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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16. 2020

애국과 보수는 잘못이 없다

영화 <우리손자베스트> 리뷰

 ‘애국보수’. 풀어 말하자면 나라를 사랑하는 보수적 정치 성향이다. 나쁜 뜻 하나 없는 이 단어들의 결합은 우리나라에서 기이하게 변형되어 정치적 극단주의자들, 특히 극우 성향을 띤 이들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왜곡되고 말았다. 노년층들은 어버이연합으로 그 아래 세대에서는 일간베스트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애국보수들. 신문의 정치면을 장식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들이 애국심을 넘어 파쇼적인 성향으로 치달아 가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영화 <우리손자베스트>가 그들의 이면을 들추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너나나나베스트의 회원인 교환(구교환 분)은 일명 키보드워리어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생산해 낸다. 게시물의 조회수는 점점 올라가지만 정작 오프라인의 교환은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고시촌을 전전하는 백수다. 현실의 삶보다 가상의 삶에 집착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교환은 어느 날 탑골공원에서 어버이별동대 회원 정수(동방우 분)를 만난다. 종북 척결을 외치며 불타는 애국심으로 살아가는 정수는 자기와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청년 교환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두 사람은 반공과 애국의 이름으로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같은 듯 다른 모습을 한 교환과 정수는 세대를 뛰어넘는 유대감으로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이렇게 그들이 가진 유대감의 근원에는 소외와 결핍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이 느끼는 소외와 결핍은 두 사람을 둘러싼 환경 다방면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삶 속에는 언제나 피해 의식이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들이 불만을 일으키는 가장 큰 대상은 바로 이 사회다. 두 사람은 이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자신들은 알아주지 않는 사회가 오히려 제 눈에 빨갱이로 보이는 이들에게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며 정의 구현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인다. 또한 사회 구성원인 여성으로부터 받는 멸시 역시 그들의 분노가 향하는 대상이다. 두 사람은 여자들을 사람이 아닌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만 보며 남성성을 과시하려 든다. 하지만 교환이 역으로 여성들에게 무시당하는 장면이나 남성들과만 무리 지어 다니는 정수의 모습에서 그들의 행동이 사실은 잃어버린 남성성을 숨기려는 발악임을 드러낸다.


 여기서 그들을 더 절망하게 하는 건 교환과 정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게 사회뿐만이 아니라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라는 점이다. 인간대접을 해주지 않는 가족들 틈에서 불안정함을 느끼는 교환과 아버지를 멀리하는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정수는 결핍된 가족애를 서로를 통해 보상받는다. 특히 세월호 희생자를 우롱하던 교환이 실은 가족의 사랑을 받는 희생자들이 부러웠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들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관심과 사랑에 대한 갈급함이 드러난다. 결국 같이 있을 때 존재감을 확인하는 두 사람은 뜻을 모아 기상천외한 행각을 벌이기에 이른다.


 영화 <우리손자베스트>는 사회 속에서 이단아로 규정되는 일간베스트 회원들과 어버이연합의 실제 행위를 모티브 삼아 교환과 정수의 행동을 낱낱이 그리고 있다. 그저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들은 사실 다른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바로 우리 곁을 살아가며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우리의 이웃인 것이다. 현실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그려내며 영화는 그들을 향한 연민의 시선을 담는다. 하지만 연민은 연민일 뿐 결코 그들에게 공감하거나 그들의 행위를 옹호할 수는 없다. 사회 일반적 상식에 반하는 일들을 자행하며 정신 승리를 하려고 하지만 현실의 벽은 언제나 그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두 사람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우리손자베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이런 사람들과 우리가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것인가? 피할 수 없다면 함께 해야 할 사람들. 영화는 그 해답을 찾는 일을 우리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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