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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Mar 21. 2019

알록달록 따뜻한 포르투갈 소도시 산책

리스본 근교 오비두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에 타르트,
오비두스행 버스를 기다리며

9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1시간 정도나 일찍 도착했다. 구글과 블로그를 통해 오비두스 행 버스 시간과 버스 타는 장소를 보고 와서 그리 헤매지 않았다. 무턱대고 왔다면 어디서 타는 건지 감이 안 올 뻔했다. 너무나 친절한 블로그는 지하철역 어디로 나와서 어느 방향으로 걷다가 초록색 건물을 마주 보고 있는 정류장으로 가면 된다고 사진까지 첨부해 올려주었다. 정류장을 미리 가서 시간표와 장소를 확인한 뒤 여유가 생긴 나는 바로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아침 여덟 시 조금 넘은 시각, 카페는 분주했다. 주로 노인들이 많았다. 포르투갈에 와서 카페는 처음이었다. 다들 유리 탁자에 서서 작은 잔에 들어있는 에스프레소를 후다닥 마신 뒤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로 계속 채워졌다. 나는 핫 초콜릿과 함께 우리가 흔히 에그타르트라고 부르는 커스터드 타르트(pastéis de nata)를 가리키며 하나 달라고 했다. 그래 포르투갈에 왔으니 타르트를 먹어보자!


동네 카페여서 더 저렴한 것 같다. 타르트는 1유로, 초콜릿은 2유로였다. 초콜릿은 걸쭉하다기보다는 연한 코코아 같은 맛이었는데, 은색 주전자 가득 따라다 주었다. 포르투갈에 와서 처음 먹어본 타르트! 나중에 더 유명한 집에서 따끈따끈한 타르트 위에 시나몬 가루도 함께 뿌려먹었을 때 맛이 더 환상적이었지만, 이것도 충분히 맛있었다. 이 아침, 잠이 덜 깬 채로 낯선 나라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서서 아침을 먹고 있다니. 속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오늘의 근교 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처음으로 찾은 여유,

창 밖 구경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국어를 쓰는, 우리 엄마보다 두세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아주머니들 셋이서 오비두스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엄마 또래의 주변 아줌마들은 자식들과 함께 가는 자유여행도 따라다니기 버거워하고 아줌마들끼리는 동남아 정도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저렇게 아줌마들끼리 유럽 여행을, 그것도 수도를 떠나 근교 여행도 알아보고 다니는 것이 정말 대단하고 멋있어 보였다.


차에 올랐다. 버스표를 사면서 본 버스 기사는 젊은 여성이었는데, 회갈색의 머리를 틀어 올려 하나로 묶고 카키색 보잉 선글라스를 멋스럽게 꼈다. 운전할 때 다시 보니 화이트 셔츠를 입고 약간 굽이 있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다. 버스를 능숙하게 다루며 달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스웩이 느껴져서 한동안 계속 보았다.


차가 전혀 밀리지 않아 씽씽, 그러나 너무 빠르지는 않고 적당하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 밖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시골 풍경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여유를 찾았다. 적어도 약 45분가량은 어느 불안함이나 걱정 없이 창밖만 내다보면 된다. 길을 찾거나 무언가 알아보기 위해 핸드폰을 켜지 않아도 된다.

포도밭 같은 것도 보이고 가끔씩 집도 나오네. 이 동네는 풍력 발전을 많이 하는지 풍차라고 해야 하나, 풍력 발전 시설이 자주 보였다. 어느새 옆자리에는 가벼운 가방을 들고 탄 할머니가 앉아있다. 짙은 붉은색의 무늬 있는 셔츠와 편해 보이는 비슷한 계열 색의 롱스커트를 입은 은발의 곱슬머리 할머니는 손에도 갖가지 반지를 주렁주렁 꼈다. 앞 뒤로는 크지 않은 목소리의 스페인어인지 포르투갈어인지가 들린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남유럽의 집과 골목의 따스함


드디어 오비두스에 도착했다. 찾아보기로는 1285년에 왕이 부인에게 선물한 마을인데 그때 이후로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리스본 근교 도시로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가는 유명한 곳을 가도 됐지만 나는 왠지 작고 알록달록한 이 마을에 와보고 싶었다. 건물들의 노란색과 파란색의 조화가 정말 예쁘다. 리스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면서 왠지 이탈리아나 그리스와 같은 햇살이 포근한 남부 유럽의 한 작은 마을들도 이런 분위기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집들의 문 색깔과 장미 덩굴, 건물의 바랜 색들이 조화를 이룬다.


아직 겨울이라 춥고 썰렁했다. 마을 주민 수가 약 3,000명 정도밖에 안된다는 정말 작은 마을이다. 마을 중심부의 골목은 관광객에게 특산품을 팔거나 기념품 가게로 채워져 있었다. 성수기의 사진을 보면 골목에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날이 따뜻할 때 오면 마을 곳곳이 더 포근하게 느껴질 것 같다.


마을이 작아 지도를 보고 걷지 않아도 된다. 지도를 버리고 곳곳을 둘러보니 너무나 좋다. 그저 발길 닿는 곳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그러다 보면 마을이 작아 금방 길눈이 생긴다. 건물 색깔이 화려해 어찌 보면 너무 관광지 같고 생각보다 더 작아 약간 실망을 하다가도 이곳저곳 걷다 보면 인위적이지 않아 소박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가본 어느 유럽의 도시, 골목과 확실히 차별화된, 겪어 보지 않은 분위기이다. 조금 더 따뜻한 날 웨딩화보 같은 것을 찍기에도 좋은 장소 같다.



성벽 길 산책, 혹은 모험


대략 10시쯤 도착해서 마을 전체를 걸어서 다 돌았는데도 아직 11시 몇 분이다. 식당은 12시부터 열고, 카페도 마땅치 않아 성벽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위로 올라보니 밑에서 보던 그 알록달록한 건물들의 지붕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고동색 집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집집마다 갈색 계열의 기와 같은 것이 얹어져 있다. 와 올라와 보니 전혀 다른 분위기네! 또 다른 느낌이었다. 톤 다운되니 좀 더 차분하고 운치 있는 느낌. 지나가다 귤나무도 보여 반갑다.


일본인 관광객 무리도 왔나 보다. 성벽길을 따라 걷는 길에 앞 뒤로 일본인 무리가 있다. 리스본에서 만난 우버 기사가 길 위에서 어느 누구도 믿지 말고 주의 깊게 다니라고 해서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지만, 일본인이라면 핸드폰을 맡겨도 좋다는 생각이 의심 없이 들었다. 젊은 여성에게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냐고 물었더니 어우 당연하죠. 내게서 너무도 흔쾌히 핸드폰을 받아가 사진을 잘 찍어주었다.


성벽길은 차분히 걷는 길이라기보다 약간 탐험을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길이 매끄럽지 않았고 오르락내리락 안 가본 길을 발굴하며 흥미로운 발걸음. 길의 끝에는 내려가는 숲길 같은 것이 나와 등산을 하는 코스도 있다. 길 가다 만난 회색머리 할머니는 나를 보자 반가워하며 귀엽다는 듯이 "곤니찌와."라고 인사를 건넸고, 나도 반갑게 "곤니찌와^^"라고 인사했다. 오랜만에 보는 일본인과 일본어가 반가웠고 나에게 호의적으로 인사를 건넨 할머니의 미소도 기분 좋다.




오비두스 서점에서 만난 페소아

오비두스 문학 마을(Literary town) 프로젝트 


마을의 중심부를 걷다 창고 같은 곳이 나왔는데 서점이었다. 내부에는 책이 가득했고, 둘러보는 나에게 주인아저씨는 영어로 된 책도 있다며 영어로 안내해주었다. 영어로 된 책들이 선별이 잘 되어 있었다. 페르난두 페소아 알지 않냐면서 페소아 책도 몇 권 추천해주더니, 잘 엮어져 나와 추천한다면서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 Cave도 추천해 주었다. 결국 페소아 시집을 한 권 사기로 마음먹었다. 17유로던가. 2만 원이 넘었다. 자세히 보니 펭귄 북스에서 나온 책으로, 왠지 강남 교보에서 더 싸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나라에서 사는 시집이니 사고 싶어 졌다.


시는 소리 내서 읽어야 맛이라고 하던가. 책을 사 와 심심할 때 집에서 한 두 편씩 소리 내서 읽는데, 확실히 산문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주민도 얼마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오비두스는 여러 서점을 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책을 산 곳도 리스본에도 있는 서점인 Ler Devagar(리스본의 Lx Factory 내에는 세계에서 모 언론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Top 10으로 선정한 동 이름의 서점이 있다)가 연 서점이다. 이 문학 마을 프로젝트는 읽고 쓰는 문화를 만들며 이와 관련된 여러 행사를 연다. 교회나 박물관, 과거의 감옥, 미술관, 포도주 저장고 등에 서점을 연다고 하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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