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 / Hear Me : Our Summer / 2024
쿠팡플레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청설'.
대만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원작은 보지 못했다.주연은 홍경, 노윤서, 김민주.
홍경은 '약한영웅'에서 봤던 터라 반가웠고, 노윤서는 몇몇 작품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만큼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일타 스캔들'은 아직 안 봐서 모르겠네요) 김민주는 배우로서 이 작품이 처음인데, 의외로 연기가 자연스럽고 캐릭터를 잘 표현해서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김민주가 노윤서의 동생 역할인데 오히려 노윤서가 더 어려 보인다는 것이다. 동안 비주얼은 타고나는 것 같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김민주가 실제로도 노윤서보다 1살 어리다. 아이즈원 시절의 김민주를 기억하다 보니 당연히 많을 줄 알았나 보다. ㅎㅎ 김민주는 배우에 꽤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 다른 작품에서도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홍경은 때로는 송중기가, 때로는 정해인이 오버랩되는 느낌을 주는데, 그 미묘한 분위기가 이 영화의 캐릭터와 잘 맞았던 거 같다.
'청설'의 가장 큰 특징은 대사의 제한적 사용이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씬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경음악과 사운드 스케이프, 효과음이 부각이 된다. (이것은 사실 영화 초중반까지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수어가 가장 극적으로 부각되는 장면은 버스에서 홍경이 자매들 사이에서 수어로 대화하는 장면이다. 요즘 사람들이 대중교통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직접 얼굴을 보며 수어로 소통하는 모습이 대비가 되고 역설적인 감동이 있다. 물론 작위적인 느낌도 한 스푼 들어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도 있긴하다.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씬이 클럽에서 스피커의 울림을 느끼는 장면이다. 극적인 환경에서 소리가 사라지는 체험을 위해 만들어진 씬 같은데 이러한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갔을지는 의문이다. 체험과 유사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만 영화적 맥락으로는 생뚱맞다.
영화 ‘청설’은 기본적으로 풋풋한 청춘 멜로물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비교적 맑고 단순한 흐름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중후반, 동생 가을(김민주)의 사건 이후 전개가 급변하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진다. 문제는 이 전환이 너무 갑작스럽다는 점이다. 등장인물 간의 감정 변화와 갈등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노윤서와 홍경의 관계는 몇 번의 데이트밖에 없었는데, 과하게 무거운 고민과 감정선으로 전개되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캐릭터 간 깊이가 부족한 상태에서 깊이 있는 감정 연기를 해야 하다 보니, 그동안 잘 하던 연기도 이 부분에서는 약간 무너지는 느낌도 준다. 다른 인물 간의 갈등도 여전히 설명이 부족하고 뒤에 풀어내기는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 여전히 답답한 기분.
예상 외로 김민주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연기의 폭이 세밀하게 표현되었던 거 같고 '가을'이라는 캐릭터에 깊이를 더한 거 같다. 그게 극 분위기에 어울렸는지 와는 별개로... 반면, 노윤서는 '여름'이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디렉팅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극적인 부분에서 약간 아쉬운 연기를 보였다. 홍경은 특별히 뛰어나거나 부족함 없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지만, 그만큼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도 없었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영화 전반에 느꼈던 몇몇 의문들과 설정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을 가지고 봐야 한다는 점은 그렇게 좋은 방식은 아닌 거 같다. 몇몇 부분은 여전히 꼬집어 지적할 수 있지만, '영화적 장치'로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가 되겠다.
'청설'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듣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영화는 캐릭터의 얼굴, 표정, 눈빛, 손짓으로 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말이 아닌 표정과 행동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정성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대사가 없어 답답함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보는 관객'으로 전환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영화는 이런 부분을 꽤 신경 써서 만든 것 같다.
'청설'은 풋풋한 로맨스로 시작해 자극적인 요소 없이 잔잔하게 흐르다 약간의 갈등을 만나는 순간이 있긴 하지만, 그 부분을 넘기고 엔딩까지 본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반전도 있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딱 그 나이대에 맞물려야 할 수 있는' 그런 연기들이었다.
청춘일 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부딪힌다는 것
'청춘일 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부딪힌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려운 거 다 빼고서라도 배우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