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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Feb 05. 2022

홀로 나체

꿈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마음속 어딘가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랬는데 자꾸만 변주되어 잊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 카테고리 하나쯤 있는 거니까 나 하나쯤 정상으로 치도록 하자


그게 뭐냐면 나만 벗고 돌아다니는 꿈이다 온 세상에서 나만 분홍 젖꼭지와 튜브 같은 뱃살을 보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이 붉은 것도 나뿐이라서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그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고 홀로 나체인 이유는 꿈속에서는 알 수가 없다


꿈 밖에서는 홀로 나체인 이유를 아니 모두 나체일 수 있는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눈을 질끈 감는다


질끈,

질끈,

질끈 질끈 질끈.


분홍 벽을 세운 서슬 퍼런 하늘과 잘 어울리는 대저택에 내가 앉을 방석 하나가 없었다 운을 만나지 못해 옷을 입혀줄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꿈속에서나 꿈 밖에서나 오들오들 떨고 있다


너희의 겉옷은 참 멋지구나 나의 자리 없음은 부도덕 때문이니 단 한 톨의 의심 때문이니 더 열심이었어야지 여우처럼 전략적이었어야지 더 굳게 확신했어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며 그저 칼로 새겨질 뿐이다 방석이 없는 또 다른 너를 보고 웃을 수 있으니까 다행이고 그런 이유로 나는 작아진다


자리가 주어질 혹은 뺏어올 타이밍이 있다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홀로 나체인 이유를 절대 밝혀낼 수가 없는 나체인 것이 죄목인 꿈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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