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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14. 2020

바다의 뚜껑은 열린 채로 있구나

영화 <바다의 뚜껑> 리뷰

 바다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 끝을 알 수 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넘실거리는 파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바다가 주는 이미지는 같지만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다른 건 순전히 보는 사람 마음의 몫이다. 내가 가진 마음이 바다를 보는 색안경이 되어 바다로부터 보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만을 취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혼자일 때의 이야기. 누군가와 함께 바다를 공유하는 순간 색안경은 벗겨지고 우리는 온전히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을 찾은 마리(키쿠치 아키코 분)와 하지메(미네 아즈사 분) 역시 해안가에 섰을 땐 혼자였다.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마리는 고향으로 내려와 생계를 위해 팥빙수 가게를 차리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은 생각만큼 정겨운 곳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맡겨진 하지메. 얼굴에 큰 화상 자국을 갖고 있는 하지메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잃고 흉터보다 더 큰 아픔을 안은 채 마리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작은 마을에 내려온 두 사람. 어떤 기대를 안고 이곳에 온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사람이 그 공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꾸준히 주어진 일을 해 나가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시간을 통해 두 사람의 일상에도 서서히 변화가 스며든다.


 도요시마 케이스케 감독의 <바다의 뚜껑>은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동명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작품이다. 제목 <바다의 뚜껑>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지인인 아티스트 하라 마스미가 부른 노래로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 노래 가사를 소설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작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다는 건 언제나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법. 이미 책이 보여준 힘 그 이상을 얇은 종이로부터 건져내려면 창작을 할 때와는 다른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가장 큰 라이벌이 원작 그 자체가 되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법도 한데 도요시마 케이스케 감독은 그런 부담감으로부터 초월한 듯 책 속에 있던 섬세한 문장들을 조심스럽게 프레임 안에 옮겨 담았다.  
 
 특히 영화의 가장 중심이 되는 바다가 몇 번이고 등장하는데 <바다의 뚜껑>은 매 순간 같은 자리, 같은 모습을 한 바다로부터 다른 모습들을 이끌어 낸다. 홀로 빙수집 공사를 이어가던 마리가 홀로 찾은 바다는 그녀가 도시에서 이고 온 걱정과 염증들을 깨끗이 씻어내는 공간이었던 반면 하지메가 바라본 바다는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산호 조각을 ‘죽은 뼈’라고 표현하는 하지메에게서 보이는 건 수영을 못하는 것과 달리 바다 그 자체에서 느끼는 공포인데 이는 할머니와 사별한 후 억지로 보내진 해안 마을을 보며 그녀가 느꼈던 낯섦과 외로움, 아픔으로부터 기인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은 마리와 지내는 시간을 통해 조금씩 흐려지고 마리의 손을 잡고 함께 들어간 바다에서 하지메는 할머니의 부재로 잃었던 행복과 사랑의 조각을 발견한다. 마리 역시 하지메를 돌보며 마음속에 내심 키웠던 회의감과 불안감을 지우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바다만큼이나 두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마리의 빙수집. 마치 세상의 끝자락에 선 것 같은 마리의 빙수집은 용기가 없어 도시로부터 도망친 마리가 도달한 최후의 장소였다. 가장 좋아하는 ‘카키코오리’ 빙수를 만드는 마리는 얼음을 갈고 고명을 올리는 단순한 작업 속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하지메 역시 그런 마리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겪게 되는데 두 사람이 그 빙수집에서 함께하는 시간 동안 깨달은 건 하루를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의지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은 다시 빙수를 만들게 되는 것과 좋아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빙수를 파는 것. 이처럼 사소한 일들 속에 행복이 있고 삶을 살아갈 이유가 있었다.
 
마리와 하지메가 살아온 길이 다르고 또 앞으로 살아갈 길이 다를지 모르지만 한 가지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바다의 뚜껑>은 하루를 더 살아갈 의지를 채운 두 사람을 통해 그 대적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굳이 바다로 도망치지 않아도 사소함이 주는 행복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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