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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Feb 18. 2019

여행 중 물, 사먹기 아깝지만..


여행을 할 때는 참 물이 문제다. 가지고 다니자니 무겁고, 매번 식당에서 사 먹자니 비싸고. 물값이 아까워서 목마른데 마시지 않을 수도 없고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쉽게 편의점에서 물을 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끔 슈퍼마켓이나 조금 큰 마트를 발견해서 저렴하게 큰 병을 하나 사서 방에 두고 먹는 정도였다.


리스본에서는 식당에서 Tap water를 달라고 하면 따로 사마시지 않아도 물을 따라 주었다. 에어비앤비 주인도 수돗물을 따라 마셔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병에 든 물을 마시고 싶어 마트에서 0.6 유로에 1.5L 페트병에 든 물 하나를 샀다. 0.4 유로짜리 물도 있었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비싼 물이 맛있지 않겠어? 하고 0.6 유로 짜리 물을 집었다. 무난한 맛이었다.


첫날은 호텔에서 묵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너무 목이 말랐다. 알약도 삼켜야 해서 물이 필요했기에 갈증을 참고 잘 수는 없었다. 물을 무료로 제공해주는 호텔이 아니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라 물을 사러 밖에 나갈 수도 없고, 결국 아깝지만 방 냉장고에서 거금 1.6유로짜리 물 한 병을 꺼내 마셨다. 오랜 갈증을 넘기는 꿀맛 같은 몇 모금이었다.


리스본 호텔
옷장 밑에 한쪽에는 금고, 다른 한쪽에는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의 구성. 그래 물 한 병만 딱 꺼내 마시자
근처 작은 슈퍼에서 사다 마신 물
오비두스의 한 식당에서 준 물


리스본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오비두스를 여행할 때 포르투갈에서는 그린 와인을 마셔보라는 글이 생각나서 그린 와인을 시키며 Tap water를 달라고 했다.


처음 맛보는 그린와인은 옅고 투명한 노란-연두빛의 색이었다. 신기해서 향을 먼저 충분히 맡았다. 절로 눈이 감겨 향에만 집중하고 싶게 만들었다. 정말 상큼하고 싱그러웠다. 투명하고 그윽한 그 향을 가져가고 싶었다. 맛을 보았다. 새큼한 그린 와인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싱그러웠다. 몇 모금씩 음미하며 삼켰다. 향이 확 퍼지다 사라질 때쯤 또 한 모금 마신다. 점점 몸이 따뜻해진다. 버스를 타고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알딸딸하게 올라와 몸이 더워졌다. 기분 좋게 어지러웠다. 나 이제부터 와인 좋아할래.



그래, 어차피 사 먹어야 한다면 즐기자


바르셀로나에서는 수돗물을 안 준다. 수질이 안 좋아서 수돗물을 마실 수 없다고 했다. 식당에서 사 마시는 물은 1.8유로~2.5유로 정도 했다. 절대적인 액수로는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한국 식당에서는 일반적으로 굳이 써도 되지 않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아깝다. 사실 난 평소에도 30분 내에 환승을 안 하면 추가로 내야 되는 몇 백원이 아까워 뛰어다니는 수준으로 굳이 안 써도 되는 돈을 아까워한다. 쇼핑할 때 큰 돈은 잘 쓰면서 300원이 아까워 뛰는 모습이 웃기다고들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어차피 매 끼니마다 사마셔야 하는 물이라면, 그냥 즐기자.

이 식당에서는 어떤 물을 내오는지 구경하고, 물 맛도 음미하며 마셔보자. 이 물은 어떤 맛일까.


눌어붙어 누룽지처럼 고소한 저 빠에야와 함께 마신 물은 꿀맛이었다. 짭짤한 빠에야 덕에 벌컥벌컥 마셔서 그런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빠에야를 시킬 때는 소금을 빼 달라고 말하라는 블로그들의 팁을 바탕으로 소금을 빼 달라고 말했다. 소금이 빠졌지만 해산물 자체가 짭짤하기 때문에 안 짜진 않았다. 그래도 빠에야를 처음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꼬들꼬들하게 눌은밥과 소스, 해산물의 조화가 좋았다.



지로나에서는 이런 물이 나왔다. 잔에 따라 준 물은 보기만해도 시원해보인다.

전날 구글맵으로 평이 좋은 몇 가지 식당을 찾았었는데, 막상 들어온 곳은 지나가다 11 유로에 메뉴 델 디아를 하는 식당이었다. 사실 한 두 시간전에 초콜릿을 너무 많이 마셔 화장실을 가고 싶던 참이었다. 구글 추천 식당이고 뭐고 가까운 식당에 가서 해결하자 라는 마음이 크기도 했지만, 저렴한 가격에 코스로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구글맵에도 평이 거의 없고, 관광객이 없어 보이는 식당이었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구글 번역기로 사진을 찍어 메뉴 이름을 파악했고, 샐러드와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인 송아지 스테이크를 시켰다. 후식은 저 아이스크림 메뉴와 티라미수 중에 고르라고 직원이 스페인어로 말했는데 티라미수 말고 다른 것을 먹어 보고 싶어 @#%#%#^이요 하고 직원의 말을 따라 했더니 빵처럼 생긴 저 디저트가 나왔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식전 빵과 물을 먼저 가져다주었다. 빵에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뿌려 먹어봤다. 빵 자체도 맛있었는데 올리브유와 발사믹 소스도 정말 맛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함께 나온 감자칩이 정말 고소하고 맛있었다. 벌써부터 맛있음에 기뻐하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물 맛은 그냥 그랬다. 아직까지 한국의 삼다수를 이길 물 맛을 맛보지 못했다. 12시 갓 넘은 시각이라 내가 거의 첫 손님이었는데, 서서히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르르 들어오는 무리의 중년의 여성들을 관찰했고, 그들이 쓰는 스페인어를 구경했다.


화장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보았다. 우르르 몰려 올라간 중년의 여성들이 계모임이라도 하는 양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인테리어와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잔, 차려입은 듯 아닌듯 자연스럽게 멋스러운 스페인의 아줌마들이 조화로웠고, 잔잔한 음악과 함께 들리는 그들의 수다가 공간을 이국적으로 채웠다. 화장실은 호텔 화장실처럼 정말 깔끔했고, 인테리어는 이곳에서 화보를 찍어도 될듯 색감과 조명이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 일식당

바르셀로나에서 그라시아 밤거리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식당을 만났다. 다이어트 겸, 저녁 8시도 넘었으니 방에서 가볍게 먹고 먹지 말자, 라는 생각이었는데 밥 또는 국물이 땡겼다. 밖에 써져 있는 메뉴를 보니 사케동이 있었다. 그래 사케동 먹고 가자. 샐러드부터 디저트까지 나오는 코스 요리도 10-11유로에 먹는데, 작은 사케동 하나를 10유로에 먹다니, 싸진 않았지만 한국 가격을 생각하면 비슷하다고 위안하였다.


일식당 내부는 깔끔했다. 주인으로 보이는 일본인 주방장이 있었고, 서빙은 스페인 사람인 듯 남미에서 온 이민자인 듯 보이는 상냥한 젊은 여성이었다. 약간 까무잡잡한데 매끄러운 피부와 하나로 무심한듯 묶은 어두운 갈색의 풍성한 머리가 건강해보였다. 손님들 중에도 동양인이 없었다. 아이와 함께 온 부부, 젊은 커플이 와있었다. 그들이 시킨 튀김도 맛있어 보였다. 일식당에 현지인들이 많이 오는 구나. 예전부터 느꼈지만 어디든 많은 중식, 일식당을 보며 한식당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케동과 함께 마신 물. 여기는 이런 물을 주는구나, 물병의 디자인과 어디서 온 물인지 요리조리 구경한다. 물맛은 평범하군. 오랜만에 먹는 사케동, 익숙한 맛이다. 그래 유럽에서 먹는 노르웨이 연어나 한국에서 먹는 노르웨이 연어나. 물 산 것이 아까워 나중에는 목이 마르지 않는데도 몇 번 따라 원샷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조지아 식당
우크라이나 식당


모스크바에서는 조지아 식당과 우크라이나 식당을 찾았다. 준비 안된 채로 급하게 온 것인데, 나에게는 구글맵이 있었다. 모스크바 출신으로 현재는 네덜란드에서 석사 중인 친구 알렉스에게 페이스북으로 갑작스럽게 모스크바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음을 알리자 러시아 식당이 아닌 조지아, 우크라이나 식당을 추천해주었다. 알렉스는 내가 걱정되어 메시지로 세세한 것까지 알려주며 거의 실시간 상담창구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먹은 메뉴는 샤슬릭과 펠메니로, 결과적으로 진정한 조지아, 우크라이나 음식을 맛본 것은 아니다.


조지아 식당에서 먹은 양고기 샤슬릭은 정말 맛있었다. 나는 양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고기는 아니다 보니 내 입맛에 양고기가 이렇게 잘 맞는지 몰랐다. 퍽퍽하지 않으면서도 식감이 굉장히 좋았다. 양고기하면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누린내도 안느껴졌다. 누린내가 어떤 건지 잘 몰라서 혹은 후각이 둔해서 못느끼는 것인지, 이런 향을 좋아하는 것인지 이 곳이 누린내를 잘 잡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풍미가 정말 좋았다.


직원이 소스는 따로 주문 안하냐길래 소스도 시켜야 하나 보다 하고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니 베리류의 달짝지근한 소스를 내주었다. 현지인 입맛과는 다른지 양고기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빨간색 고춧가루인지 파프리카 가루인지 양꼬치집에서 주는 그 빨간색 가루가 역시나 훨씬 잘 어울려서 베리 소스는 결국 먹지 않았다. 역시, 언어가 안 통하고 계획 없이 부딪히는 여행엔 후회되는 지출이 있기 마련이다.


영어로 주문을 받으러 오는 직원이 있었으나 영어가 잘 통하지는 않았다. 영어로는 말하지만 영어를 잘 알아듣지를 못해서, 나의 의사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러시아에 올 땐 러시아어를 더 공부하고 오는 게 좋겠다고 다짐했다. 러시아에서 고작 1년 공부하고 왔는데 영어보다 러시아어를 잘하게된 친구가 이제 이해가 간다. 가스 없는 물(вода без газа)로 달라, 이 표현은 기억나서 러시아어로 말했다. 알아서 주겠지 했는데 비싼 물로 줬는지 원래 모스크바 물가가 비싼지 물 값이 230 루블, 4천 원 정도로 상당히 비쌌다.


펠메니와 함께 마신 물은 떠서 담은 병에든 물로 60 루블, 천 원 정도였기에 괜찮았다. 한국 이탈리안 레스토랑같은 곳에서도 자주 보이는 물병이었다. 처음 접할 때 어떻게 여는 건지 당황했던 기억이 났다. 제품을 사 마시면 더 비쌌겠지만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니 탭 워터스러운 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나도 저 물을 달라고 했더니 가져다주었다. 비싼 물값을 조금이라도 아껴보자고.


갑작스러운 결론- 여러 물을 마셔봐도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삼다수가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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