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무것도 아니야
내 인생에 고마운 사람들
연말은 내 삶을 돌아보는 것 외에 내 인생에 고마운 사람들을 회상하기 좋은 시기이다.
올해는 예상치 못한 일, 특별히 불편을 겪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평온했던 삶에 갑자기 마주해야 했던 변화들이 삶의 균형을 흔들었다. 계획했던 일들은 하나 둘씩 뒤로 미루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아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Panic(공포, 공황상태)'이다. Panic 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 아픔, 불편보다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몸과 사고에 경직이 들어와 잘 할 수 있는 것도 버벅거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영어를 쓰는 원어민들은 "Don't panic!(당황하지 마!)" 이라는 표현을 정말 자주 쓴다.
내 인생에도 당황해서 좌절감이 들었던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건네준 고마운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로는 엄마이다. 격변하는 사춘기 시절 시험을 망해서 울며 집에 갔을 때, 유학시절 사사건건 힘든 일을 토로할 때, 아이를 낳은 어른이 되어서도 크고작은 당황스러운 일을 털어놓을 때마다 늘 태연하게 반응해준 사람은 엄마였다.
"별거 없어.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무엇을 털어놓아도 안전한 곳이었다. 엄마를 통해 부모의 역할을 저절로 습득하게 되었다. 아이의 가장 안전한 곳, 그 곳이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
그 다음으로 첫 직장 상사의 말이 떠오른다. 실수 안하는 신입사원이 있는가? 크고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혼내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해주었다.
"대세에 지장 없어. 괜찮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상사로서 하기 어려운 위로와 격려 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를 커버하느라 중간에서 애를 많이 썼을텐데..
마지막으로 삼십대의 나를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이 있다. 이십대에 만나 결혼 8년을 채우기까지 늘 옆에서 나의 성장을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해주는 사람, 바로 남편이다. 직장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직을 할 때, 대학원에 간다고 할 때, 육아하며 힘들어 할 때에도 그는 한결같이 일관된 톤으로 말했다.
"잘 하고 있어요."
덕분에 오늘도 당황하지 않으며 조급해하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으며, 호들갑 떨지 않아도 이 세상 끝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드라마라고 추천하는 <나의 아저씨>를 처음 보았을 때, 그저 어두운 내용을 담은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의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드라마에서 찾은 명대사 한 마디,
"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 대사에서 나만 위로를 받은게 아니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자녀에게, 부하 직원에게 그리고 배우자에게 말이다.
그 말이 하염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누군가를 살리는 말이기 때문이다.
"니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니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일이 그래. 항상 니가 먼저야.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 <나의 아저씨>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