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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수정 기자 Feb 24. 2021

[인터뷰] 김태오 "박제되는 삶, 받아들여야죠"


뮤지컬'스모크' 공연사진_김태오.(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다음은 2월 18일에 나간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울=열린뉴스통신) 위수정 기자 = “‘날 바라보는 눈동자, 날 안다는 듯’ 저는 평가 받는 직업이니까 가장 와 닿았죠.”


뮤지컬 ‘스모크’(작연출 추정화, 제작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 시인 ‘이상’의 연작 시 ‘오감도(烏瞰圖)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작품으로 2020년 12월에 세 번째 시즌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뮤지컬 ‘스모크’는 ‘초(超)’, ‘해(海)’, 홍(紅)’ 세 명의 인물을 통해 근대문학의 모더니스트 ‘이상’의 천재성, 식민지 조국에서 살아야만 했던 예술가의 절망과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날고 싶었던 염원과 희망을 그리며, 세상과 발이 맞지 않았던 절름발이 이상의 삶과 예술, 고뇌와 함께 식민지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냈다.


김태오는 그림을 그리는 소년 ‘해’ 역으로 무겁고 긴장감 넘치는 극 속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천진하고 순수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그는 “‘스모크’에 대해서 잘 모르다가 작품을 만나보니 지금껏 제가 했던 작품의 결과 많이 달라 재미있다. 작품에서 등, 퇴장과 암전이 없고 인물의 서사보다 사건만 나열하기 때문에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작품의 색깔을 인지하고 나니 이해도 되고 사건 자체가 흥미진진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재밌었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뮤지컬'스모크' 공연사진_김태오.(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꼭 마주해야 하는 작가 이상. 난해하기로 유명한 이상을 연기하면서 어려운 적은 없었을까. 김태오는 “저는 고등학생 때 이상을 배웠다는 걸 기억 못 했다. 이육사의 광야밖에 기억이 안 났다. 이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대본을 읽었을 때 어려운 점이 없었던 이유는 이상의 생애를 시로 풀어나간다는 느낌보다 어떤 한 사람의 고뇌를 푼 거로 생각했다. 이상이 아닌 자기의 고민과 철학이 있고 고통을 느낀 인물이라면 더 확장해서 누구나 될 수 있지 않을까. ‘해’가 각성을 하고 나서 내가 누군지 알고 과거로 넘어갔을 때 김해경이 움직일 수 있는 동기나 다음 상황으로 행동할 수 있게끔 하는 상태와 연결고리, 생각의 흐름을 이어 가는 게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고 설명했다.


김태오는 극 중 가장 순수하고 해맑은 인물 ‘해’를 연기하면서 그의 나이를 5~8세 정도로 잡았다고 한다. 이어 그는 “‘해’의 나이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대본에는 바다를 그리고 보고 싶어 한다고 하는데 바다의 설정을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바다인지 실제로 해안가에 있는 바다인지 떠올렸을 때 저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다를 못 가본 사람도 많고 영화 ‘해적’에서 해적이 산적한테 바다를 설명할 때 그런 곳이 어딨냐고 하듯 그런 모습을 떠올렸다. 바다가 시를 쓴다는 말을 듣고 감응이 돼서 동조하고 흥미를 갖고 친구를 너무 좋아하며 ‘초’가 ‘해’한테 거칠게 다루는 것을 봐도 너무 어리기 때문에 이게 무서운지 몰라야 한다고 생각해 ‘해’를 어리게 잡았다”고 말했다. 김태오도 ‘해’처럼 순수한 거 같냐는 질문에 그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거에 대해서 되게 순수한 거 같다. 얼마 전에 컴퓨터를 새로 사서 게임을 하는데 시작하기 전에 너무 설렜다”며 웃으며 답했다.


김태오.(제공=라이트하우스)


김해경은 이상의 본명으로 김해경을 연기할 때 와 닿았던 지점과 김태오로 와 닿았던 점이 어떻게 달랐을까. “김해경으로 와 닿은 부분은 <그냥 쓰자. 그냥 쓰고 또 쓰자>였는데 이 한 마디에 모든 고뇌와 고통, 갈등이었던 자신과의 싸움을 해소하고 그냥 쓰자고 하는 게 가장 명쾌한 거 같아요. 그리고 김태오로는 <날 바라보는 눈동자 날 안다는 듯>이라는 노랫말이 저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직업이다 보니 와 닿았어요. 그렇다고 김해경처럼 그 시선에 분노하지 않지만 그런 평가나 시선, 관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김태식(김태오 본명)으로는 '그냥 자기가 하든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배우로서 김태오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해요. 김태식은 딱딱하고 거친 기질이 있지만 공연을 하고 다른 사람과 마주하며 저의 생각과 분석을 다른 사람과 교류해야 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기본적인 기질로 튕겨낼 수 있는 말을 김태오로는 들어보려고 노력해요.”


앞서 살짝 언급됐듯 ‘해’는 바다에 가면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들뜬 모습을 보인다. 바다에 가보지 못한 ‘해’가 왜 바다에 가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을지에 대해서 김태오는 “작가님이 한 시를 보고 바다를 연상했다고 하셨다. ‘빨간 끝, 파란 시작, 파란 끝, 빨간 시작’이라고 나오는데 우리가 보이는 건 파란 혈관인데 찌르면 빨간 피가 흘러내리듯 피가 흐른다는 게 생명과 같다. 그래서 넘버 제목도 ‘생’이다. 살아있고 숨 쉬는 걸 포커스에 두면 바다를 가는 건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행위를 원하는 게 아닐까 이해하고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저는 바다보다 산과 계곡을 좋아한다. 바다는 장엄하고 멋있지만 산이 계곡, 새소리처럼 더 보고 들을 게 많은 거 같다. 최근에 관악산을 등산하는데 험난한 길이더라. 옛날에는 도보로 어떻게 다녔지 싶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스모크' 공연사진_김태오.(제공=㈜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뮤지컬 ‘스모크’에서 결국 ‘해’ ‘초’ ‘홍’은 모두 한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나’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김태오가 생각하는 ‘나’는 어떠냐에 대한 물음에 “최근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면서 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저에게 스며들면서 성장하고 배운다고 하지만 최근에 제가 정말 깊어진 거 같다. 깊이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년에 연극 ‘어나더컨트리’ 공연을 할 때 ‘스모크’ 연습을 같이했는데 그전에는 작품이 겹쳐도 열심히 했는데 그때 제가 주변에 대해 불만이 생겼었다. 왜 시간이 이렇게 바튼 건지 구시렁거리고 투덜거리다 ‘스모크’ 연습이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을 때 정말 힘들었다. 이때 스스로 제가 사람, 연기,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때려 쳐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연습이 다시 언제 시작할지 모르니까 돈을 벌려고 공사 현장에서 일을 했는데 이 시기에 가족들 돌아보게 됐다. 제가 언제까지 손을 벌리고 살아야 하나 싶었다. 이 모든 계기가 많은 생각을 들게 하고 값진 시기가 된 거 같다. 예전만큼 마음이 방방 떠서 공연을 하지 않을 거 같다. 지금은 장점은 사람을 대할 때 차분해진 게 있고 단점은 거리를 두게 되더라”고 진솔하게 전했다.



김태오.(제공=라이트하우스)


‘박제된 천재’ 이상을 연기하고 있지만 김태오 또한 배우로 일하며 박제가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때로 이런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우려했지만 그는 “어느 순간 내려놨다. 프로필 촬영을 하고 사진을 고를 때도 제가 잘 나왔다고 느끼는 것과 사람들이 고른 것이 다르더라. 유튜브 영상에서도 제가 초창기에 살쪘던 모습이 있는데 이미 찍혀져서 올라간 영상을 어떻게 하냐. 간혹가다가 이런 걸 보면서 재미있어하기도 한다”며 유쾌하게 답했다.


김태오는 올해 스스로 차분해지고 정제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고 한다. “제가 생각하는 것과 저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의 정도를 맞춰 보려고 해요. 제가 고집이 진짜 세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편인데 올해는 많이 공감하려고 해요.”


한편, 뮤지컬 ‘스모크’는 3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된다.


https://www.o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4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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