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리 이야기: 손끝의 기적> 리뷰
몇 년 전 SNS에 올라온 한 동영상이 사람들의 관심을 뜨겁게 달구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것은 안경을 쓴 한 남성. 그는 자신의 주위 모든 환경을 바라보며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과 만나 모든 것을 신기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한 남자는 이내 아이를 안고 울기 시작한다. 그가 쓰고 있던 안경은 색맹을 가진 사람들이 색을 볼 수 있도록 제작된 특수안경이었던 것. 온통 흑과 백이었던 그의 세계에 들어온 아름다운 색의 향연과 처음으로 본 아이의 눈동자는 결국 그를 울리고 말았다.
이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나의 눈동자 색이나 오늘 아침 들었던 시끄러운 차의 클락션 소리. 따갑게 내리쬐어 나를 덥게 하는 밝은 태양 빛이나 지긋지긋한 여름 매미 소리까지.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영화 <마리 이야기: 손끝의 기적>(이하 ,마리 이야기>)에는 세상과 단절되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 살아온 소녀가 등장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소녀 마리(아리아나 리부아 역)는 10살이 되던 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수도원에 오게 된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며 옷을 갈아입는 것도, 씻는 것도 거부하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마리. 세상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마리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느낀 마가렛 수녀(이자벨 까레 역)는 마리를 세상 속으로 초대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고집쟁이 마리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그녀와 공감하기 시작하는 마가렛. 제 모든 생을 바친 마가렛의 노력에 마리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살 날이 머지않은 몸을 갖고 있던 마가렛. 두 사람은 다가오는 이별 역시 받아들이기 위해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간다.
장 피에르 아메리 감독의 <마리 이야기>는 실제 19세기 프랑스 라레이 수도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시청각 장애를 갖고 있던 마리 외르탱과 마리를 세상으로 인도한 마가렛 수녀.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을 떠올리게 만드는 두 사람의 실화가 장 피에르 감독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실제로 수녀원에 온 당시 사람의 손을 피해 몸부림을 치고 악을 쓰는 것은 물론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야생 동물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마리 외르탱. 빛도 소리도 없는 감옥과 같은 세상에서 구하고 싶었던 마가렛 수녀의 용기가 마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탈출하게 만든다.
마리에게 세상을 알려주고자 했던 마가렛 수녀. 그녀의 마음속에 이 열망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주 작은 공감이었다. 모든 것을 거부하는 어린 소녀 마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저 불쌍히 여기는 감정뿐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게 된 마가렛은 그 작은 교감 속에서 공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살아가는 마리. 마가렛은 그녀의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이 노력은 이내 마리에게 자신이 느끼는 세상을 알려주고자 하는 열망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열망은 마리를 만나 진짜 현실이 된다.
마가렛을 통해 수화를 배우고 세상을 알아가고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는 마리. 마가렛의 열망이 열매 맺는 데에는 마가렛 본인의 헌신과 희생뿐 아니라 이에 응하여 준 마리의 열망이 함께 했다. 마가렛의 마음이 마리의 마음에 전해진 듯 마리가 기나긴 시간 끝에 변화의 조짐을 보였던 것. 마가렛의 세상을 조금씩 느끼게 된 마리는 배우고자 했고 알고자 했으며 더 발전하고자 욕망했다. 이런 두 사람의 바람이 모여 결국 큰 기적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은 두 사람 손끝이 맞닿은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세상에 살고 있다. 같이 보고 듣더라도 느끼는 바가 다른 것이다. 지구는 하나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개개인들에게는 그 각자의 세상이 존재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수백 개의 세상 속에서 우리는 결코 타인의 세상을 똑같이 경험할 수는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교감을 통해 공감하고 간접 경험하게 되는 것뿐. 그리고 그 교감들이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들을 엮어 큰 사회를 이루어 내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마리가 살고 있던 세상도 생각해보면 그저 여러 개의 세상들 중 하나였다. 다만 그 누구도 그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리의 세상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기적들이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있음을 알려준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세상은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아는 만큼 감사하게 되는 세상의 기적 속에서 더 넓은 기적의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 내가 손 내밀지 못했던 타인의 세상으로 다가가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