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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Jan 01. 2024

다시 한번 좋아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일에 대한 선택과 관련된 이야기

우리가 살아 가면서 해야하는 일은 어떤 일이 되어야 할까?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지만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일, 혹은 좋아하는 관심사에 포함 되지만 벌이가 확실치 않은 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일에 대한 선택을 할 때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두 선택지는 일에 대한 개인의 목적성을 ‘돈’에 둘 것이냐 혹은 ‘자아 실현’에 둘 것이냐에 따른 차이가 있다. 돈, 자아실현은 일을 하면서 챙겨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자산이기에 선택에 대한 그릇됨이 없다.


그렇다면, 몇 십년 동안 꾸준히 지속해야 할 일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 것인가? 어떤 선택이 나에게 옳은 결정이 될 것인가?


이 고민은 사실 일을 하면서 내가 자주 마주하는 인생의 숙적 같은 생각 거리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기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의 경우를 상상하고 적합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전자(안정적인 벌이)를 선택하면 일에 대한 지루함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하고, 후자(흥미 있는 일)를 선택하면 성공으로 가는 좁은 틈을 뚫기 위해 마주하는 험난한 굴곡을 통과하는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첫 번째 선택은 ‘흥미’

사회에 들어서기 전 일에 대한 나의 첫 선택은 ‘흥미’였다. 학창 시절 스포츠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 같은 존재였다. 새벽에 밤을 세워가며 세계 최고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박지성의 경기를 보았고, 고등학교 점심시간에는 산소탱크가 되어 운동장을 누볐다. 당시 나는 스포츠를 보거나 직접 즐기면서 느끼는 생동감과 활기, 그리고 에너지를 무척 사랑했다. 스포츠가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오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았다. 그래서 나의 커리어 첫 시작은 스포츠 마케팅 이었다. 일에 대해 순수한 마음을 가졌고, 스포츠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다.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가 되는 것을 꿈꾼 채 한껏 들뜬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나는 약 5년 정도 스포츠 산업에 종사했고 에이전시, 프로축구단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땐 스포츠 마케터라는 직업이 워낙 생소하여, 업무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직장에서 일했다. ‘무엇을 잘해야 일하는 집단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개인의 역량에 대한 준비도 미처 이뤄져 있지 않으니, 눈 앞에 닥치는 일을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오피스를 지켰다. 대지 같이 넓은 스타디움에서 현장을 전두지휘 하며 카리스마를 뽐낼 것을 기대했건만 현실은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PPT 로 계속 무언갈 만들었고, 어느 골프 대회 현장에서는 프로암에 참석하는 VIP 골프백을 쉼 없이 날랐다.


인턴 시절엔 한 달 그렇게 빡빡하게 일하면, 통장으로 급여가 90만 원이 들어왔다. 월세 25만 원 짜리 흑석동 단칸방에 살았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굳게 믿은 채 꿈을 이루기 위한 고생을 자처했다. 일터와 일터 밖의 삶이 너무나 퍽퍽했다. 집을 나오면 부모님의 경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줄 알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삶이 ‘일’과 ‘잠’으로만 이뤄져 있었고, 취미생활이나 여행은 사치로 여겨졌다. 니체의 ‘삶은 고통이다’라는 명언이 당시 나의 삶을 표현하는 데 최적의 문장이었다. 인턴 6개월을 마치며 고시원 방을 빼게 되었을 때,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스포츠 산업에 종사하는 기간 동안 근로자의 근무 여건이나 처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악덕 기업에서 일 해보았고,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 선수들과 원정 버스를 타고 다니며 전국 각지에서 여러가지 추억도 쌓았다. 5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이 산업에서 해볼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았다고 생각했다. 내 생활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 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스포츠 분야를 붙잡고 있는 끈을 과감히 놓아 버렸다.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 하나를 놓아 줬지만, 해 볼만큼 해봤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결정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은 ‘안정’

스포츠 마케팅 산업을 떠난 이후 일하는 영역의 범위를 ‘스포츠’라는 특수한 분야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광고 기획으로 범위를 확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 기획은 수요가 많은 안정적인 산업이었기에 나만 잘하면 퍽퍽한 생활 여건이 개선될 수 있을 것 같았다.


1-2개월 정도 포트폴리오를 그럴싸하게 꾸며 놓고 입사 지원서를 돌렸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두 회사의 공채에 합격했다. 그 중 근무 여건이 더 괜찮아 보이는 광고 스타트업 기획사를 선택하여 일을 다시 시작했다. 근로자를 소중하게 일하는 ‘착한 기업’에서 일해 보고 싶어 신중하게 선택한 회사였다. 그 기업의 표준 근로시간은 11시 부터 6시까지 였고, 키우고 있는 반려견과 함께 동반 출근이 가능한 회사였다. 무엇보다 인터뷰 당시 느낌이 좋았다.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경영진의 비전이 내 마음을 울렸다.


2019년 9월에 입사했고, 2023년 12월 최근까지 3년 3개월 동안 광고 기획사에서 일했다. 첫 사회생활에 비해 이 곳에서의 도전은 비교적 수월했다. 오피스 업무에 능숙했고, 프로젝트를 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 또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을 진행함에 있어 일을 잘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문서 작성 영역에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자신감 있게 일했다. 열심히 일한 결과, 연봉도 매년 꾸준히 상승했다. 또한 일과 삶의 적절한 균형을 챙겨가며 가족과 여유로운 삶도 즐겼다. 이제 좀 삶이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3년 넘게 일하니 급작스럽게 매너리즘에 빠졌다.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고, 직장 생활에 무료함을 느꼈다. 어느새 잘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보다 일을 적정선에서 빨리 끝내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게 됐다. 일을 찾기 보다 수동적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한 기계의 부품 ‘나사’처럼 일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생각하고 세게 현타를 맞았다. 월급루팡으로 회사에서 맹목적인 시간을 보내기 보다, 조금 더 주도적으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일에 있어 조금 더 권한을 가질 수 있고,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끈질기게 공부할 수 있는 일, 그런 일이 나에게 필요했다.


그래서 회사에 남아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이직을 결심했다.


세 번째 선택 ‘또 다시 흥미’

광고 기획자로 일하면서 기획에 대한 감각을 익혀온 나는 다음 스텝으로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는 독창성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만이 전할 수 있는, 기획에 대한 고유성을 끌고 갈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기획자로서 ‘고유’함을 생각했을 때, 나를 특별하게 해 주는 것은 결국은 ‘관심사’라고 생각했다. 자주 듣고 싶은 끌리게 되는 이야기는 단조로움이 느껴지는 ‘같음’이 아닌 색다르게 다가오는 ‘다름’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좋아하는 일을 깊게 파 보고 싶었다.


근래 들어 예술이 내게 주는 영감과 사유가 좋았다. 전시에서 한 자리에 오랫동안 선 채 그림을 바라보며, 작가의 상상력이 펼쳐지는 세계에 흠뻑 빠지곤 했다. 한 미술관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 예술을 즐기고 있네?’, ‘좋아하고 있네?’, ‘그렇다면 예술가와 함께 사람들에게 끌리는 이야기를 전해 보면 어떨까?’, ‘이것이 나의 기획에 차별성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기획에 예술을 덧붙여 보고 싶었다.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예술 관련 키워드를 검색했고, 예술 기획자를 뽑는 한 공고를 발견해 거침없이 지원 버튼을 클릭했다. 운이 좋게 면접을 보고, 몇일 후엔 최종 합격 문자까지 덜컥 받게 됐다. 그리고, 지난주에 예술 기획자로서 첫 출근을 했다.  회사의 규모나 여건 측면에서 전 보다 더 나은 환경이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과장이라는 직급을 달았고, 도전적인 미션을 받았다.


2024년 첫 시작, 나는 안정적으로 머무르는 것 보다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다시 한 번 조금 더 흥미를 갖고 일할 수 있는 길을 걷기로 했다. 이 선택에 대한 100%의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전 보다 업무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성장했다. 그래서 스포츠를 선택한 첫 도전과는 달리 이번 도전에는 조금 더 선택에 대한 무거움이 있다.


될 수 있는 한 나의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해 깊게 이 산업을 파보고자 한다. 분명 쉽지 않고 어려운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눈 앞에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오히려 더 좋다. 어려운 길은 과제를 해결해 냈을 때 더 짜릿한 성취감이 있기 때문이다. 흥미를 갖게 된 ‘예술’을 나의 독창성으로 확장시켜 나가 보겠다. 잔잔하고 오래 그리고 깊게 예술을 공부해 이 산업에서 ‘한 획’을 긋는 사람으로 남게 되고 싶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일에 대한 선택,
지겹지만 나는 또 다시 ‘흥미’를 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읽기를 통해 기획자의 생각이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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