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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Dec 15. 2020

‘내가 죽던 날’ 김혜수, 최선보다 충실하게하는 배우

김혜수.(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다음 내용은 12월 14일에 나간 인터뷰 기사입니다.



[아시아뉴스통신=위수정 기자] 제목부터 강렬해 눈길이 가는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명연기로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김혜수는 사건의 이면의 진실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로,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섬마을 주민 ‘순천댁’에는 이정은, 유서 한 장 남기고 섬의 절벽 끝에서 사라진 소녀 ‘세진’에는 노정의가 연기를 했다.


김혜수는 “‘내가 죽던 날’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어떤 장르와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인상적이었다. 현수의 시점으로 가니까 마치 제가 느낀 거처럼 저의 이야기 같았고, 위로를 주는 느낌이었다. 관객들도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작품의 첫인상을 밝혔다.


이어 김혜수는 완성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좋아서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우리가 느낀 게 영상에 담기고 있나?’ 많이 걱정돼서 회의를 많이 했어요. 보완해야 할 것도 많이 이야기했죠.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면밀히 냉정하게 보지 못하고 영화의 흐름대로 따라갔어요. ‘시나리오에서 느낀 게 영화에서 느껴지고 있구나’라고 생각돼서 안도했죠. 가장 두려운 건 우리들이 느낀 걸 우리들만 느끼고 끝나는 것이 우려됐어요. 글과 영상으로 구현되는 건 별개의 문제거든요. 진심으로 제대로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관객이 함께 느껴줘서 다행이에요.”


김혜수.(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내가 죽던 날’을 보면 누구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오게 된다. 직접 연기를 한 배우들도 마찬가지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라고 언급을 한 바가 있는데, 유독 김혜수에게는 지난 일련의 사건들을 덧붙이며 극 중 현수를 김혜수 그 자체로 설명해 놓은 글들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글이 저랑 비슷해서 제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제 상황이 그렇기에 제가 느낀 걸 캐릭터에 투영하는 건 없었다”며 “현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글을 시각적으로 보여줘야 하니까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다. 배우에게 자산이라는 건 연기적인 기술, 삶의 경험, 자신의 느낌 모두가 해당되지만 제가 느낀 고통도 자산이다. 현수의 이야기가 절망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제가 느꼈던 절망의 감정을 떠올렸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극 중 현수는 강인한 외모에 속은 여리고 아픔이 있는 인물로 비단 현수뿐만 아니라 주위에 이러한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지완 감독은 이런 모습을 김혜수에게 느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김혜수는 “누구나 그렇다. 분위기 메이커인 밝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정말 해맑은 인생만 살아오지 않을 거다. 누구나 고통은 있으니까요. 그걸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은 조금 더 세밀하고 다를 수 있다. 자기가 만들어나갈 이야기에서 발견할 지점을 제가 갖고 있냐, 안 갖고 있냐 보셨을 거다. 건강하다고 해서 슬픔이나 고통이 건강한 사람을 피해 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고 덧붙였다.


제공=워너브러더스 픽쳐스

이어 김혜수는 현수에 대해서 “현수는 차분하지만 아주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 거 같다”고 언급했다. 그는 “현수도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매우 그럴듯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현수가 세진이의 사건을 맡게 된 이유는 일에 열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무너진 거 같은 마음을 겪고 아픔을 잊기 위해서 일이라고 하지 않으면 미칠 거 같아서 감정적으로 도피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건 마무리 보고서만 작성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사건을 풀어나가 보니 본의 아니게 재조사가 될 정도로 그 사건 속에 있는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 현수는 베테랑 형사지만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정황과 증거에 치중하지 않고 사람에 집중하며, 사람에 관한 질문을 한다. 본인을 둘러싼 사건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을 하는 인물이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죽던 날’에서 현수는 세진을 바라볼 때,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자살로 추정되는 한 소녀의 실종 수사 보고서를 마무리하려고 갔는데 되짚어 가다 보니 아이의 고통이 느껴지고 저와 동일시되는 거죠. 저 역시도 피해자이고 고스란히 상처받은 사람인데, 현실적으로 오해와 고통, 압박을 받고 풀어내야 하는 모습이 동일시됐어요. 이때 순천댁 역할이 중요한데 말을 잃은 사람이라는 설정이 좋았어요. 이정은이라는 사람의 명연기를 보는 게 관객들에게도 희열이 있겠지만, 영화 본질과 가장 맞닿아있죠. 뚜렷하게 하는 대사가 아니지만 영화에 가장 근접한 대사를 하는 게 순천댁이에요. "네가 너를 구해야지" 같은 말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저에게 필요했던 말인 거 같아요. 그런 메시지를 말없이 묵직하게 담아낸 부분이 너무 좋았어요. 순천댁은 현수와 세진이와 같은 고통을 이미 경험한 사람이고,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경험한 걸 토대로 손을 내밀어 위로를 전하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며, 희망을 주는 말보다 더 묵직한 메시지를 주는 게 이 영화의 살아있는 주제같아요. 현수나 순천댁 같은 사람이 좀 더 많다면 더 따듯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김혜수.(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상처가 오기 마련인데, 김혜수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제가 뭐가 대단해서 예기치 않은 고통이나 절망적인 순간이 왔을 때 극복할 만한 게 없고 저 또한 좌절해요.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며 내버려 둬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제 곁에는 사람들이 있었더라고요. 누가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때 누구 한 명만 제 곁에 있었으면 삶이 달라졌을 수 있어요. 현실적으로 누가 옆에 있을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전해줄 수 있고, 멀리 있지만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몰라요. 본인이 괴로우면 눈에 뭐가 들어오지 않잖아요. "힘내"라고 하면 ‘힘이 없는데 왜 힘을 내라고 할까’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이라는 게 참 긴데 순간순간이 좋기만한 순간 보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도 많고 별 거 아닌 거에 위안을 얻기도 하죠.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지만 저희 같은 사람도 이렇게 고민이 많은데 더 많은 분은 얼마나 아픈 경험이 있겠어요. 그럴 땐 삶의 어떤 순간으로 무언가가 너무 맞서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요.”


김혜수에게 기억에 남는 위로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제가 어떤 위로를 받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위로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위로를 받는 경우가 있지 않나. 제가 한 영화를 찍고 지금처럼 기자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에게는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공식적인 자리가 있었다. 그때 배우로서 영화 홍보 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정직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제한됐다.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 한 분이 저한테 오시더니 팔찌를 직접 만들었다고 주시면서 "오래 연기해서 고맙다"고 말을 해주는데 배우로서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제가 제 작품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게 죄송스럽고 부끄럽고 힘들었다. 같은 업계에서 이런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오히려 그분은 냉정한 잣대에서 평가하는 분인데 저에게 그런 말을 해주셔서 큰 위로가 됐다. 정말 오래도록 못 잊을 거 같다. 지나고 보니까 그 순간 저는 너무 힘들었고 혼자라고 느꼈지만 늘 누군가가 곁에서 지켜줬다. 그 당시에 못 느꼈지만 지나니까 위로가 되고 그 상황이 아니어도 위안을 얻고 현실을 살아내는 힘을 얻는다”고 감사한 마음을 함께 전했다.


김혜수.(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마지막으로 배우가 되길 잘했다는 순간이 있냐는 질문에 “배우 기 잘했다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감사하긴 하지만 잘한 건지 모르겠다. 스스로 위로를 해주는 것은 대외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과거에 연기 못한다고 혼날 때도 저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시그널’을 찍을 때 김원석 감독한테 최선이란 건 계속해야 최선인 지 제가 느끼는 건 최선이 아니라는 걸 크게 배웠다. 저도 모르게 최선을 정해두는 거 같았다. 최선보다는 충실하게 하고 있다는 게 맞는 거 같다”고 묵직한 대답을 전했다.


김혜수와 한 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따뜻한 목소리와 눈빛에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 꽉 끌어안아주던 그의 품이 너무 따뜻해서 그 순간만큼은 포근한 봄 같았다.


한편 영화 ‘내가 죽던 날’은 극장뿐만 아니라 IPTV 및 디지털케이블TV를 통해 VOD 서비스를 시작해서 안방극장에서도 볼 수 있다.



https://www.anewsa.com/detail.php?number=230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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