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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Dec 11. 2020

강승호 "새로운 것 도전하며 실패하는 과정을 즐겨"

[인터뷰] '아들' 강승호 "새로운 것 도전하며 실패하는 과정을 즐겨"

제공=연극열전


다음 내용은 11월 8일에 나온 기사입니다.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연극 ‘아들 (Le Fils)’는 연극열전의 올해 세 번째 작품으로 유럽에서 사랑받는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가족 3부작인 ‘아버지’, ‘어머니’에 이어 마지막 작품이다.


‘아들’은 엄마 안느가 사는 게 버겁다는 10대 아들 니콜라를 감당하기 어려워하며, 니콜라는 아빠 피에르의 새 가족과 살면 뭔가 나아질 거 같은 기대감으로 아빠의 집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다시 찾은 듯한 보통의 평범한 날들 중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균열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한 카페에서 ‘아들’에서 니콜라 역으로 연기 중인 배우 강승호를 만나 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그는 질문마다 단어를 정제하듯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답하기 시작했다.


제공=연극열전


 다음은 배우 강승호와 일문일답이다.
 
Q. 연극 ‘아들’ 대본은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작가라고 들었는데 공연을 못 봤기 때문에 작법 자체가 궁금했다. 대사도 어려운 말보다 단순하고 투박하며 섬세했다. 대사와 대사의 말들도 와닿았지만 행간에서 나오는 공기들이 인상적이었고, 눈으로 읽었을 때와 달리 작품으로 실현되었을 때 말의 값이 굉장히 기쁠 거 같다는 인상에 매력을 느꼈다."


Q. 상상 속 니콜라의 첫인상은 어땠나.


"이미지적으로 봐서는 절벽에 걸터앉아 아래서 웃고 있는 사람들을 멀찌감치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 같았다."


Q. 자신과 니콜라가 비슷하다고 느낀 지점은.


"항상 변화되길 추구한다. 저는 개인적으로 해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하며 실패하는 과정들을 즐긴다. 같은 것을 반복하는 걸 잘 못 한다."


Q. 그럼 매일 같은 공연이지만 변주를 하나.


"이번 공연은 필히 변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주하는 순간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예측하지 못한 감정이 튀어 나와야 하는데 어떤 게 이미 계산되어있으면 상대방과 소통이 안 되더라. 매번 변주하며 그 순간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공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


Q. 더블 캐스팅인 같은 역의 이주승 배우의 니콜라 연기와 완전히 다르던데, 크게 차이를 둔 부분은.


"표현의 기준이 달랐다. 저는 첫 시작 값이 너무 아래 있어서 미세한 행동 하나하나를 최소한의 값으로 보고, 최소한의 값을 최대한의 에너지로 보여주려고 했다. 주승이 형은 기본적으로 연극 무대보다 매체 쪽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순간순간 나오는 즉흥적인 에너지가 있으며 ‘이렇게 표현될 수 있구나’ 하는 게 있었다."


제공=연극열전


Q. 니콜라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할 때 수중에 있는 거 같은 물소리가 들린다. 왜 그런가.


"연출님의 말을 빌려 쓴다면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에 물이 차오르는 거 같다고 하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물속에 잠식해버린 느낌을 갖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연극적 장치로 쓰기 위한 거 같다. 저의 니콜라는 수중 아래 깊숙하게 있다. 그리고 니콜라가 미성년자여서 어떻게 물 밖으로 나와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 거 같다. 성인이면 수영하는 방법이든 기계를 차고 들어갔든 방법이 있을 텐데,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아픔을 비켜서 다른 방법을 가는 게 아니라 아픔을 직면하면서 걸으려고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Q. 니콜라가 집안을 어지를 때 액자에 뭐라고 쓰는데, 뭐라고 쓰나.


"우리나라 말로 하면 ‘죽음이 기다리리라’라는 뜻이다. 이걸 토대로 저의 해석을 말하자면 레퍼런스를 찾아볼 때 우울증에 걸린 분이 일기를 쓰는 것을 봤다. 쓴다는 거 자체가 하나의 행위이고 자신의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는 하나의 치료제인 거 같다. 그 장면이 현실적인 장면이 아니고 연극적 장치로 니콜라의 상태를 보여주는데, 점점 흐릿해지고 더 이상 자신을 발견할 수 없을 거 같은 상태였던 거 같다. 그런 상태에서 피에르가 새 여자와 사는 집으로 와서 아픔들을 직면하며 치유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온 거 같다. 그 과정에서 니콜라는 유년기의 시절을 마주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돌이켜보고, 오히려 과거처럼 뭔가 더 나아질 수 없을 거 같은 고립감을 느꼈을 거 같다. ‘죽음이 기다리리라’라고 쓰는 건 니콜라가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 같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Q. 니콜라가 집을 어지른 것을 소피아가 하나씩 치우는 모습을 관객들이 보게 된다. 이 의미는.


"배우마다 해석이 다를 거 같은데 소피아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니콜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냥 니콜라’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프레임, 피에르 아들의 니콜라, 안느 아들의 니콜라, 전에는 이러지 않은 아들 니콜라라는 틀 안에서 본다. 소피아는 그런 프레임이 없이 니콜라를 바라본다. 그리고 소피아 또한 그렇게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한 거 같다. 당장 힘들어지고 싶지 않아서 어지른 것도 치우지 않는다. 그러다 소피아도 니콜라의 아픔에 직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씩 치운다. 니콜라 침대에서 칼을 발견했다고 하고, 피에르에게 똑바로 보라고 전한다. 또한 “부정적으로라도 보는 게 낫지. 아무것도 못 보는 것보다는”이라고 하는 게 그때부터 니콜라의 아픔에 더 직면하는 게 아닐까."


Q. 극 중 가장 힘든 장면은.


"피에르와 싸울 때. 기본적으로 사춘기를 겪는 아이와 아빠의 싸움이 아니고 본질적인 둘의 부딪힘이다. 극에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감정을 갖고 있다가 터뜨리는 시점인데 한 번씩 공연할 때 버거워서 퇴장할 때 숨이 벅찰 때도 많았다.


Q. 피에르가 니콜라를 다그치는 말 중에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피에르가 니콜라한테 감정적으로 하는 말들이 많다. “널 어떻게 해야 하니” 같은 말이 니콜라의 입장에서는 ‘진짜 이 사람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거 같다. 그전까지도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최대한 노력을 해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마지막 하나의 희망조차도 사라지는 거 같다. 니콜라가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거 같다.


그 전에 엄마랑 만났을 때도 “더 이상 못할 거 같고 멈추고 싶다”고 말을 하는데, 아빠와의 사건이 있고 나서는 ‘반드시 멈춰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 고통이 더 증폭돼서 저뿐만 아니라 아빠, 엄마, 소피아, 사샤에게 고통을 나눠주는 거 같아서 차단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공=연극열전

Q. 니콜라에게 피에르의 새 여자 소피아는 어떤 존재인가.


"가장 동질감은 느끼는 존재로 소피아한테도 “당신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아마도 저랑 비슷한 힘듦을 느꼈을 거 같고 소피아가 유일하게 니콜라 그 자체로 본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뒤에 “아줌마가 저랑 사는 걸 반대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말하는데 정말 감사함을 느끼는 거 같다. 그렇지만 다가갈 수 없는 존재이다."


Q. 가장 와 닿는 대사는.


"대본을 읽었을 때 “사는 게 버겁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사는 게 버겁다고 말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성인이 그런 말을 해도 안타까운데 어린 아이의 입에 나오는 사는 게 버겁다는 게 깊이가 와 닿았던 거 같고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더 공감됐다."


Q. 최근에 사는 게 버겁다고 느낀 적은.


"저 자체가 새로운 것들을 더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느 순간 앞으로의 단계나 저를 자극 시킬 수 있는 게 보이지 않을 때 저의 원동력이 사라지고 좀 버겁다고 느껴진다."


Q. 예전에 “죽음도 인간의 권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던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때 그런 말을 했나. (웃음) 이번 공연하면서 다큐멘터리도 많이 찾아봤는데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픔이 너무 크다 보니 죽음도 인간의 권리라고 딱 생각할 수 없다. 니콜라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치유될 수 없지 않나. 요즘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픔에 더 집중된다."


Q. 혼자만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요즘에는 글을 쓴다. 글을 잘 못 써서 그냥 막 쓰는 걸 좋아한다. 요즘 관심사를 영화 시나리오나 촬영, 제작과정에 둬서 그런지 관련된 걸 자주 본다. 전에는 영화를 보면 연기와 연출을 봤는데 요즘에는 카메라 워킹, 앵글 같은 걸 보게 되더라. 취미가 딱히 없는 거 같고 순간순간 재미있는 걸 찾는다."


Q. 그럼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노팅힐. 대사의 위트나 작법, 미장센이 정말 좋다."


Q. 마지막으로 니콜라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는 소중한 존재야."


연극 ‘아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호흡으로 대답을 해나가던 강승호는 인터뷰가 끝나고 어려운 시간이었다며 웃어 보였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작품에 묵직한 인상으로 연기를 펼쳐나가는 강승호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한편, 연극 ‘아들’은 11월 2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https://www.anewsa.com/detail.php?number=2269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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