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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 평범한 하루로 채워지는 완벽한 일상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

by HaNd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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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구입한 'OLYMPUS μ [mju] 올림푸스 뮤1'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제법 연관해서 나오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영화의 제목은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 '야쿠쇼 코지 (役所広司)'라는 배우가 주연으로, '쉘 위 댄스'나 '우나기', '실락원' 같은 작품을 봤던 기억이 있고, 가장 최근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세 번째 살인'에 나왔던 그의 모습이 기억난다.


감독은 '빔 벤더스 (Wim Wenders)'라는 독일 출신의 감독이다. 그의 작품 중 내가 유일하게 아는 작품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인데 이마저도 작품을 본 적이 없으니 아주 생소한 감독이 되겠다. 퍼펙트 데이즈는 빔 벤더스가 감독을 맡고 일본 현지에서 촬영된 일본, 독일의 합작 영화이며, 일본 시부야구의 'The Tokyo Toilet'이라는 공중화장실 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한다. 영화는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책과 올드 팝을 벗 삼아 하루하루 평화롭게 살아가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그 소박하고도 충만한 일상 속에 과거의 추억이 잔잔히 떠오른다.

- NETFL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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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된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다. 이른 새벽 동네 주민의 빗질 소리에 눈을 뜨면 이불 개는 것을 시작으로 일터로 향하는 히라야마의 행동은 일사불란하고 평온하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일터인 시부야구 공중 화장실에서 청소하는 그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중(公衆)의 배설물이 한데 모이는 그 은밀한 공간에서도 자신의 방을 청소하는 것처럼 평온하며 꼼꼼하다. 점심은 신사의 공원에 앉아 우유와 샌드위치를 먹고, 따뜻한 햇살을 비집고 잔잔하게 흔들리는 나뭇잎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 광경을 낡은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다. 찰나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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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청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동네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전철역 단골 식당에서 저녁식사와 술 한 잔을... 잠들기 전 헌책방에서 구입한 낡은 소설책을 읽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잠을 청한다. 오랫동안 몸에 밴 그만의 루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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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은 히라야마의 루틴을 집요하게 쫓아간다. 온전한 히라야마의 하루를 빈틈없이 보여주는 기분이다. 관객에게는 '이게 정답이고 근본이야'라고 말하는듯한 착각도 든다. 물론 첫째 날이라고 아무런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동료인 '타카시'가 지각했고, 길 잃은 아이의 엄마에게 무시를 당하고, 신사에서 조그만 분재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보다 히라야마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 눈길이가고 신경 쓰인다. 오늘의 그는 완벽하고 충만한 하루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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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의 완벽했을지도 몰랐을 그의 루틴은 여러 날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주가 시작된다. 단조롭지만 평화롭고 규칙적인 그의 일상이 타인(他人)의 침범에 의해 조금씩 어긋나 버리게 되는 것이다. 타카시와 타카시의 여자 친구 '아야'를 만난 날은 그 정도가 심했던 날이다. 다이하츠 벤의 기름이 떨어지고, 팔지 않으려 했던 카세트테이프를 팔아야 했다. 그날 밤 늦은 귀가를 한 히라야마는 저녁 식사로 컵라면을 먹는다. 어긋나 버린 그날의 루틴처럼 가스렌지의 빈 화구에 불부터 붙이는 그의 불규칙적 행동은 그날을 대변하는 것처럼 되려 자연스럽다.


화장실 벽틈의 종이 게임은 '틱택토 (Tic Tac Toe)'라는 게임이라고 한다. 게임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벽틈의 종이로 소통을 하려 했던 '그 누군가'와 이에 응한 히라야마의 모습에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반면 점심시간 신사에서 마주치는 'OL(OFFICE LADY, オフィス・レディー)'과는 대체로 어색한 분위기다. 알 수 없는 그녀의 표정에 히라야마는 눈 둘 곳이 없다. 화장실 근처에서 자주 보는 노숙자와는 무언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하다. 각자의 존재를 그저 확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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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히라야마는 작업복이 아닌 일상복과 평소 착용하지 않는 손목시계를 차고 외출한다. 신사에서 기도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사진관에 들려 사진을 찾고, 촬영한 필름을 맡긴다. 필름은 'HOLGA ISO 400 24컷 흑백 필름'. 필름값은 알 수 없으나 히라야마는 매주 사진 인화에만 3,549엔을 지출한다. 1년이 52주인 걸 계산해 보면 매년 사진 인화로 184,548엔, 한화로 178만 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집으로 돌아온 히라야마는 청소를 하거나, 카세트테이프를 감거나, 방금 받아온 사진들을 분류하고 정리한다.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단골 이자카야에 들려 즐거운 시간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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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조카인 '니코'가 찾아온다. 자신만큼 키가 훌쩍 커버린 니코가 낯선 히라야마. 니코의 등장부터는 타인의 영역을 넘어 가족과 히라야마 자신의 문제로 연결된다. 하지만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일상에 동참한 니코가 히라야마는 그렇게 싫지 않다. 오히려 니코와 함께했던 또 다른 일상의 순간순간이 히라야마에게 작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히라야마의 여동생이 나타나 니코를 다시 데려가게 되면서 히라야마의 과거 단서가 나오는듯했지만 사실 그런 사연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가족, 과거, 출생(?)의 비밀을 파헤쳐 봐야 진부한 클리셰가 될 뿐이다. 느슨한 그들의 관계처럼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히라야마의 처지는 극의 종반부로 가기 위한 적절한 수순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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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 역할의 배우는 '나카노 아리사 (中野有紗)'라는 배우다.
보는 순간 왜인지 '우에노 주리 (上野樹里)'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 낯설지 않다.


니코가 떠난 후 노숙자도, 타카시도 그의 곁을 떠난다. 하지만 타카시를 대신할 새로운 청소부인 '사토'가 들어오고, 틱택토 게임이 마무리되었으며, 모습을 감춘 노숙자를 도로의 한 교차로에서 목격한다. 이자카야 여주인의 전 남편은 히라야마와 자신의 그림자를 겹쳐 보이며 '변한 게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히라야마의 반복된 일상 속엔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히라야마와 이웃 주민은 공사 중인 한 공터에서 그 공터가 원래 어떤 건물이었는지에 대해 서로 기억을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억과는 무관하게 그곳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모든 변화를 담아내기엔 인간의 기억력은 한없이 보잘것없다. 보이지 않는 변화들은 세월을 흘려보내고, 보이는 변화들은 흘러간 시간 속에 그 기억이 점점 퇴색된다. 그래서일까? 히라야마와 니코는 노래를 부른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찰나의 순간을 필름에 담아 기록을 남긴다. 찢어버려질 사진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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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레비'는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Perfect Days, 2023 - KOMOREBI, 木漏れ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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