아까 부딪힌 가느다란 실이 짱짱하게 엮여서 만들어진 구조물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빛과 함께 보였다. 눈을 돌려보니 중앙에도 엄청난 규모의 은빛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내가 중앙에서 선을 따라 돌며 지나친 그 작품이구나. 불빛은 아까부터 있었는데 이제야 보이다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정말로 시간이 지나니 보이잖아??!!!!


너무 신기했다. 어둠에 적응한 눈은 다른 사람의 형태까지 보기 시작했다. 멀리서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이제 막 들어온 사람들이 보였고, 조금 전의 나처럼 선을 잡고 구조물들 돌고 있는 사람 몇몇의 형태가 보였다. 아 이렇게 보이니까 아까 그 사람도 나를 도와준 거구나!


눈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너무나 황홀했다. 어느새 새 환경에 적응하여 눈이 보이는 인체의 신비, 이제부터 눈이 보인다는 안도감과 느닷없이 이런 암흑의 공간에 있다는 특별함, 이런 전시를 기획한 사람의 탁월함. 예기치 않은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과 행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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