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이런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나요? 누군가의 뻔뻔한 자기 합리화를 들으면서, 그 말 안에 담긴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때. 그런데 그 말을 상대방 입에서 너무나도 태연하게, 습관처럼, 흘러나옵니다. 마치 내가 뭔가를 잘 모르는 어린아이인 양 그들은 나를 달래려 하고, 결국 나는 괜한 과민반응을 보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안나 카레니나』의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바로 그런 사람 같습니다.
그는 가정교사와 부정을 지른 남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이라 말합니다.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단 걸 압니다. 하지만 뉘우치지는 않습니다. 그는 단지, 아내를 더 능숙하게 속이지 못한 것만을 아쉬워할 뿐입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그의 후회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라기보다 ‘아뿔싸, 들켜버렸네’라는 곤란함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이문장이 반복될 때마다, 그는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어떻게든 만회하려 애쓰는 중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결국 그는 정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회피와 자기 연민의 언어만을 쏟아냅니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의 후회, 그보다 더 관계를 무너뜨리는 감정이 있을까요? 그의 아내 돌리는 말이 없습니다. 침묵합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복잡하고 무너진 감정의 총합입니다.
이 감정은 도무지 이름 붙이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덩어리 같죠. 그 이름만 붙여줄 수 있어도 조금은 편할 텐데.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감정을 ‘영희다, 철수다’ 이를 붙일 수 없는 채로 그저 견뎌야 했던 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돌리는 남편을 떠나지도, 그렇다고 쉽게 용서하지도 못합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침묵 속에서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뿐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응시하며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날까?”
불륜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처하는 스테판의 철딱서니 없는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 습관적으로 미소 지으며 상황을 모면하는 사람.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감정이 이입된 것이겠죠.
아내 돌리가 선택한 침묵은 단호하고 강했습니다. 말보다 더 강한 감정이었기에, 그녀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돌보았고, 일상을 감내했습니다.누군가는 죄책감 대신 꿈을 꾸었고, 누군가는 상처를 안고 견뎠습니다.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께선 이제 외출하신다고, 그렇게 여쭈라는 분부십니다. 그분의, 그러니까 나리의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십니다.”
돌리가 남편에게 건넨 우회적인 메시지입니다.
“내 마음을 다시 얻고 싶다면, 당신이 스스로 알아야죠.”
그 말을 듣고 저는 다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사과 없는 후회 앞에서 얼마나 오래 참았지?”
“나는 정말 괜찮았던 걸까?”
“그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넘겨버린 건 아니었을까?”
이 문장이 곱씹히는 건,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쩌면 삶에서 반드시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성장의 고통일지도 모릅니다. 내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하기 위한 시간.
오늘도 나는 이 문장을 안고 하루를 버팁니다.
“그는 사과하지 않았고, 나는 침묵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