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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Dec 20. 2023

읽기를 통해 기획자의 생각이 더 깊어진다

기획자의 휴식시간

나에게 일터를 벗어난 휴식 시간은 자신에 대해 깊게 탐구해 보는 재충전의 시간이다. 나는 쉴 때, 여러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라기 보다 혼자만의 여유를 갖고 시간을 보낸다. 평일 오피스에서는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짜내는 ‘창작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주말에는 사람들과 잠시 멀어져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다.


나와 대화하기 위해 읽기

혼자 있는 시간에 나는 자신과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자신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혼자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읽는다. 다독가는 아니고, 책을 꼼꼼하게 읽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책의 문장을 꾹꾹 눌러서 눈으로 담으면, 마음을 때리는 문장을 발견하곤 한다. 그 문장을 발견하면 책 상단을 접고, 밑줄 긋는다. 그리고 독서 어플리케이션 리더스에 문장과 그 문장을 보고 느낀점을 적어본다.


올해 7월 별세한 거장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 테레자는 동반자 토마시를 만났을 때, 치명적인 우연이 작용했다고 이야기 한다. 테레자가 바텐더로 일을 하던 시골 동네의 허름한 바에 등장한 지적인 사내, 그리고 사내의 등장과 함께 흘러 나왔던 베토벤의 음악.. 물질 세계에 대한 환멸의 느끼고, 정신적인 것을 동경하던 테레자에게 토마시는 답답한 현실에서 탈피하도록 돕는 구원자 같았다. 허름한 바와 베토벤의 음악 등은 둘 사이 만남에 치명적인 우연으로 작용하여 둘은 결국 연인 사이가 된다.


밀란 쿤테라는 치명적인 우연을 사람과 사물의 만남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때 사람이 순간(사물을 둘러싼 환경)을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삶의 악장이 변한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치명적인 우연’을 설명하는 내용이 내 감성에 보슬비를 내려 촉촉하게 했다.


인생을 조금 더 풍성하게 살아가려면,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순간을 대수롭게 여겨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치명적인 우연으로 바라 볼 줄 알고, 우리의 인생을 상황에 맞게 변주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감성과 감정이 풍부해 지는 삶이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6 (저: 밀란 쿤테라)


이처럼 쉬면서 하는 읽는 시간은 나 같은 기획자의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유지하게 되면, 자신과 나누는 대화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 나와 다양한 주제로 대화 할 수 있다. 오늘은 밀란 쿤테라가 정의한 치명적인 우연에 대해 나와 대화했다면, 내일은 요한 이데마가 알려준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해 이야기 해본다. 나에게 미술이란 작가의 화풍이라는 픽션을 가미한 세계에 빠져보는 시간이다. 미술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속에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작품 안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현실 세계를 떠나 그림이라는 환상의 세계에서 살아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읽고 나와 대화하는 쉬는 과정을 통해 기획을 이해하는 범위의 폭도 넓힌다.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하는 과정은 나만의 생각을 끌어내는 법을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이 경험은 내가 기획일을 할 때 머릿속에서 사고를 하며 일을 진행하는 습관을 형성하게 한다. 기획할 때 발생하는 ‘읽음’에서 나는 내가 만들어내는 브랜드의 본질, 전략이 무엇이 될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읽음이라는 휴식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기획의 방법이다. 읽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만의 사고와 감정을 소환한다. 쉬면서 하는 ‘읽음’을 통해 기획자의 기획 더 깊어지는 휴식시간을 갖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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