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지박약사 Oct 17. 2024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의 삶에 깨끗하고 눈부시고 행복한 순간은 별로 없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악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죄성을 가진 이기적인 죄인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저의 말에 반대하며 호되게 야단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 좋은 것, 멋진 것, 무엇보다 더렵혀지지 않는 부와 명예를 갖고 싶어했습니다. 저는 아들 구실, 손자 구실, 가장 구실, 친구 구실, 약사 구실, 남편 구실, 아빠 구실, 성도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아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고 그들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디로 가긴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헤매다가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그저 잠들고 싶습니다. 그 어떤 구실도 할 필요 없는 그 어느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내 또 좌절하고 맙니다. 그곳에도 저라는 인간이, 저라는 죄인이 아직 남아있을테니까요. 

  어제는 목사 아빠와 목사 아들이 성도에게 사기를 치고 착취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의사가 병원개업과 약국유치를 미끼로 약사에게 1억 6천만원의 피해를 끼쳤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 약국 위 병원 원장이 떠올랐습니다. 몇 년 전 약국을 자주 들락거렸던 사기꾼이 떠올랐습니다. 예전 교회 목사들이 떠올랐습니다. 제 가족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기억들은 제게 하나도 좋을 게 없는 쓰레기들이었습니다. 곧 제 마음은 요동치고, 흙탕물로 더렵혀지고, 악의와 살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왜 인간은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려 하나 싶어 답답했습니다. 저는 점차 인간을 싫어하고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에게 수여한다는 놀라운 발표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면서도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이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읽은 뒤에 그런 생각은 더욱 커졌고 확고해졌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두 해 전인 1980년 5월 18일을 이제 저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문단 몇 개를 붙여서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싶습니다.  

  "저들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무기를 돌려주고 항복할 순 없습니다. 저들이 먼저 우리 시민들의 시신을 돌려줘야 합니다. 끌고 간 시민 수백명도 풀어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일어난 일들의 진상을 전국에 밝혀서, 우리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총기를 반납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중략)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꿋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중략)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에서

  저는 성인이 된 이후 5.18에 관해 간간히 들어왔기 때문에 아주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헬기에서 기관총을 발사하고, 건물 위에서 시민을 저격하고, 지상에서도 무차별적으로 기관총을 갈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게는 마치 임진왜란 같은, 아니 일제강점기나 6.25전쟁 같은 지난 역사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사회나 역사 시간에 시험문제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필기하고 외웠을 뿐입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무미건조했던 이론이 한강 작가에게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퍼런 총검이 되어 그녀의 명치를 꿰뚫었습니다. 저는 책에서 이런 고백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유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그 복음을 처음 믿게 되었을 때의 그 충격과 비슷한 결의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총에 맞아 죽으면서도 끝까지 죽음을 불사하고 도청을 지킨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죄성을 가진 이기적인 인간이 저럴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인간의 본능적인 종교성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양심', 그것도 '보석처럼 눈부시게 깨끗한 양심'이 그 순간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권력', 그것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살육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그 순간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수십만의 양심이 모인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그 심장은 탱크와 기관총을 앞세운 군대 권력 앞에서 찢기고, 부서지고,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방사능 피폭을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 누구도 더럽힐 수 없고 깨뜨릴 수 없다 믿었던 다이아몬드가 산산조각 깨져버렸습니다.

  저는 <소년이 온다>를 읽고 인간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돈과 권력 앞에서는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고, 누구나 타인을 괴롭히고, 이용하고, 착취하고,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습니다. 온 몸에 소름이 확 끼치면서 오싹해졌습니다. 이 때 석류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석류 할머니는 가끔씩 석류콜라겐을 네 통씩 구입하시는 고객이신데, 절대로 약국에 방문하는 일이 없습니다. 석류 할머니는 무조건 전화를 걸어 외상주문을 합니다. 절대로 돈을 먼저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석류 할머니는 될 때까지 매일 전화를 걸어 저를 귀찮게 합니다. 어제도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거래 시작한 지가 언젠데 왜 이래요? 저 못 믿어요? 빨리 석류콜라겐 보내줘요. 내가 확인하고 돈 보내줄테니까. 그리고 만원 할인 알죠? 그리고 택배비는 안 받으면 안 돼?”

  제 마음에 갑자기 석류 할머니를 의심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소년이 온다>의 여운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합리적이었습니다. 왠지 손해를 볼 것 같아 주저함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석류콜라겐을 안 갖다드리면 계속 전화하실 것 같아 결국 제가 먼저 두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할머니 주소를 찾아보니 주엽역 근처네요. 제가 퇴근하는 길에 아파트로 찾아가서 집 앞에 두고 갈게요. 저는 주엽역에서 지하철 타면 바로 집으로 갈 수 있거든요. 내일 석류콜라겐 확인하시면 입금해주세요. 아시겠죠?"

  퇴근 후 주엽역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습니다. 하늘은 아주 낮아 장기하 노래처럼 점프하면 머리를 쿵 하고 박을 것 같았습니다. 곧 소나기가 내리칠 것 같은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석류할머니가 사시는 아파트 단지 안은 이상하게 가로등이 없고 많이 어두웠습니다. 인적이 드물고 나무만 보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저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누가 달려와 총검으로 내 명치를 찌를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고등학생 남녀커플이 막 달려오더니 만나서 서로 손뼉 치며 반가워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4차원 세계 같은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손을 내밀면 닿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바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지난 주 김현근목사님이 하신 설교말씀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부정한 베드로는 주님의 위로를 받고, 그 실패의 경험을 새긴 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인간은 빛을 가리고 죄악으로 눈을 흐리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그 어둠까지도 사용하셔서 사랑하는 제자가 빛을 찾게 만들고, 그가 진리를 직시하고 변화되는 전환점을 마련하십니다. 이것은 죄인이 기대할 수 없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주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그 어떤 죄악도 돈과 권력도 그 무엇도 더럽히거나 깨뜨릴 수 없는 순수하고 깨끗하고 눈부신 보석입니다. 이 보석과 하나될 때 우리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악으로 물든 인간의 종교성에서 참된 예배와 사랑으로 발돋움하여 자유케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제게 주님의 마음을 주세요. 우울하고 부정적인 마음 말고 주님 안에서 평안한 마음, 성령으로 충만한 마음을 주세요. 그래서 제가 더 텐션이 업되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래 갖다드리자. 돈 못 받으면 어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주소를 확인한 뒤에 석류콜라겐을 할머니 집 앞에 두고 주엽역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지난 주 유치부에서 했던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색깔에 선 사람이 한 칸씩 전진하며 옆에 놓인 사탕을 획득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사탕 하나로 만족했고, 주사위를 던지는 것만으로 행복해했습니다. 그 누구도 사탕 대신 돈을 달라하거나 힘으로 주사위를 뺏거나 결과를 속이거나 우기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흐뭇해지는 광경이었습니다. 아마 그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빠져 저는 유치부 교사가 된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유치부 아이들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싶어졌습니다. 엄마아빠가 함께 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선에 기뻐하고 감사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저 같은 죄인이 이렇게 가정 꾸리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선이었습니다. 지금 되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자 선이었습니다. 이렇게 못난 제가, 수없이 실패한 제가 약사로 일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비록 오늘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내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난 과거가 그저 낭비와 수치가 아니라, 주님께서 예비하신 제 인생의 전환점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의 성품을 빚으셔서 하루하루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삶을 살게 도와주소서. 주께서 부르신 곳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신자 되게 하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