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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네 Apr 01. 2019

혼자 여행하나봐요


Oh, are you traveling alone?
혼자 여행 중이에요?



나는 혼자 여행이 익숙하다. 아니 오히려 침범받고 싶지 않은 1순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베리아로 여행을 갈 것이라는 나의 근황을 접한 후 여러 명이 같이 여행 가고 싶음을 피력했다. 심지어 유럽 여행 전에 짬나는 몇 주 동안 도쿄에 같이 가자고 제안한 친구도 있었다. 일본은 여러 번 가봤지만 도쿄는 항상 가고 싶은 곳으로 남아있다. 학생 때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행기 값이 약간 더 비싸 엄두가 안 났고, 돈을 벌고서는 그동안 가고 싶어 참아왔던 곳들을 먼저 다녀오느라 가보지 못했다. 친한 일본인 친구 에리코를 만나러 가고 싶기도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감성 속 수도 도쿄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


어쨌든, 7년 만의 유럽이라 그 감흥을 혼자 오롯이 느끼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도 더 풍부해지는 무언가가 있기에 여행 구간별로 친구들과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래 그럼 같이 가자, 혹은 나 있을 때 와, 했는데 혼자 여행하라는 신의 뜻인지 모두 각자의 사유로 무산되고 말았다.



경유지 모스크바, 한 겨울이라 흐리고 춥다


혼자 여행 중이라고 하면 한국인 분들은 대단하다, 멋지다, 좋겠다 라고 말한다. 좋겠다고 하는 뉘앙스에는 가족 혹은 친구와 여행하면서 친한 사이에도 쌓인 불편함, 의견 충돌,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몇 가지 포기해야 하는 것, 힘든데 정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데 따른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겨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혼자 여행을 짜서 오랜 시간 혼자 다니는 것은 엄두가 안 난다는 것. 또 의례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이 무섭지 않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좀 더 어린 나이에 혼자 다닐 때는 혼자 여행을 보낸 부모님이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요즘은 혼자 여행을 다니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부모님들의 가치관도 젊어졌다고 해야 하나.


현지인들은 혼자 여행 중인 내게 심심하지 않냐는 투로 물으며 대화가 이어지면 내가 뭐하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서양은 나이를 잘 묻지 않는 문화라곤 하지만 현지인들은 내 나이가 가늠이 안되는지 그냥 호기심인지 나와 대화할 때 항상 나이를 물었고, 가벼운 형식을 취했다.


혼자 여행의 단점은 숙소를 공유할 수 없으니 약간 더 비싸지고 예산 제약에 따라 선택지가 제한된다는 점이 있지만 방 자체를 넓게 쓰고 자유롭게(아무데서나 옷 갈아입고 내 맘대로 어지르기) 쓸 수 있다. 특히 리스본은 숙박비가 저렴해서 물가가 비싼 다른 지역에서는 둘이 가도 내야 하는 가격보다도 저렴해 금액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 같이 가도 딱히 감각적으로 사진을 찍어주지 않는 사람이라면 큰 차이가 없긴 하지만 소매치기가 심해 낯선 이에게 핸드폰을 맡기기 조심스러운 나라에서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기도 주저되고 빈도도 적어 내 사진이 별로 없다. 삼각대가 되는 셀카봉을 가져가긴 했지만 유럽의 바닥은 울퉁불퉁해 세우면 쉽게 쓰러지고 바람이 불어도 취약했다. 그래도 가끔 놓고 찍기 좋은 장소도 있어 가벼운 걸로 하나 가져간 것이 유용했다.



걸으려고 했던 길이 아닌데 목적지까지 걷기로 했을 때 만나는 색감과 문양
예기치 않게 길 걷다 만난 공원. 가을같아


혼자 여행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일정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조금 힘들어도 맞춰 주며 일정을 소화할 필요가 없고, 내 실수일 때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여행 중에는 판단의 연속이므로 현명하지 않은 판단일 때가 많은데 그냥 혼자서 잠깐 아쉬워하면 될 뿐이다. 가령, 길을 잘못 들거나 교통비 계산을 잘못해서 더 내게 되었을 때, 일일 패스를 적게 이용해 안 사는 게 나았을 때(이 때는 대신 많이 걸었으니 건강에는 도움되었겠거니 위로한다), 휴무일을 파악하지 않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시간과 거리 때문에 다른 곳도 못 가게 되었을 때 말이다.


또, 사고 싶은 것을 둘러보는데 다른 시간을 포기하며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되고, 일찍 일어나지면 일어나는 대로, 더 자고 싶으면 일정 하나 정도를 포기해도 될는지 혹은 식사를 조정할지를 저울질 해 빠르게 판단한 뒤 더 자도 된다. 그래서 20 가지를 준비해 가면 12 정도를 가보고 오는 것 같다.


타파스와 샴페인 @바르셀로나


밥은 먹고 싶은 것을 먹는다. 가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한다거나 맛집처럼 보이는 리스트를 구글맵에 찍어 두지만 막상 가는 집은 그때그때 땡기는 것을 구글맵으로 검색해 별점 대비 가까운 곳으로 가게 된다. 이로써 계획에도 없던 일식집을 두 번이나 가고 한식당도 갔다. 단기 여행 때는 가능한 많은 현지식을 먹어보고 가려고 하지만, 체류나 장기 여행 중에는 한두 번 국물이 땡기고 초밥이 먹고 싶다. 평소 국도김치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지 몰랐다.


구글 평점 중 한국인 비율이 높거나 블로그 맛집, 방영된 맛집은 일부러 찾아서 가지는 않는다. 이번 여행 중엔 찾은 곳 중 한 곳은 거의 모든 테이블이 한국인이어서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그 나라 사람들이나 다른 문화권의 여행자들에 둘러싸여 이방인이 된 느낌을 가지거나 관찰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책 @리스본 시내 서점


때때로 심심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카페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을 정도로 심심하진 않다. 하루 종일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쉬고 싶긴 하지만 돌아다니며 보고 싶은 것이 더 많다. 아무래도 집 앞 카페에 나가서 쉬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휴양지나 가봐서 잘 아는 도시이지 않는 한 장기 여행 중일 때 혹은 체류일 때 가능한 것 같다.


나는 여행에 책을 잘 가져가지 않는다. 가져갔다가 무겁기만 해서 후회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책에만 파묻혀 집중하기에는 관찰할 대상이 너무 많다. 이번 여행에 책을 들고 가지 않은 이유는 여행하며 사고 싶은 책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은 경유 후 작은 비행기로 갈아탈 때 유용하다. 앞에 스크린이 달려있지 않아 영화를 볼 수도 없을 때, 1시간이 지겹게도 안 갈 때 책을 읽으면 좋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영문판으로도 읽어보고 싶어서 샀다. 한 번 읽었던 책이라 이해도 쉽고 다시 읽는 맛이 좋다. 종종 따라 하고 싶은 영어 표현을 메모장에 저장해가며.


이름은 모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옆에 있는 리스본의 한 성당을 지나가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성당으로 향하는 얕은 계단에 앉아 책을 열중해서 보고 있던 한 여성이 있었다. 금발로 염색한 곱습곱슬한 머리를 대충 묶은 그 젊은 여성은 국적을 잘 가늠하는 나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외모였는데(아니면 그 전체적인 장면이 아름다워 얼굴을 자세히 보려는 노력을 안한 것 같다), 가벼운 뉴트럴 컬러의 부드러운 상의와 밝은 색의 라인 없는 청바지를 입고 무심하게 턱 앉아있었다. 오래된 듯한 빈티지 느낌의 갈색 백팩도 그 앞에 무심히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관광지의 성당보다 그 앞에서 책 읽고 있는 이 여성이 아름다워 쳐다보느라 한동안 발이 묶였다. 나도 읽고 싶은 책 하나를 들고 나와 관광지 아무 곳에 앉아 책에 심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라면 누가 쳐다보고 있는지 의식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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