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놀멍쉬멍하고 싶다
오늘의 점심은 제주 은희네 해장국이다. 전날 윗세오름에 올라 피곤한 상태였고 아침에는 소산오름 산책까지 더해져서 무척 배고픈 상태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숙소를 나섰다. 하지만 입구에 다다르자 차들과 사람들로 북적였고, 때마침 뒤차가 다가와서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그 차는 가게 입구 중앙에 그대로 주차를 하고 캐리어도 지나가지 못하게끔 바퀴까지 돌려놓고 그대로 가게로 들어가 버렸다. 캐리어를 들고 차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가게로 들어가니 짐은 또 밖에 놔두라고 한다. 허허...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시장처럼 북적이는 소음 때문에 정신이 없다. 다행히 대기 없이 곧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쯤엔 문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메뉴는 어차피 소고기 해장국 하나뿐이라 선지는 빼고 주문을 했다. 곧이어 기본 찬이 나왔는데 깍두기, 배추김치, 풋고추, 그리고 다진 마늘이 작은 접시에 담겨 있었다. 배추김치는 색깔이 진해서 매울 거 같았지만 평범했고, 깍두기는 새콤한 맛이 꽤 괜찮았다. 다진 마늘은 해장국이 나오면 넣어서 먹으면 된다.
그리고 해장국이 눈앞에 놓였다. 바로 첫 숟가락을 뜨자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처음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다진 마늘을 넣고 휘저으니 붉은 양념과 국물이 어우러져 얼큰한 맛이 살아났다. 라면 국물처럼 뭔가 익숙하면서도 끝 맛이 묘하게 시큼한 것이 일반 해장국과는 약간 다른 느낌. 처음에는 밥과 해장국을 따로 먹었는데 해장국의 고기에 쌈장을 올리고 풋고추, 깍두기와 함께 먹으니 궁합이 제법 어울린다. 이 조합으로 절반 정도를 먹고 나머지 밥은 국물에 말았다. 양념이 진해서 밥을 말아도 맛이 흐려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국밥처럼 고개를 너무 가까이 들이대고 먹다 보면 소고기의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러 순간 입맛이 주춤하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식당은 더 소란스러워졌다. 손님들이 몰려들고, 직원들은 테이블을 빠르게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옆 테이블과 공유하는 물병은 자꾸 중앙으로 옮겨져 물 마시기가 어색했고, 다 먹기도 전에 접시를 치우려는 손길에 마음이 불편했다. 계산대에선 카드를 꺼내기도 전에 계산원의 손이 먼저 나와 있어 당황스러웠다.
맛은 좋았지만, 이런 분주함과 눈치는
놀멍쉬멍 제주도의 여유로운 이미지에 반하기도 해서
괜히 심술이 난다.
제주 은희네 해장국의 얼큰하고 진한 국물은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제격이다. 하지만 분위기와 서비스의 아쉬움은 다시 이곳을 찾을지 의문이다. 시장 통보다 더한 소란스러움이 한몫했고 딱히 제주도까지 가서 찾아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추천해 본다면 과음으로 진정 해장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라면 음식 맛과 이 북적이는 분위기가 기분 좋은 해장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좀 더 제주다운 해장국집을 추천하며, 그럼에도 이곳을 방문했다면 손님이 적은 시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여유 있게 식사를 즐겨보면 좋을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